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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우린 안의 레드 콤플렉스

"아빠, 빨갱이가 뭐야?"

며칠 전,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까꿍이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빨갱이? 뜨끔했다. 아이가 혹시 밖에서 빨갱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질문한 건 아닌지, 혹여 그랬다면 여기저기서 굳이 정치 성향을 감추지 않는 아빠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닌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3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부가 체제변혁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만반의 준비를 해 좌파폭주를 막는 국민 저항운동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홍준표 "좌파폭주 저지 국민운동 검토할 것"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3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문재인 정부가 체제변혁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만반의 준비를 해 좌파폭주를 막는 국민 저항운동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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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가 너한테 빨갱이라고 했어?"
"아니. 그냥."

굳이 대답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폼이 더 수상했다.

"대답해봐. 누가 너한테 빨갱이라고 한 거야?"
"아니야."
"그럼 왜 갑자기 빨갱이를 물어봐? 어디서 빨갱이라는 말을 들었어?"
"저번에 아빠가 엄마하고 대화할 때 빨갱이라고 그랬잖아.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래서 빨갱이가 뭐야?"

다행이었다. 아이가 어디서 빨갱이라는 말을 들은 건 아니었다. 다만 아내와 내가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흘러나왔던 빨갱이라는 단어가 매우 자극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어린 아이에게 빨갱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것이 옳은지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설명하기로 결심한다. 빨갱이만큼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가 또 어디 있겠는가.

"빨갱이는 예전에 우리하고 북한이 사이가 나빴을 때, 한국에서 살면서 북한 편을 들었던 사람들을 욕하면서 부르던 말이야. 그런데 나중에는 정부가 자기 말 안 듣는 사람은 다 빨갱이라고 불렀고. 예전에 제주도 갔을 때 4.3항쟁 이야기해줬지? 이승만 대통령이 그때 죽인 사람들을 다 빨갱이라고 했어."
"빨갱이가 좋은 뜻은 아니네?"
"응. 이제 남한하고 북한이 사이가 좋아지면 없어져야 하는 단어야. 그러니까 너도 어디 가서 누구를 빨갱이라고 부르면 안 돼."

2017년 25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제14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시민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집단을 규탄하고 있다.
▲ 박근혜 탄핵반대 집회 '빨갱이는 죽어도 좋다' 2017년 25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제14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시민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집단을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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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묘했다. 내가 빨갱이라는 단어에 이리 민감하게 반응할 줄이야. 사실 난 빨갱이라는 단어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역사적 연원을 알기에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단어였지만, 동시에 그것은 폭압적인 자본이나 정치세력에 맞서 진보적인 신념을 가지고 싸우는 이들을 가볍게 지칭하는 말이기도 했다. 빨갱이는 부모님 세대에게 주홍 글씨 낙인 그 자체였지만, 한 세대를 넘기면서 충분히 희석되었다. 아니, 희석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아이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생각만으로 머리가 쭈뼛 서다니. 그것은 결국 아직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가 가지는 함의였다. 분단체제에서 무의식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레드 콤플렉스의 힘. 이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우리가 가장 빨리 극복해야 할 우리 안의 공포일 것이다.

#2. 아이들의 노래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볼만한 멜로 드라마~괜찮은 결말~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초등학교 떼창의 주인공들
▲ 사랑을 했다 초등학교 떼창의 주인공들
ⓒ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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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이들은 차 안에서 소위 떼창을 한다.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 40대가 되니 이젠 아이들 덕분에 아이돌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 노래가 매력적인 것이 개사가 쉽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수준에 맞춰 노래를 지어낸다. "사망을 했다~", "똥을 쌌다~" 역시 유아들에겐 똥이 최고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까꿍이가 굳이 나를 불러 새로운 개사라며 들려준다. 요즘 3학년 자기네 반에서 유행하는 내용이란다.

"정치를 했다~순실이 만나~지우지 못할 역사를 썼다~
볼 만한 역사 드라마~괜찮은 감옥~그거면 됐다 널 사형한다~"

할 말이 없었다. 사극을 보면 조선시대 때 저자거리에서 아이들이 당시 세태를 풍자하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던데 딱 그 모양이었다. 누가 딱히 가르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이 지어낸 내용이 저 정도라니. 아직도 분단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온갖 악담을 퍼붓고 있는 어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었다.

아빠가 누나의 노래를 들으며 관심을 보이니 이번에는 둘째와 셋째까지 끼어들어 또다시 노래를 만들어낸다. 역시나 어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다.

"선거를 했다~문재인 뽑혀~문재인 대통령 됐다~
볼 만한 선거 드라마~괜찮은 우리나라~그거면 됐다 널 사랑한다~
문재인 대통령~김정은 만나~남북정상회담 했다~
김정은 위원장~트럼프도 만나~핵 미사일 없앴다~"

선거, 새로운 시대의 시작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첫 만남을 갖고 있다.
▲ 역사적인 북-미 정상 첫 만남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첫 만남을 갖고 있다.
ⓒ 케빈 림/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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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식당에서 감자탕을 먹던 까꿍이가 그 앞에 앉아있던 선거운동원을 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아빠, 저 사람들은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는 거야?"
"그럴 걸?"
"저 사람들이 선거에서 뽑히면 어떻게 돼?"
"글쎄. 그런데 저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 풀어주고 문재인 대통령을 가둬야 한다고 이야기하니까."
"그럼 저 사람들 선거에서 뽑히면 우리나라 망하겠네."

6.13 지방선거가 하루 앞이다. 비록 북미정상회담 때문에, 빤한 결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지만 이번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에 걸맞은 정치를 만드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빨갱이를 운운하고, 우리 안의 레드 콤플렉스를 부추기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동원으로 폄훼하는 세력들. 이번 선거는 그들에게 촛불 이후 세상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냉전의 사고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대륙을 꿈꾸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모두들 투표 잘하시기를.


태그:#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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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6.13 지방선거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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