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도쿄 나카노구 나카노제로홀에서 영화 <공범자들>이 상영되고 있다.

9일 오후 도쿄 나카노구 나카노제로홀에서 영화 <공범자들>이 상영되고 있다. ⓒ 지상훈


 
 
 9일 오후 도쿄 나카노구 나카노제로홀에서 영화 <공범자들>을 관람하고 있는 일본인 관객들.

9일 오후 도쿄 나카노구 나카노제로홀에서 영화 <공범자들>을 관람하고 있는 일본인 관객들. ⓒ 지상훈

9일 저녁 일본 도쿄 나카노역 근처 나카노제로홀 앞에 영화 팸플릿을 손에 든 일본인들이 줄을 길게 선 채 기다리고 있다.

 

이날은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이 처음으로 일본에서 상영되는 날이다. 최승호 감독(현 MBC사장)이 만든 <공범자들>은 이명박 집권 이후 한국 공영방송이 정권에 의해 장악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작년 여름 개봉돼 언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다.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해 일본인들이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가져줄까 당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온라인을 통해 수용인원 500명을 훨씬 뛰어넘는 650명이 예약을 했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뒷줄에 선 사람들은 극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고, 아쉬운 사람들 10여명은 극장 밖 휴게실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최 감독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영화가 시작됐다. 이명박 정권이 KBS, YTN, MBC 등 방송사를 차례로 장악해나가고 새로 들어온 경영진들이 권력에 굴종하는 행동이 스크린을 통해 나오자 관객석에서 실소와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관객들은 최 감독이 극구 피하며 '도망'다니는 경영진들을 집요하게 쫓아가며 인터뷰할 때는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특히, '유감을 표한다'는 정권측 인사의 말에 항의하는 노조원이 "당신이 일본 천황이냐, 유감을 표하게"라고 하는 장면이나, 기자를 비하하는 표현인 '기레기'를 '마스코미(언론)'와 '고미(쓰레기)'를 합친 '마스고미(マスゴミ)'로 절묘하게 번역한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김민식 PD가 MBC 사옥안에서 '김장겸은 물러가라'를 외치다 경비에게 제지당하자 페이스북 라이브로 방송하는 모습에선 폭소가 터졌고, 투쟁중 암에 걸린 이용마 기자의 이야기에는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최승호 감독이 9일 오후 도쿄 나카노구 나카노제로홀에서 영화 <공범자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최승호 감독이 9일 오후 도쿄 나카노구 나카노제로홀에서 영화 <공범자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 지상훈

 
 
 9일 오후 도쿄 나카노구 나카노제로홀에서 영화 <공범자들> 상영회에서 관객들이 최승호 감독의 얘기를 듣고 박수치고 있다.

9일 오후 도쿄 나카노구 나카노제로홀에서 영화 <공범자들> 상영회에서 관객들이 최승호 감독의 얘기를 듣고 박수치고 있다. ⓒ 지상훈


"일본 기자들이라면 저렇게 투쟁할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난 뒤 만난 일본인 관객들은 한국 언론인들의 투쟁에 감동을 받았다면서도 한편으로 일본 언론의 현실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최근 모리토모학원이나 가케학원 문제 같이 총리를 비롯한 권력층의 비리 문제와 공문서 날조 의혹이 연일 터져나오고 있는데도 제목소리를 못내고 있는 일본 언론과 시민사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자리가 없어 휴게실에서 모니터로 봤다는 도리모토 아스시(43)씨는 "기자들이 권력에 굴종하는 사장에게 물러나라며 주먹을 쥐고 외치는 모습을 보고 통쾌했다"며 "영화를 보는 내내 일본의 기자들이라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계속 반문하며 봤다"고 말했다.

 

배용준이 나오는 드라마 <겨울연가>를 보고 한류팬이 됐고 최근에는 <택시드라이버>도 봤다고 자랑하는 한 70대 여자 관객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일본과 달리 힘이 있다"며 "이 영화를 보니 한국인들은 불만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는 일본인들과는 역시 다르더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상영회에는 <도쿄신문><아사히신문><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스나가미 아사코 <도쿄신문> 기자는 "잘못된 사장이나 경영진이 있으면 기자들이 힘을 합쳐 퇴진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는 한국이 부럽다"며 "특히 영화 마지막에 최 감독이 이명박 전 대통령 면전에서 '당신이 한국 언론을 망쳤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쏘아붙이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영화 상영후 열린 토크쇼에서 최승호 감독은 자신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며, 그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감독은 "1987년 이후 진행된 민주화 투쟁으로 '이 정도면 언론자유가 거의 완벽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게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빼앗겼던 언론자유를 시민의 힘으로 되찾아온 만큼 이제는 더 이상 정치가 언론에 간섭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한국 언론인들의 싸움을 일본 사회에 널리 알리고 일본 언론인들의 큰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공범자들> 상영회는 10일 오후 릿교대학교에서 한 차례 더 열리고, 최 감독과 일본 학자, 언론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일본의 공범자들은 누구일까'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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