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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알게 된 건 육칠 년 전이었다. 황순원 문학관에서 구효서 작가가 글쓰기 선생님으로 초빙돼 강좌를 열었던 적이 있었다. 문학 강의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연령층은 다양했다. 30대에서 60대까지 나이 편차가 큰 만큼 쓰고 싶은 장르도 제 각각이었다. 시부터 수필, 소설, 동화까지 다채로웠다.

수업은 습작한 글을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발표 일주일 전 회원들에게 메일로 전송하면 각자 출력해 글을 읽고 품평회를 갖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때 소설을 발표했고, 그는 시를 발표했다. 그 무렵 나는 난독증에서 겨우 빠져나와 무엇인가를 써보려고 궁리할 때였다. 그는 무역회사에서 정년 퇴직한 후 명지산 자락에 혼자 집을 짓고 살면서 시를 습작한다고 했다.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자기가 쓴 글을 발표한다는 건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사람들 앞에 나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글을 읽은 소감들을 듣고 있노라면 나의 얼굴이 발그스름해졌다. 마무리는 구효서 선생님의 총평으로 정리가 됐다. 아직도 그때 그 강의실에서 썼던 수첩을 책상 가까이에 두고 가끔씩 들춰본다.

개인적인 자기세계를 뛰어넘어 사회와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소통하는 글쓰기. 소설이란 세상을 변형시키는 혁명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명적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학은 언어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부터 억압받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첩 속에 적어둔 깨알 같은 이런 문장들은 내 마음 밭을 뒹굴며 좋은 거름이 되었다.

그와의 첫 만남

글을 쓴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지, 글을 써서 무엇이 된다는 결과물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지, 글을 써서 무엇이 된다는 결과물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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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사람들과 나누는 글쓰기 수업은 무미건조했던 일상에 색다른 색채감을 불어넣었다. 그 무렵 40대 초반이었던 나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버둥거릴 때였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는 늙었고, 무엇인가를 포기하기에는 젊은 나이였다. 늦었다고도 빠르다고도 할 수 없는 그 지점에서 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강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의 조급함이 조금씩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꿈에 도전할 나이란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 애매모호한 나이였지만 새로운 출발점을 찍기에는 충분했다. 글을 쓴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지, 글을 써서 무엇이 된다는 결과물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계속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괜찮았다. 동기부여를 위해 공모전에 내볼 테지만, 떨어진다 해도 상관없었다. 나의 부족함을 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작가의 길로 인도하지 못할망정 성숙한 인간됨을 마련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시간들이 시시한 방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점 하나를 제대로 찍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한두 차례 후속 모임이 이루어졌지만, 선생님이 빠진 모임은 흐지부지 되기 마련이었다. 이후로 나는 혼자서 계속 글쓰기를 이어나갔다. 나에게는 아직 세상을 변화시킬 혁명적 관점도, 언어로부터 억압받는 세상을 구현해낼 재간도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책상 앞에서 엉덩이를 단련시켜야 할 숙제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원래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 메일함을 열어보지 않는다. 그날 내 메일함에 접속하려던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보내온 메일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메일의 제목부터가 파격적이었다. 제가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2015년 계간 <시와 소금>의 신인문학상을 받았다는 글과 함께 당선작 시 몇 편이 함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를 읽어 내려갔다. 몇 년 사이 그의 눈부신 문학적 성장은 상식의 범위를 초월한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제자리걸음 중인데, 그가 이뤄낸 문학적 발전이 부럽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시인의 꿈을 일구어낸 그의 시간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명지산 자락 아래 밤마다 불 밝히며 시심을 찾아 홀로 지새웠을 시간들. 그가 한 장 한 장 쌓아올린 시간의 벽돌은 얼마나 될까. 그에게 축하의 답장을 보냈다.

그가 던진 돌직구 한방

반 백 살이 훨씬 넘은 노장의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 칠 기회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짜릿하고 유쾌했다
 반 백 살이 훨씬 넘은 노장의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 칠 기회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짜릿하고 유쾌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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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 후반전은 전반전과는 다른 반전을 꾀했다. 9회 말 투 아웃의 상황에서 홈런 한 방을 날린 그의 공이 내 발 밑으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을 향해 휘둘렀던 온 힘의 무게중심이 만들어낸 속도임을 모르지 않았다. 반 백 살이 훨씬 넘은 노장의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 칠 기회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짜릿하고 유쾌했다.

그 이후로는 서로 연락이 없었다. 며칠 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 핸드폰이 맞는지를 물어오는 낯선 목소리, 바로 그였다. 회원들의 글을 모아 엮은 문집 뒷면에 실린 주소록을 보고 나의 전화번호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 이번 역시 평범한 일로 연락한 건 아닐 거라는 예감이 스쳤다.

이번에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그가 던진 돌직구 한방에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등단 이후 대략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전력질주를 해왔나 보다. 그새 시집을 엮을 시를 썼다니….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듣고서 그가 건넨 이야기는 다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때 메일에 그렇게 썼잖아요. 먼 곳에서 응원하겠다고. 문득 시를 쓰다가 지칠 때 그 말이 생각났어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의지가 됐어요."

몇 해 전 등단했다는 메일에 답장을 보낸 사람은 회원 중 나 혼자 뿐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 메일의 문장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다. 답장을 공들여 쓴 기억은 없다. 아마도 축하의 메시지를 담은 평범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는 특별한 감수성의 소유자임이 틀림없다. 그의 감수성이 첨가되지 않았다면, 그건 위로의 문장으로 거듭나지 못했을 것이다. 문득 그가 얼마나 외롭게 글쓰기에 전념했는지 짐작이 됐다. 먼 곳에서 응원하겠다는 나의 말이 그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어올 정도로 그는 오로지 글만 써온 모양이었다.

늙지 않는 사람

<슈나우저를 읽다>
▲ 김은호 시집 <슈나우저를 읽다>
ⓒ 문학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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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그 다음 말이 더 놀라웠다. 나에게 '늙지 않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그 사이 내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이었다. 아래의 말은 그의 풍부한 시적 감수성의 상승작용으로 빚어진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언제나 밝은 얼굴로 웃었잖아요."

나는 당이 빨리 소모되는 저질 체력의 소유자다. 어딜 가나 '골골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 그 강의실에서 밝은 기운의 에너지를 마구 뿜어냈다니, 이것 역시 나의 기억과는 일치되지 않았다. 지금 그는 시의 정신을 자기 삶에서도 구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상투적인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는 '낯설게 하기'라는 시의 정신 말이다.

응원하겠다는 형식적인 나의 말에 따뜻한 정감을 덧입혀 놓고, 약골인 나를 웃음을 선사하는 에너자이저로 만들어 놓았다. 그가 말해준 나의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 '낯설게하기'라는 시작법의 의미를 삶에서도 구현해내는 그가 진짜 '늙지 않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나는 지금 그의 시집이 담긴 우편물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김은호의 첫 시집 <슈나우저를 읽다>. 명지산 마을에서 익숙하고 편리한 것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시를 썼던 시간들이 시집 속에 녹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랬듯 그의 시선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시어들은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첨벙 들어가 깜짝 놀라게 해줄 것이다.


태그:#김은호 , #<슈나우저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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