한국 축구 대표팀은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시작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총 10번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았고, 10명의 월드컵 대표팀 주장을 배출했다. 사상 첫 출전이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의 주영광을 시작으로 1986 멕시코 월드컵의 박창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의 정용환, 1994년 미국 월드컵의 최인영, 1998 프랑스 월드컵의 최영일, 2002 한일월드컵의 홍명보, 2006 독일월드컵의 이운재, 2010 남아공월드컵의 박지성, 2014 브라질월드컵의 구자철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리더'의 역할을 수행했다.

주장이라는 역할의 무게에 걸맞게 그동안 한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가장 유명한 주장은 역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달성을 이끈 홍명보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의 주역이었던 박지성이다.

홍명보-박지성, 축구 팬들의 기억에 길이 남을 주장들

선수들 지켜보는 홍명보 전무이사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가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타크 훈련장에서 훈련을 준비하는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2018.6.15

▲ 선수들 지켜보는 홍명보 전무이사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가 15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로모노소프 스파르타크 훈련장에서 훈련을 준비하는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2018.6.15 ⓒ 연합뉴스


홍명보는 한국 축구 월드컵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과묵하고 진중한 포커페이스와 '상남자' 이미지로 많은 스포츠 팬들에게 주장다운 캐릭터를 구축한 원조이기도 하다. 비록 지도자로서는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봤지만 적어도 '선수 홍명보'가 한국 축구에 남긴 업적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홍명보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 한일 월드컵까지 황선홍과 더불어 한국 선수로는 유이하게 4회 연속 본선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황선홍은 1998 프랑스 대회에서는 최종명단에 이름은 올렸으나 부상으로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반면 홍명보는 자신의 월드컵 마지막 경기였던 터키전(2002월드컵 3.4위전)까지 당시 한국이 출전한 월드컵 본선 무대에 무려 16경기 연속 출전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미국 월드컵에서는 수비수임에도 프리킥과 중거리슛으로 2골을 기록하며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선수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일월드컵에서는 4강신화의 공로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브론즈볼을 수상하기도 했다. 월드컵 무대 출전시간만 총 1409분으로 한국 선수로서는 독보적인 1위다. 특히 스페인과의 한일 월드컵 8강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슛을 성공시키고 평소의 과묵한 이미지와 달리 활짝 웃는 모습으로 동료들과 포옹하는 순간은 지금도 축구 팬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독일-멕시코전 해설하는 박지성 박지성 해설위원이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독일과 멕시코의 경기를 앞두고 중계석에서 모니터하고 있다. 2018.6.18

▲ 독일-멕시코전 해설하는 박지성 박지성 해설위원이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독일과 멕시코의 경기를 앞두고 중계석에서 모니터하고 있다. 2018.6.18 ⓒ 연합뉴스


박지성 역시 좋은 리더였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만 해도 풋풋한 막내였던 박지성은 독일 월드컵을 거쳐 남아공 대회에서는 세계적인 선수이자 리더로서 착실하게 성장해 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3회 연속 본선무대에서 득점했고 한국은 박지성이 골을 넣은 경기에서 2승 1무를 기록하며 한번도 지지 않았다.

또한 박지성은 이전 세대 주장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리더십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홍명보나 김남일 등 대표팀 역대 주장들이 주로 남자다운 카리스마로 후배들을 장악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박지성의 수평적인 리더십은 '솔선수범'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박지성은 당시 세계적인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일원이라는 화려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서는 스타의식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성실하고 헌신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모범을 보였다. 박지성 같은 스타도 저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뛰는데 동료와 후배들은 자연히 이를 따르게 됐다.

처음 주장에 선임될 때만 해도 일각에서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박지성이 리더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박지성은 3년 가까이 주장을 역임하며 어떠한 구설수나 잡음도 없이 훌륭하게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 박지성이 주장으로 활약하는 동안, 한국은 A매치 무패행진 기록과 사상 첫 원정 16강 등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밖에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활약한 박창선은 아르헨티나전에서 월드컵 1호 골을 넣으며 한국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 2006년 독일월드컵의 이운재는 비록 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안정적인 선방과 리더십으로 제몫을 다했다.

반면 아쉬움을 남긴 주장들도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의 최인영은 '최초의 골키퍼 출신 월드컵 주장'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축구 팬들에게는 조별리그 최종전 독일전에서 전반에만 본인의 잇단 실수로 3실점을 내주며 골키퍼로는 유일하게 경기 중간에 교체됐다. 당시 최인영과 교체되면서 이운재라는 새로운 한국 축구의 간판 골키퍼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장면인 셈이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는 수비수 최영일이 주장 완장을 찼는데 네덜란드전에서 베르캄프 등 세계적인 공격수들에게 그야말로 농락당해 역사적인 0-5 대패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가장 최근인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구자철이 역대 월드컵 대표팀 최연소 주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대표팀이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하며 주장을 맡은 구자철 역시 혹평을 피하기 어려웠다.

신태용호 주장 기성용, 그의 어깨가 무겁다

캡틴 기성용 어깨 주물러 주는 손흥민 '시원하지?' 2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출정식에 참석한 손흥민이 주장 기성용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다.

▲ 캡틴 기성용 어깨 주물러 주는 손흥민 '시원하지?' 5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출정식에 참석한 손흥민이 주장 기성용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다. ⓒ 유성호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는 기성용이 주장의 역할을 맡았다. 2014년 10월 파라과이와 친선 경기에서 처음 주장 완장을 찬 뒤 4년째 한국 축구 대표팀 부동의 캡틴으로 나서고 있다.

기성용은 2010 남아공 대회, 2014 브라질 대회에 이어 이번 러시아 대회까지 신태용호 23인 중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무대를 3회 연속 밟는 선수다. 현재 팀내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 가입자도 기성용뿐이다. 경험과 기량, 비중 등 모든 면에서 기성용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주장 완장까지 달고 월드컵에 나서게 된 만큼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기성용은 역대 월드컵 대표팀 주장을 통틀어서도 가장 파란만장한 국가대표 커리어를 보낸 선수 한 명이다. 대표팀 초창기 시절에는 여러 논란에 휩싸이며 '악동' 이미지를 얻기도 했지만 선수 경력이 쌓이면서 차츰 성숙해졌고 이제는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로 성장하며 월드컵 주장 완장까지 달게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기성용은 어쩌면 한국 축구가 유난히 어려운 시기에 대표팀 주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대표팀이 슈틸리케호 시절부터 지역예선을 통과하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신태용호 출범 이후에도 평가전에서 연이은 부진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독일-멕시코-스웨덴 등 세계적인 강팀들과 상대해야 하는 러시아월드컵에서는 4년 전 브라질 대회보다 더 초라하게 탈락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적지않다. 팀의 간판이자 주장으로서 기성용의 책임감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이번 러시아월드컵은 기성용에게 현역으로서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기성용은 이미 오래 전부터 러시아 월드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겠다고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전임 주장이었던 박지성도 2011 아시안컵을 끝으로 만 30세의 젊은 나이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전례가 있는 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다. 선수로서 마지막 월드컵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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