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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기는 안 뒤집혀! 나로서는 상상이 안 가. 여기가 뒤집힌다는 건 자유한국당이 서울에서 한 군데도 (구청장을) 못 건진다는 거야.
B: 아직 몰라. 4년 전에는 박원순 표도 많이 나온 동네거든. 모르지. 이번에도 1번을 찍게 될지...
A: 무슨 소리야? 당 번호가 (2번으로) 바뀌었는데 당연히 당을 따라가야지!!
B: 대통령과 시장 다 바뀌었는데 구청장 바꾸면 어떻게 되나 함 보자니까?

8일 오후 서울 서초동의 서초구립중앙노인종합복지관 로비. 1500원짜리 테이크아웃 커피를 파는, 5평 안팎의 휴게실에서 70대 노인들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30년 친구'라는 두 사람이 자기가 지지하는 구청장 후보를 얘기하다가 순간적으로 언성이 높아졌다. A 노인은 "저 친구와는 동네 선거로 아웅다웅할 일이 없었는데...."라고 B씨를 가리키며 말끝을 흐렸다.

기자가 점심식사를 한 잠원동의 식당 주인(57)도 "서울 서초구는 주민들이 다른 동네 선거 얘기를 하면 했지,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선거는 안 하는 곳이다. 그런데 올해는 좀 다른 것 같다. 나에게 다짜고짜 '내기를 하자'는 손님들도 생기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초구는 6.13 지방선거에서 소리 소문 없이 '격전지'로 부상한 곳이다. 자유한국당 조은희 구청장에 맞서 더불어민주당 이정근 후보, 바른미래당 김용석 후보 등이 출사표를 던졌는데, 지난 한 달 동안 네 차례 실시된 서초구청장 여론조사 결과는 과거와는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준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5월 5일: 이정근 32.4% 조은희 30.5%, 김용석 4.8% (뉴스토마토-KSOI)
5월 27일: 조은희 44.2%, 이정근 36.0%, 김용석 4.8% (자유한국당 박성중의원실-유앤미리서치)
6월 2~3일: 조은희 43.8 이정근 40.0 김용석 5.7(HCN 서초방송-리얼미터)  
6월 5일 : 이정근 36.1%, 한국당 조은희 33.1%, 김용석 3.1%(뉴스토마토-KSOI)

서초을 국회의원이 의뢰한 유앤미리서치 조사를 제외하고는 이정근 후보와 조은희 후보가 오차 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형국이다.

서초구에서 '불패의 신화'를 써나가던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비상이 걸린 셈이다.

1988년 강남구로부터 서초동·잠원동·반포동·방배동·양재동 등이 분구된 후 치러진 첫 총선부터 서초구의 유권자들은 국회의원과 구청장 선거에서 단 한 번도 민주당 계열 정당 후보를 선택한 적이 없다. 첫해에는 서초갑에서 무소속 박찬종 의원, 서초을에서 통일민주당 김덕룡 의원이 각각 당선됐는데 1990년 3당 합당으로 정치 지형이 보수화되자 김영삼이 이끄는 여당과 함께했다. 1995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후에는 구청장까지 모두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이 독식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2016년 지방선거부터 지역구에 미세한 균열의 조짐이 보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한 박원순 후보가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를 서초구에서 11134표 차이(5.1%)로 따라붙는 선전을 했다. 구청장에 처음 출마한 조은희 후보는 선거에서 진 정몽준보다 6000여 표 적은 득표로 당선됐다.

2018년 총선에서 강남구에서 민주당 국회의원(전현희)을 처음 배출한 후에는 민주당 내에서도 "서초구에서도 해볼 만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서초갑에 출마했던 이정근 후보를 구청장 후보에 단수 공천했다. 당 관계자는 "총선에 패배한 후에도 험지 중의 험지인 서초 지역구를 꾸준히 갈고 닦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말했다.

야권이 분열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서초구에서 1위(36.4%)를 차지했다. 반포동의 시민 장아무개(45)씨는 "선거 전에는 '문재인 되면 좌경화된다'는 걱정도 많았는데 김정은 두 번이나 만난 것도 그렇고 '이 정도면 국정을 무난하게 이끈다'는 긍정평가도 많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선거 전략도 '지역구 여당'인 자유한국당 심판론을 부각시키며 '36.4%+@'를 거두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서초구청장 후보가 7일 오후 서초구 반포쇼핑센터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사회자의 제안으로 송영길 의원에 업히고 있다.
 이정근 더불어민주당 서초구청장 후보가 7일 오후 서초구 반포쇼핑센터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사회자의 제안으로 송영길 의원에 업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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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3시 이 후보의 반포쇼핑타운 유세에는 박원순 캠프의 상임선대본부장을 맡은 홍익표 의원이 나섰다. 홍 의원은 "방배동에서 15년 살다가 국회의원 되면서 성동구로 이사갔다"며 "강남구는 새누리당 집권 내내 신경을 써서 이런저런 기업들이 다 있는데, 서초구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유세가 끝난 후 기자들과 즉석 간담회 자리에서 이 후보가 "이렇게 기자들이 단체로 와준 것은 처음이다. 제가 서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뛴 것에 대한 결과 같아서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2년 전 총선에 출마해서 명함 내밀면 '나는 너와 다르다'는 단호한 몸짓으로 거부하는 유권자들이 정말 많았다. 올해는 먼저 인사하고 '이번에는 좀 이겨보라'고 주문하는 분들도 생겼다"고 승리를 다짐했다.

이정근 캠프에서는 추미애 대표나 박원순 후보가 지역구를 방문해주길 기대하는 눈치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박 후보가 강남역에서 유세를 했는데, 그곳은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 지점이다. 사전투표는 강남구에서 했는데, 정말로 구청장 선거 다 이기고 싶다면 서초구에도 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유한국당 조은희 서초구청장 후보가 5월 31일 오전 서울지하철 양재역 광장에서 출정식을 치렀다. 왼쪽부터 박성중 국회의원(서초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조 후보.
 자유한국당 조은희 서초구청장 후보가 5월 31일 오전 서울지하철 양재역 광장에서 출정식을 치렀다. 왼쪽부터 박성중 국회의원(서초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조 후보.
ⓒ 조은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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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 타이틀을 지켜야 하는 조은희 후보는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문화관광비서관을 지내다가 오세훈 시장 시절에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과 정무부시장으로 중용된 인물이다. 오 전 시장은 5월 31일 오전 서울지하철 양재역 광장에서 열린 출정식에도 참가해 조 후보에게 힘을 보탰다.

조 후보에 대해 "그 정도면 열심히 일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조 후보는 서울 25개 구청 중 청렴도 1위, 내방역과 서초역을 잇는 서리풀터널(2019년 2월 완공 예정), 교통섬 등에 세워진 우산 모양의 대형 그늘막 '서리풀 원두막' 등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조 후보의 최대 약점은 '자유한국당 디스카운트'다. 20~40대 유권자들에게 폭넓게 퍼져있는 자유한국당 혐오 정서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접전'을 만들어낸 게 아니냐는 분석도 캠프 내부에서는 나온다.

조은희 캠프의 관계자는 "인물 경쟁력이나 행정 경험, 구정에 대한 평가에서는 조 후보가 압도적이다. 조직들을 들여다봐도 전혀 이상한 조짐이 없는데 희한하게도 여론조사는 박빙으로 나온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기자가 "자유한국당 지지 성향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 안 잡히는 게 아니냐"고 묻자 캠프 관계자는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내부적으로는 선두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석 바른미래당 서초구청장 후보가 7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학교 부근에서 유권자들을 만나기 위해 전기스쿠터를 타고 골목길을 다니고 있다.
 김용석 바른미래당 서초구청장 후보가 7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학교 부근에서 유권자들을 만나기 위해 전기스쿠터를 타고 골목길을 다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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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양당 구도 혁파를 내걸고 출마한 바른미래당 김용석 후보는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작년 대선 안철수 후보(21.9%)와 유승민 후보(10.0%) 지지율을 합치면 구청장 선거도 3파전 구도로 만들 만한데, 민주당과 한국당 싸움의 틈새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론조사에서 5% 안팎의 지지율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노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민주당이 싹쓸이할까 봐 보수표들은 다 한국당으로 갔다고 보면 된다. 대선 지지율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김 후보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전혀 다른 것 같아도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같은 토건 공약에는 쉽게 의기투합한다"며 "3조 원이 넘을 서초구의 공공기여금을 고속도로 지하화에 올인하길 원하면 1, 2번을 찍고 도서관이나 공원, 일자리 키우는 일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저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태그:#이정근, #조은희, #김용석, #서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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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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