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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페이지갤러리'가 위치한 갤러리아 포레 입구의 '박은선'전시 거리포스터
 '더페이지갤러리'가 위치한 갤러리아 포레 입구의 '박은선'전시 거리포스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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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박은선 조각전'이 '더페이지갤러리(성동구 서울·숲 2길)'에서 6월 30일까지 열린다. 박 작가는 이탈리아에서 25년간 조각 작업을 해왔고 한국에서는 10년 만의 전시다. 이번 제목은 '숨 쉬는 돌의 시간'이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도 설치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더 페이지갤러리 재개관전이다. 이 갤러리는 그동안 전시장을 보수하느라 전시를 못했다. 건축설계 매뉴얼에 완벽을 기하다 보니 10개월이나 걸렸단다.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에 품격이 넘치는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이번 전시는 마치 이 작가를 위해 맞춤형으로 리모델링한 것 같이 보일 정도로 작품이 전시장과 잘 어울린다.

 2018년 신작인 '무한기둥(Infinite Column_Accretion_Intension)' 옆에서 포즈를 취한 박은선 작가
 2018년 신작인 '무한기둥(Infinite Column_Accretion_Intension)' 옆에서 포즈를 취한 박은선 작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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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 작가를 소개하면, 1965년 생으로 경희대 미대를 졸업하고 1993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카라라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2년 후 이탈리아 미술계에 데뷔한다. 25년간 유럽에서 100회 그룹전에 참여했고 50회 개인전도 열었다. 우연의 효과를 내는 조각에 동양적 미학을 접목시켰다. 그래서 색다르고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조각을 선보인다.

그는 2007년 7~8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시가 주관하는 문화축제인 '베르실리아나 축제'에 초대 받아 대규모 야외조각전을 연 바 있다. 이 축제는 헨리 무어, 데미안 허스트, 마크 퀸 등 세계적 거장만 초대 받은 곳이다. 한국작가로는 유일하다. 이런 공로로 2015년 외교부가 선정한 우수 한인에게 주는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다.

물구나무서듯 하늘에 걸린 조각

 박은선 I '무한기둥(Infinite Column_Accretion_Intension)' 흰색 대리석(White Marble) 441.5(H)×41.6×41.6cm 2018
 박은선 I '무한기둥(Infinite Column_Accretion_Intension)' 흰색 대리석(White Marble) 441.5(H)×41.6×41.6cm 2018
ⓒ 더페이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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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서자 신작인 천장에 걸린 무려 1.2톤이나 되는 육중한 조각이 보인다. 중력을 거스르는 파격적인 방식이다. 이런 작품을 설치할 때는 건물 관리인이나 갤러리 직원도 사실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30톤을 작업해 본 노련한 작가에게 이건 문제도 안 된다. 그동안 잠시도 마음 놓지 못하고 살아온 작가가 자신을 물구나무 세운 것 같다.

앞에서도 작가에 대해 언급했지만 그는 처음 이탈리아 유학을 시작했을 때 무일푼이었다. 돈 없이 지인인 '박여숙 갤러리' 관장을 만나 500만 원의 후원을 요청했고 어렵사리 300만 원을 선불처럼 받았단다. 처음에는 가족도 한국에 두고 이탈리아로 혼자 떠나야 했다. IMF시대라 환율마저 반토막이 났으니 더 힘들었으리라.

작가는 그럼에도 "그때가 좋았다"고 회고한다. 고생이 컸던 만큼 그 시절이 몹시 그리운 모양이다. 돈이 없었기에 그만큼 더 순수했고 열정적이었기 때문이리라. 마음을 비워야 더 창조적인 것이 나오나 보다.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시간은 걸리지만 결국 해낸단다.

 박은선 작가가 해외전시 때 만든 '도록'들
 박은선 작가가 해외전시 때 만든 '도록'들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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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이탈리아에 살면서 가진 것 없는 그는 하루도 긴장의 끈을 풀지 못했단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그 난관을 이겨냈다. 그는 강박처럼 자신을 가만 두지 못하고 날마다 부추겼다. 이번에도 그런 작가의 그런 의지가 엿보인다.

사실 요즘 같은 뉴미디어 시대에 젊은 작가들은 이렇게 힘든 조각 작품은 피하는 것이 사실이다. 순수미술이라 그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작품의 무게나 규모만 봐도 그렇다. 너무 힘들게 작업을 하다 보니 가끔은 작품이 내는 비명소리도 듣는 것 같단다.

더페이지갤러리 성지은 관장이 전하는 말로는 직원들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데 고생이 많았단다. 크레인이 미술관에 들어오기 힘들었고, 크레인이 내는 연기가 너무 심해 요즘처럼 미세먼지에 예민한 시대에 6점 중 2점만 전시할 수밖에 없었단다.

공간의 '여백'과 '호흡' 중시

 박은선 I '연속이어붙이기(Continuazione_Duplicazione)' 흰색과 회색 대리석222(H)×475×80cm 2016. 더페이지갤러리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
 박은선 I '연속이어붙이기(Continuazione_Duplicazione)' 흰색과 회색 대리석222(H)×475×80cm 2016. 더페이지갤러리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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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제목은 '숨 쉬는 돌의 시간'이다. 시적 분위기가 난다. 죽은 공간에 작가의 호흡을 넣어 다시 숨 쉬게 하는 조각이라는 의미인가 보다. 전시장마다 양쪽 기둥이 신전처럼 세워져 있는데 그것이 전시장에 호흡을 불어 넣어 활력을 준다.

그의 모든 조각에는 예외 없이 틈과 균열이 나 있다. 그건 역시 그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꽉 막혀 답답한 조각에 여백미를 주기 위해서다. 사군자만 봐도 좌우의 여백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 달라지듯, 그는 작품도 전시장에 맞게 여지를 주는 것이다.

그는 광물성을 가지고 식물성처럼 조각을 만든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 같다. 조각이 흙처럼 부드럽게 느껴지고 살처럼 따뜻한 촉감마저 준다.

작가의 이상세계 '접목'

 박은선 I '접목_무한기둥(Accrescimento_Infinite Column)' 흰색 붉은색 대리석 3개(뒷면) 2017. 박은선 I '세대(Generazione)' 검은 색 붉은 색 화강석 93(H)×102×102cm 2018(앞면).
 박은선 I '접목_무한기둥(Accrescimento_Infinite Column)' 흰색 붉은색 대리석 3개(뒷면) 2017. 박은선 I '세대(Generazione)' 검은 색 붉은 색 화강석 93(H)×102×102cm 2018(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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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주가 되는 것은 역시 '접목(Accrescimento 접붙이기)' 시리즈다. 부제는 '무한기둥(Infinite Column)'이다. 무한기둥을 붙인 이유를 작가에게 물어보니 사물의 웅비하는 기상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작가 자신이 꿈꾸는 높은 이상을 상징한단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도전하는 작가의 결기를 엿볼 수 있다.

하늘로 치솟는 기둥 같은 '접목'을 보니 이런 작품이 세워지기까지 수없는 손길과 마름질이 필요하리라. 그런 면에서 조각은 노동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하루도 빠짐없이 갈고 닦는 작가의 태도다. 구도자처럼 그런 걸 잘 감당해야 한다. 위 작품 '세대'도 그를 옥죄어 오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똑바로 세워나가는 힘든 과정을 형상화했다.

디지털 시대에 이렇게 무모할 정도로 힘든 작업을 한다는 건 요즘 사람들이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말은 다르다. 매일하다 보면 쉽단다. 르네상스 고전조각을 태동시킨 이탈리아인도 이런 방식에는 눈이 휘둥그레진단다. 그의 태도에 놀란 것이다.

'울림'이 있는 추상조각

 박은선 I '우주볼 Sfere(Cosmos-Balls)' 흰색 회색 화강암, 철 140(H)×180×130cm 2018
 박은선 I '우주볼 Sfere(Cosmos-Balls)' 흰색 회색 화강암, 철 140(H)×180×13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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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했지만 한국 작가들은 여백미를 중시한다. 특히 조각은 장소성과 연관해서 공백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작품에 덜 개입하는 게 현대미술의 특징인데 그런 면에서도 작품에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

그의 고전적 조각이 현대미술이 될 수 있는 것은 조각에 음악과 움직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우주볼' 같은 작품은 관객이 만지면 소리가 난다. '사운드아트'가 된다. 방울이 부딪치면서 내는 파열음은 생각보다 크다. 그 울림이 또한 맑고 투명하다.

우리가 계산을 할 때 빼고 더하고 곱하고 나누듯이 그의 작품은 '해체와 접합' 등이 수없이 반복된다. 거기에 삶의 양면성과 인간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스트라이프(stripe)' 패턴이 새겨져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다 다르다. 이런 반복성이 주는 착시와 리듬감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또한 사람들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도 덜어준다.

그의 작품은 원형과 네모로 뒤섞여 있다. 여기서 '원형'은 떼 묻지 않는 순수한 어린이의 동심을 의미하고 '네모'는 이 세상의 험난한 고통과 난관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이 작품에서 양 날개 같은 역할을 한다. 사실 희비가 엇갈리는 인생과 닮았다.

시공간과 인간은 하나의 '유기체'

 박은선 I '세 개의 볼(Three balls_Accretion) 노란색과 붉은 색 화강암140(H)×134×130cm 2018
 박은선 I '세 개의 볼(Three balls_Accretion) 노란색과 붉은 색 화강암140(H)×134×13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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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조각이란 어느 공간에 그 작품이 배치되었을 때 이전에 못 본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거기서 충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리라. 지난 4월에 열린 '아트부산(2018)'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그의 조각에서도 그런 효과를 경험한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이번에도 그의 조각은 여기 갤러리 공간에 놓임으로써 상호관계를 일으킨다. 관객이 어떤 작품을 전시장에서 만날 때 생성되는 울림과 진동도 느껴진다. '천지인'이 하나이듯 '시간(과정)과 공간(여백)과 인간(관객)'이 유기체처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3요소가 전시장에서 하나가 되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자서전 쓰듯 돌에 새기다

 박은선 '해외도록(앙로재단 출판)' 사진 속 작업실
 박은선 '해외도록(앙로재단 출판)' 사진 속 작업실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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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내 조각 작업에는 나의 혼과 인생이 담겨있다", "심지어 나는 거기서 돌의 숨소리마저 듣는다"라고 말했다. 작업에 몰입하면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을 자서전에 써나가듯 그렇게 조각을 한다. 더 나아가 그는 조각에서 '득음'을 할 정도로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그는 서양의 '무한'의 진리를 뛰어넘어 동양의 '순환'의 진리를 추구한다. 동시에 돌의 '결'에 의도적 '균열'을 줘 '틈'을 만드는 동양적 미학을 구현한다. 그래서 그는 조각을 둘러싼 공간까지도 포함하는 장소 특정적 '추상조각'을 발명했다. 그의 작품은 이제 조각의 메카인 이탈리아에서도 높이 칭송받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더페이지갤러리 홈페이지 http://www.thepage-gallery.com/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 2길 32-14 갤러리아 포레 G205 더 페이지갤러리
(G205 Galleria Foret, 32-14 Seoulsup 2-gil, Seongdong-gu, Seoul, Korea)
02) 3447-0049 info@thepage-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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