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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래의 한국과 1789년 대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불안정한 구도 속에서 정치 투쟁이 일단락되면 승자가 헌법 개정을 통해 신체제를 만들어내고, 그러면 제1공화국·제2공화국 하는 식으로 새로운 순번의 공화국 명칭이 편의상 부여돼 왔다. 

이 기간에 한국에서는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뿐 아니라 전제군주제와 다름없는 체제까지 나타났다. 박정희 정권이 만든 1972년 유신헌법 제40조에서는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추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 국회의 동의나 승인 없이 긴급조치를 발동해서 비상계엄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정했다.

이 정도면, 명칭만 대통령제이지 사실상은 황제체제다. '박씨 왕조'를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형식상으로는 헌법만 바꾸는 데 그쳤다. 그렇지만 종전의 나라와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없으므로, 1972년 이후의 대한민국을 제4공화국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형식적으로는 동일한 나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이 1948~1987년 사이에 무려 여섯 차례나 있었다.

개헌 통해 승리 확인하고자 했던 한국과 프랑스

프랑스 대혁명.
 프랑스 대혁명.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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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혁명 이후의 프랑스도 그랬다. 1789년에는 입헌군주제가 등장하고 1792년에는 공화정 체제(제1공화국)가 출현했다. 나폴레옹 군사정변이 벌어진 1799년 이후에는 전제군주제나 다름없는 통령정부와 황제 체제(제1제국)가 연달아 나타났다.

그러다가 1815년에는 예전의 왕정으로 복귀했고, 1848년에는 공화정 체제(제2공화국)로 회귀했다. 1852년에는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에 의해 황제체제(제2제국)로 돌아갔다. 그리고 1871년에는 공화정(제3공화국)으로 복귀했다.

1940년부터 4년간은 전제군주제와 유사한 비시 체제(나치독일 괴뢰정권)가 있었다. 1946년에는 제4공화국, 1958년에는 제5공화국이 출현했다. 실질적 건국이나 다름없는 정치 변화들이 이처럼 수시로 발생했다.

각각의 정치적 단계마다 한국과 프랑스에서는 승자가 개헌을 통해 승리를 공식 확인하는 일이 있었다. 조금 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면 기존 국호를 무시하고 개헌이 아닌 제헌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기존 국호를 그대로 쓰면서 개헌을 통해 승리를 굳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례로, 1987년 6월항쟁에서 이긴 세력은 현행 헌법 제67조 제1항에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해 선출한다"는 직선제 조항을 넣음으로써 자신들의 승리를 공식 확인했다. 제5공화국이 끝나고 지금의 제6공화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발발 82년 뒤인 1871년부터 공화주의 세력이 굳히기 작업에 들어갔다. 1940~1944년의 예외만 제외하면, 왕정체제나 전제주의로 복귀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1871년의 승자들은 이 기념비적 승리를 법적으로 확인하고자, 헌법적 효력을 갖는 '행정부 수반이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갖기로 하는 1871년 8월 31일의 법률'이라는 긴 명칭을 갖는 규범을 제정했다. 헌법이나 다름없는 이 규범 전문(서문)에서는 "모든 경우에 최고의 결정권은 의회에 있으며"라고 했고, 제1조에서는 "행정부 수반은 프랑스공화국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가지며"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개헌으로 승리를 굳히기 하는 일이 짧은 기간 계속 되풀이되는 게 한국과 프랑스의 패턴이었다. 이런 패턴을 감안하면, 2017년 이후의 한국 상황은 의외에 속한다. 6월항쟁 30년 뒤에 일어난 지금 촛불혁명 국면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예외적 상황

2016년 12월 3일 제6차 촛불집회(서울 광화문).
 2016년 12월 3일 제6차 촛불집회(서울 광화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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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북한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북한 언론보도에서도 촛불혁명이 심심찮게 거론될 뿐 아니라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6일 치 <조선중앙통신>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 상황을 보도하면서 "역도가 (자신이) 저지른 죄행에 대해 반성하는 대신, 오히려 뻔뻔스럽게 놀아대는 것은 인민을 개·돼지로 치부하는 놈의 본색을 다시 한번 드러낸 후안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라고 말한 뒤 기사의 마지막 문장에서 "아무리 오그랑수(표리부동한 흉계)를 써가며 발악해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 초불 민심의 징벌"이라고 경고했다.

'초불 민심' 즉 촛불혁명 정신이 이명박을 반드시 징벌하게 될 거라고 낙관한 것이다. 북한이 촛불혁명을 이렇게까지 높이 받드는 것은, 밖에서 보기에도 이 사건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오그랑수를 써가며 발악해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촛불혁명이 벌어진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이것의 성과가 개헌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개헌을 발의했지만, 야당들의 적극적 저항도 아니고 소극적 무관심 속에 어느덧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만약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관심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쏠리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의 개헌 실패는 촛불혁명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제헌도 아닌 개헌으로도 연결되지 못하는 사건에다가 혁명이란 이름을 붙이기는 쑥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1960년 4.19 혁명 때는 이 역사적 사건을 반영하는 개헌이 같은 해 6월 15일과 11월 19일에 있었다. 4월혁명으로 인해 한 해 동안 두 차례나 개헌이 있었던 것이다. 1987년 6월항쟁 때는 이를 반영하는 개헌이 같은 해 10월 29일에 있었다. 반년도 안 돼 개헌이란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런데 촛불혁명 경우는, 이 사건의 결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지 1년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개헌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표출된 국민들의 정치적 요구가 새로운 헌법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혁명의 사후처리가 4.19나 6월항쟁 때보다 부족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과도한 힘 쏟지 않고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

1987년 6월항쟁.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찍은 사진.
 1987년 6월항쟁.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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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4.19 때의 자유당이나 6월항쟁 때의 전두환 정권에 비해 홍준표의 자유한국당이 보다 극렬하게 몸부림친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자유당과 전두환 정권은 여당 자격으로 항쟁의 사후처리에 참여했으면서도 개헌을 막지는 못했다.

자유한국당은 여당도 아니면서 개헌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투쟁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촛불혁명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혁명급의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개헌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이런 어정쩡한 상태는 정치적 불안정을 한층 더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짧은 기간 동안 정치체제가 수시로 교체된 것은, 그런 어정쩡한 상태도 해소하지 못하고 정치적 불안정도 걷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정치적 불안정이 진짜 혁명(무력혁명)으로 발전해 정말로 새로운 나라가 세워질 수도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선전'은 진짜 혁명을 부르는 노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진짜 혁명이 벌어지면, 보수파인 이들을 포함해 정치권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혁명으로 과도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적정 에너지의 투입으로 한국 정치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지금의 촛불혁명을 완성시키는 길뿐이다. 이 혁명의 진정한 완성은 직전의 민중항쟁인 6월항쟁을 뛰어넘는 것이다. 6월항쟁의 결과물인 현행 헌법보다 더 나은 헌법과 정치체제를 산출하는 것이 촛불혁명이 진정한 완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촛불혁명의 성과를 개헌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지금 상태에서, 이를 만회하는 방법은 국회나 지방의회 혹은 지방정부에서 촛불혁명 반대세력의 숫자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그들의 입지를 축소시켜 개헌이 가능한 상태를 만드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촛불혁명이 '6월'의 벽을 넘느냐 못 넘느냐가 향후 일련의 선거에 달려 있다.


태그:#6월항쟁, #촛불혁명,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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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6.13 지방선거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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