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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의 정담(왼쪽부터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진천규 재미 언론인, 박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사제의 정담(왼쪽부터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 진천규 재미 언론인, 박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김정호(민화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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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역사는 영원히 반복된다'는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6.12 북미정상회담은 1972년 2월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여 미-중 수교의 물꼬를 튼, 이른바 '핑퐁외교'를 훨씬 뛰어넘는 그야말로 세기적인 회담입니다."

내가 '6.12 북미정상회담'의 의의를 묻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김홍걸 상임의장의 또박또박한 답변이었다. 마치 지난 날 수업시간 때처럼.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2년 전, 트럼프가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그날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까'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철저한 실용주의자이기에 잘만 풀리면 남북 및 북미관계는 민주당의 힐러리가 당선되는 것보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유리할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연을 SNS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때의 제 예상은 맞은 것 같습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룬다면, 트럼프 미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탈 만한 일로, 이는 하늘이 우리 겨레를 돕는 일입니다."

함께 자리한 재미 언론인 진천규(전 <한겨레> 사진부) 기자가 말했다.

"정확한 분석이요, 지적입니다. 남북 및 북미의 화해 분위기가 금년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마치 브레이크 없는 열차가 저 멀리서 마주 보고 달려와 언제 부딪칠지 모를 것 같은 냉전 시기로,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염려될 정도로 대단히 험악하고 암울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분위기가 김 위원장의 신년사로 단박에 돌변했습니다. 지난 1월 1일부터 6개월 동안은 지난 70년 동안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일들이 다 이루어진 듯합니다. 또 앞으로 6개월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변화가 있으리라고 예상해 봅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교육자의 보람을 느꼈다. 그들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특별한 만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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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언론인 진천규 기자
 재미언론인 진천규 기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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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도 시민기자
 박도 시민기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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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초순 재미 언론인 진천규 기자가 4월에 북한을 다녀왔다는 말과 함께 한 번 만나기를 청했다. 그런데 나는 왠지 5월에 제자들을 만나는 게 싫어 다음으로 미뤘다. 그 며칠 후 공교롭게도 민화협 김홍걸 상임의장이 "곧 한 번 뵙고 싶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마침 그 무렵 6.12 북미정상회담이 결정되었고 곧이어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18주년'이 되는 때였다. 그래서 셋이서 밥 한 끼 같이 나누면서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는 것은 현역 시민기자인 나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 같았다.

세 사람이 일정을 상의한 결과, 지난 7일 오후 5시 만나기로 했다. 장소도 아예 오마이뉴스 스튜디오로 정했다. 진 기자가 북에서 애써 촬영해 온 동영상을 큰 화면으로 보면서 정담을 나누고자 함이었다.

그날 우리 세 사람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악수로도 모자라 가벼운 포옹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진 기자가 준비해온 동영상을 보면서 그리운 북녘 산하와 동포들의 생활상, 그리고 취재 뒷이야기를 들었다.

진천규 기자는 재미동포(영주권자)로 2017년 10월과 11월, 그리고 올 4월 등 세 차례 약 30여 일 북한의 신의주, 평양, 원산 등지를 살폈다. 그리고 그곳의 풍물을 손수 동영상으로 담아와 JTBC, MBC, SBS 등의 매체를 통해 북녘 소식을 여과 없이 전한 바 있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초청받아 북녘의 참 모습을 영상과 강연으로 전하고 있다.  

특히 진 기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14일 밤 8시 6.15 공동선언문을 구두로 합의한 뒤에 두 정상이 손을 치켜든 역사적인 순간을 촬영한 바 있다.

진천규 재미 언론인은 내가 1972년 서울 오산중학교 1학년 12반 담임을 했을 때 학생으로 만났다. 김홍걸 상임의장은 1979년 이대부고에서 고1, 고2, 이태 동안 국어를 가르칠 때 만났던 학생으로 그새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의 인연은 얽히고 설킨, 그래서 아주 특별했다.

[관련기사; 작년에 북한 다녀온 제자, 그의 사진이 낳은 결과 / '옛 훈장'이 김홍걸 위원장에 보내는 조언 4가지]

비핵화를 하루 빨리 이루는 지름길은

우리 세 사람은 모두 북한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김홍걸 상임의장은 2011년 김정일 위원장 장례식 때 어머니 이희호 여사를 모시고 조문 차 다녀왔고, 나는 2005년 7월 20일부터 7월 25일까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 참석한 바 있다.

나와 김 의장은 12년 전, 7년 전 방북 때보다 훨씬 더 발전된, 몰라보게 변한 평양과 북녘의 도시와 산하를 보면서 그 발전 속도에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시했다.

"남쪽 사람들은 북녘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북녘이 80이라면 20~30 정도만 알고, 아직도 북녘을 1970, 80대 어려웠던 그 고난의 시절로만 알고 있습니다."

 슈퍼에서 장을 보는 평양 주부
 슈퍼에서 장을 보는 평양 주부
ⓒ 진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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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기자는 북녘 인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배지만 떼면 남쪽 사람들과 구별이 안 될 만큼 옷차림이 밝아졌고, 손전화 사용도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그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고 했다. 김홍걸 의장은 "스위스에서 공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엇보다도 인민 경제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일 거"라고 내다봤다.

우리 세 사람은 다시 6.12 북미정상회담 얘기로 돌아갔다.

"회담이란 'Give and Take(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상대편의 양보를 더 받기 위한 이견 차이로 한때 삐걱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김정은 위원장의 통 큰 양보와 미국 측의 이해로 이제는 상호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잘 되어 가리라 믿습니다. 또 회담의 결과가 현실적으로 한꺼번에 다 이루어질 수 없을지언정 잘 풀려 가리라는 예감이 들며,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 의장의 낙관적인 전망에 진 기자도 공감을 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저는 북미회담 과정에서 미국 측이나 한국 측 언론이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만 요구해 왔지, 북측에 대한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 보장)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최근에야 미 국무장관 폼페오를 통해 그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지요. 협상이란 주고 받기 마련인데, 우리 측에서 상대에게 받을 것만 요구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이번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이 두 문제가 대등하게 논의되어 빅딜(Big deal), 곧 통 큰 합의가 이루어지리라 예상합니다."

이어 두 제자는 모두 '이번 6.12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화답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통 큰 결단과 문재인 대통령의 성심을 다한 중재로 시작된 것이다. 그에 대한 한미일 언론의 평가가 매우 인색하다. 하루라도 빨리 비핵화를 이루고 남북이 화해 공존하는 데 중요한 것은 북에 대한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인민들의 자긍심을 제대로 인정해야 줘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특히 이번에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장에 김정은 위원장이 적극 나선 것은 대북제재에 대한 항복이 아니라고 봤다. 김 위원장이 당당하고 주도적으로 비핵화를 결정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남북 및 북미 간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데 공감했다.

 평양의 학생들1
 평양의 학생들1
ⓒ 진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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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학생들2
 평양의 학생들2
ⓒ 진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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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의 학생들3
 평양의 학생들3
ⓒ 진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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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들의 높은 자존심과 자부심

나는 북에서 본 북녘 동포들의 높은 자존심과 자부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김 의장도 그들의 강한 자존심과 자부심을 매우 높게 평가하면서, "그것이 바로 북한 사회를 유지해 온 원동력"이라고 봤다.

김 의장은 "만일 그들이 그런 자존심이나 자부심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북한은 매우 혼란한 사회가 됐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 겨레와 다음 세대가 함께 떠안아야 할 부담이 됐을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아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에 진 기자는 "미국이 북한의 핵도 핵이지만 인민들의 자존심과 자기 국가를 지키겠다는 뜨거운 단결력을 더 두려워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그 사례로 개성공단에 대한 얘기를 했다.

"남쪽 사람들은 북한 동포의 생계를 돕고자 개성공단을 만들었다고 몹시 생색 내지만, 북에서는 이와는 달리 일손이 부족한 남쪽 기업들을 자기네가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말에 진 기자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2004년 개성공단이 문 열었을 때, 최초의 월급은 50달러였습니다. 2016년 문을 닫을 때 월급은 78달러였고요. 당시 북한 일반 노동자가 중국에서 받는 월급이 300달러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북측이 월급을 조금만 인상해 달라고 하면 남쪽 일부 언론에서는 걸핏하면 북녘 사람들이 달러 맛을 알아 그 돈으로 핵무기 만들려고 그런다고 분탕질을 하더니 결국은 박근혜 정부 때 아예 개성공단 문을 닫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은 것이지요." 

김 의장은 북미정상회담 후 트럼프와 김정은 관계를 아주 재미있게 예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뼛속까지 장사꾼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이번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그 순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는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자기를 무시하던 정치인들과 언론에게 지난날 클린턴도, 오바마도 미처 하지 못한 일을 자기는 능히 해냈다고 대단히 뻐길 것입니다. 그 얼마 후 미국 언론이 김정은 위원장을 비난하게 되면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그 사람 잘하고 있는데 당신들 왜 그래?'하고 두둔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문 성립 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악수
 6.15 남북공동선언문 성립 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악수
ⓒ 진천규 재미 언론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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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진 기자는 자기가 촬영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양 정상이 함께 손을 치켜든 사진을 화면에 띄운 뒤 그때를 회고했다.

"2000년 6월 14일 저녁 8시 김대중 대통령 주최의 목란관 답례 만찬 때 저는 말석에 앉았는데 박수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청와대 공보수석에게 다가가 무슨 박수냐고 묻자 공동선언문 합의 박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그대로 넘기면 안 된다고 하자, 공보수석이 김 대통령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전했습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 대중 대통령의 손을 치켜들고 '그럼, 우리 여기서 배우 한 번 하십시다'라고 말씀한 뒤 호탕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 줬습니다."

진 기자는 "이 사진 덕분으로 그동안도 앞으로도 북한을 쉬이 방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내가 김홍걸 의장에게 그때의 일화를 물었다.

"저는 그때 동행치 않아 현지 사정은 잘 모릅니다. 다만 아버지께서 평양에서 돌아오신 후 대단히 기뻐하시던 모습은 눈에 선합니다. 평생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셨고, 선거에 여러 번 낙선도 하시는 등 온갖 파란만장한 역경을 다 겪으신 터라, 웬만한 일에는 지극히 담담하셨습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돌아오실 때는 당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마치 당신의 평생소원이 다 이루어진 듯, 만면의 웃음을 머금은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눈에 삼삼합니다."

그 말을 진 기자가 이어 받았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우리 겨레에게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희망을 준 한 줄기 서광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15 남북공동선언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4 남북공동선언'으로,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공동선언'으로 그 맥을 같이 하며 이어져 왔습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지난날 냉전의 시대에서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연, 그야말로 주춧돌이었습니다."

그러자 김 의장이 그때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6.15 남북공동선언문 배경을 전했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 아버지는 아무런 사전 조율이 없이 북녘에 갔습니다. 평양에 도착한 후 아버지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나이 먹은 내가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느냐', '7천만 동포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에서는 먼 길을 찾아온 손님은 거저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등의 말로 간곡히 김 위원장을 설득하여 6.15 남북공동선언문을 이루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흔 훈장의 뜨거운 눈물

그 말에 나와 진 기자는 박수를 쳤다. 나는 몸에 밴 '훈장'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가 있다'는 백범 선생의 말씀을 두 제자에게 지난날 수업 때처럼 간곡히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6.12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성사돼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 번영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제 아버지는 남북의 겨레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것을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박도 선생님은 꼭 '그날'을 보십시오."

김 의장이 나에게 덕담을 하자 곁에 있던 진 기자도 한 마디 보탰다.

"선생님, '그날이 오면' 저희 두 사람이 선생님을 평양 옥류관으로 꼭 모시겠습니다."

"정말 고맙네. 한반도에 이미 봄은 지나갔으며, 지금은 여름이고, 곧 결실의 가을이 올 것이네. 이것은 우리 민족사의 도도한 흐름이네. 그 흐름에 자네들이 앞장서고 있다니 정말 고맙고 그저 감개무량하네.

아직도 이 도도한 흐름을 모르고 분란을 일으키는 이들이 앞으로 더 이상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고,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더 이상 되지 말라고, 강원도 산골의 한 훈장이 간곡히 호소드리네. 1백 년 전에 하나였던 우리, 머잖아 반드시 다시 하나가 되네. 그게 역사의 정의요, 순리라네."

그 말을 마치자 일흔 훈장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덧붙이는 글 | 진천규 재미 언론인의 ‘오늘의 북한 영상과 북미회담 이후의 남북관계 전망’ 강연 신청 안내 [010 - 6294- 6150 진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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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단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