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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6월 13일. 민심은 매서웠다. 자유한국당은 대구시장과 경북지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전패하면서 지도부가 붕괴했다. 바른미래당 역시 기초자치단체장 0석을 내며 참담한 성적표를 마주해야 했다. 민주당은 14곳의 광역자치단체장을 당선시키며 승리했다. 

민주당은 부산시장, 울산시장, 경남지사를 당선시키면서 기초자치단체장도 상당수 획득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를 두고 김영삼이 노태우와 손을 잡으면서 부산, 경남 지역이 보수세로 돌아섰던 3당합당의 저주가 드디어 깨졌다는 말이 나왔다.

3당합당의 저주를 깨고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평생 노력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지금 그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이루려고 했던 바는 뒤늦게 이루어진 듯 하다. 노무현의 시대가 왔지만 정치인 노무현은 지금 자리에 없다.

야권 정치인으로서 부산에서 낙선해도 도전하고 또 도전했던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감동을 배로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아직 모르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다.

노무현이라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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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이라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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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라는사람>은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촬영한 이창재 감독이 쓴 책이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노력했던 정치인 노무현의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경선을 다루었다.

이 책도 큰 틀은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따라 간다. 인간 노무현의 삶과 정치인으로서 지역주의와 싸우고 부산에서 낙선을 거듭했던 그의 정치 역정, 그리고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승리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와 큰 틀에서 내용이 비슷하지만,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본 사람들이 이 책을 볼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촬영하면서 이창재 감독이 느낀 소회와 영화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창재 감독은 이 책에서 <노무현입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풀어내기도 한다.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노무현과 관련된 수십 권의 책과 영상자료를 분석한 나는 '이 정도면 내가 노무현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중략)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내가 기획한 틀은 더 처참히 무너졌고 나중에는 '대체 노무현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가?'하는 의문에 휩싸일 만큼 그 커다란 존재감에 휘청거렸다. 그를 하나의 틀 안에 가두려 한 나는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나의 틀로 묶기엔 그는 너무 큰 존재였다. -131p.


책이 그리는 인간 노무현은 따뜻한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 어렵고 가난한 삶을 살았고, 변호사가 된 후에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고졸인데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법원 기록을 받지 못하는 수모도 겪었다. 감히 고졸인데 기록을 요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 기록 하나 보러 왔습니다. 재판을 준비해야겠으니 좀 보여주십쇼" 하면 법원 직원들이 낼애하게 거절해버렸어요. 일부러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서명이 나지 않았어요" 합니다. 그러고는 돌아서며 들으라는 식으로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상고 출신이 어쩌다 고시에 걸려서"라고 비꼬는 거예요. - 99P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성공했다는 이유로 남을 무시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는 길을 택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인간 노무현은 살면서 생존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차원이 다른 선택을 한 사람으로, 자신의 얇은 경험치와 예상치를 뛰어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변호사 시절 운전기사를 했던 노수현씨에 따르면, 변호사 수가 극히 적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졌던 시절임에도 노무현 변호사는 운전기사와 허물없이 대화했고, 나중에는 법학을 가르치고 민법 책을 사주며 공부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노무현 변호사는 부산 지역 법조인을 담당하는 중앙정보부 직원 이화춘과 친해지기도 했다. 이화춘은 노무현 변호사를 목소리만 들어도 호감이 가는 사람, 자신의 친구라고 기억했다. 책은 이런 관계는 한편으로는 대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향한 무한한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평한다.

반면 정치인 노무현은 투사였다. 그는 비주류로 항상 주류와 맞서 싸우는 길을 택했다. 군사 독재 세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일부러 험지인 부산 동구에 가고, 3당 합당에 맞서기 위해서 민주당을 갔다가 이후 10여년간 한 번도 부산에서 당선되지 못하는 고통을 겪는다.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지만 지역주의의 벽은 컸다. 그는 매번 지기만 했다.

그렇지만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그 바보같은 모습에, 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노사모'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역주의에 맞서 계속 낙선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조직이었다. 이들은 기존 당원들의 문화도 잘 모르고 당내 경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노사모 사람들은 열정을 가지고 노무현 후보를 돕기 위해 경선장에 뛰어들었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노사모 사람들은 직업도 나이도 다양하지만 우리네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사람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들의 노력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후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부산에서 낙선만 몇 번을 하고 당내 세력도 없어서 비토당하던 노무현 후보가 결국 대통령 경선에서 승리한다. 주류 세력의 견제, 차기 유력 주자였던 이인제라는 벽을 모두 깨고 승리에 도달한 것이다. 책은 그 감동의 이야기를 다루며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싣어 현장감있는 설명을 보여준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오늘, 지역감정의 벽은 상당히 붕괴한 것이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로 드러났다. 계속해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던 바보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어준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유시민 전 장관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들의 쇼를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노 대통령이 진심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시민 전 장관을 만나 "노무현의 시대가 올까요?" 하고 물었다. 유 의원은 "아, 오죠, 오지 않을 수 없죠. 반드시 옵니다"고 답했다. 유시민이 들은 말은 "근데 노무현의 시대가 오면 내는 그기 없을 것 같소"였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미묘한 떨림을 느꼈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 떨림이 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 - 영화 <노무현입니다> 원작

이창재 지음, 수오서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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