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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7시부터 효자동 참여연대 카페통인에서는 조촐한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박진수(81) 화백과의 만남이다. 박진수 화백은 지난 5월 12일(토)부터 5월 30일(수)까지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작품전 '시골 노인이 꽃을 꺾어드니 온 세계가 봄이로다'를 연 바 있다.

 박진수, <끌다>, Oil on Canvas 650×530, 2015
▲ 박진수, 끌다 박진수, <끌다>, Oil on Canvas 650×5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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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밀다>, Oil on Canvas, 650×530, 2015
▲ 박진수, 밀다 박진수, <밀다>, Oil on Canvas, 650×5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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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라면>, 455×379, Oil on Canvas,2017
▲ 박진수, 라면 박진수, <라면>, 455×379, Oil on Canvas,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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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모임은 지난 달 작품 전시를 성황리에 마치고 박 화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였다. 20여 명 가까이 모인 까페통인에는 지난 번 전시회 때 선보이지 않았던 화사한 꽃 그림 몇 점이 벽에 걸려 있었다.

따로 격식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평소 박진수 화백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박수근 화백과의 만남에 대한 질문을 첫 번째로 던졌다.

"제가 27살 때였을 겁니다. 박수근 화백께서 경주 남산의 돌부처 스케치를 하러 오셔서 한 달간 박수근 화백과 지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때 저의 그림을 보여드렸지요. 그랬더니 대학 나온 사람 그림보다 좋다고 하시면서 계속 그리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경주 남산의 숱한 돌부처를 스케치하고 탁본하는 과정에서 박수근 선생의 감정이 절제된 화풍(畫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박진수 화백은 그림을 계속할 수 없었다. 박 화백이 살아온 시대는 그림으로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더욱이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을 한 어머니와 한국전쟁 이후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박 화백 가족은 빨갱이로 낙인찍혀 오래도록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린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소년의 꿈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어야만 했다. 그리고 가장으로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다 육십 가까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붓을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육십의 나이까지 붓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손에서는 단 한 번도 스케치북이 떠난 적이 없으며 화가의 꿈을 접은 적이 없다.

내가 박진수 화백을 만난 것은 지난 2010년이었다. 그때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위한 책을 쓰기 시작하던 때로 이효정 지사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박진수 화백이 아들임을 알게 되었다. 비가 몹시 내리던 날, 어머니의 자료를 요청한 나를 위해 박 화백은 시집과 사진을 들고 광화문 사무실로 단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여성독립운동가 책을 쓰면서 여러 후손을 만나보았지만 박진수 화백처럼 곧바로 자료를 제공해준 사람은 박 화백이 처음이었다. 대개는 6하 원칙을 들어 사진의 용도를 캐묻고도 미심쩍어 선뜻 사진 한 장 주기를 꺼렸다. 그러나 그때 박진수 화백은 용도도 묻지 않고 퍼붓는 빗속을 뚫고 달려와 어머니가 팔순에 쓴 시집을 품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앞줄임)그리도 즐기시던 쑥버무리 쑥절편
소담하게 담아 놓고
싸근한 들나물 무쳐 보리상반 밥에
달큰한 고추장 곁들여 비빈 밥
어머니와 도란도란 먹어 보고 싶다(뒷줄임)"
- 이효정 시집 '회상' 가운데

박진수 화백의 어머니, 독립운동가 이효정 지사의 시들은 하나 같이 한 폭의 수채화 그림 같았다. 살기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면서도 따스한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시어들에 옷깃을 여몄던 기억이 새롭다.

박진수, <꽃 그림자>, 530×409, Oil painted on canvas, 2018
▲ 박진수, 꽃 그림자 박진수, <꽃 그림자>, 530×409, Oil painted on canvas, 2018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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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작가와의 만남 장소인 참여연대 카페통인에 전시된 작품들
▲ 박진수 작품 박진수 작가와의 만남 장소인 참여연대 카페통인에 전시된 작품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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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박진수 화백의 그림에서도 어렴풋하게 어머니의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시어들을 발견하게 된다. 얼른 보아서 무엇을 말하는 지 알 수 있는 주제들, 그러나 결코 가볍게 넘겨 볼 수 없는 그 무엇은 향수 같은 것이면서도 결코 먼데 사람들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임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박 화백님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입니까?"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물었다.

"억압과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료로부터의 해방, 색체로부터의 해방, 보이지 않는 끈에 얽혀 있는 것으로부터의 해방, 내게 있어 그린다는 행위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딘지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삶이 되었든, 사상이 되었든, 미술이라면 그 어떤 사조가 되었든,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감이 충족될 때 비로소 진정한 그림이 나오고 예술의 완성을 이루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선생님 앞으로의 계획은요?" 또 물었다. 

"저는 무계획으로 삽니다. 계획이란 것을 따로 세우지 않지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린다는 말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드니 붓놀림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인가 틀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살아온 노 화백의 그림을 다 보지 않았다고해도 두어 시간 나눈 대화에서 익히 그의 '고집스러움', '그다운 예술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일제침략기에 스스로를 불태워 조국의 독립에 헌신한 어머니 이효정 지사의 혈육이라는 점은 그의 예술과 결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엇임'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강릉에서 서울까지 먼 걸음을 한 최현숙씨는 "박진수 화백의 그림은 다양하고 평범한 삶의 리얼리티가 담겨있다. 빈곤한 이들이 겪는 풍상과 부서짐과 세움이 뒤엉킨 씁쓸한 풍경과 치유의 힘을 가진 자연이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가슴 깊이 가라앉았던 슬픔이 떠오르기도 하고 생명의 환희가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박진수 화백의 어머니, 여성독립운동가 이효정 지사는?

여든을 넘긴 이효정 지사의 고운 모습
▲ 이효정 여든을 넘긴 이효정 지사의 고운 모습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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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李孝貞, 李春植, 1913.7.28.~2010.8.14.) 지사는 1930년대 초 서울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잡혀 옥고를 치렀다. 이효정 지사는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 나가 만세를 부르다가 종로경찰서에 잡혀 들어갔다.

3학년 때는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을 주도해 무기정학을 당했다.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는데 1933년 9월 21일, 종연방적(鐘紡)경성제사공장에서 파업이 일어나자, 이효정 지사는 이재유의 지도를 받아 여직공을 선동하여 총파업을 주도하였다.

종방 파업 이후 1933년 10월 17일 청량리에서 동대문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5년 11월, 이효정 지사는 서울에서 이재유ㆍ권우성 등이 조직한 '경성지방좌익노동조합 조직준비회'에 가담하여 동지를 모아 항일의식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다가 일경에 잡혀 약 13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광복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남편이 월북하고 2남 1녀와 함께 남한에 남은 이효정 지사는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 찍혀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다. 요시찰인물이 된 이효정 지사는 수시로 사찰기관에 연행돼 고문과 취조를 당하게 된다. 영장 없이 끌려가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고 고문으로 팔목이 부러지는 장애를 입으면서 억울한 옥살이도 감수해야 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뤄지자 이효정 지사에 대한 사찰도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족이 겪은 말 못할 가슴의 한은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육사의 시신을 거둔 이병희 지사의 친정 집안 조카인 이효정 지사는 칠순이 넘어서 시 창작에 몰두하며 시름을 달랬는데 <회상>, <여든을 살면서> 라는 두 권의 시집을 남기고 97살의 생을 마감했다. 정부는 이효정 지사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작품 앞에 선 박진수 화백과 기자
▲ 박진수2 작품 앞에 선 박진수 화백과 기자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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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카페통인에서 열린 박진수 작가와의 만남 모습
▲ 박진수3 참여연대 카페통인에서 열린 박진수 작가와의 만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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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신한국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박진수, #이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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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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