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7월 SBS <매직아이>에 출연한 배우 문소리. 방송에서 문소리는 "10년 전 이야기다. 대본에서는 없었는데 촬영날 아침에 가니까 과한 노출신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7월 SBS <매직아이>에 출연한 배우 문소리. 방송에서 문소리는 "10년 전 이야기다. 대본에서는 없었는데 촬영날 아침에 가니까 과한 노출신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 SBS


[기사 재수정: 2022년 9월 23일 오후 3시]

영화 속 신체 노출 장면에 대해 노출 부위, 장면의 의도, 촬영 방법 등을 계약 사항에 명시하라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아래 영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지난 5월 31일 영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가 지속되고 있지만, 영화 내 노출 장면에 대한 촬영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황. 여전히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인권 침해나 성폭력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무엇보다 배우가 사전에 촬영 장면을 고지받지 못한 상태에서 현장의 총책임자인 감독으로부터 당일 노출신을 비롯한 무리한 촬영을 요구받았을 경우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없었다. 

현장에서 바뀐 숱한 노출 장면 사례들  

배우 이영진은 예능 <뜨거운 사이다>에 출연해 과거 찍으려던 영화에서 감독이 전라 노출을 강요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영진은 감독이 첫 촬영부터 남자 배우와의 베드신을 잡아놓고 " '딸 같은 배우' '고등학생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에게 창피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서 노출신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영진은 "당시는 상세 계약이 없을 때였다"며 "민감한 사안은 철저한 계약 하에 찍어야 하고 설득이 되지 않는다면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7년 8월 <뜨거운 사이다>에 출연한 배우 이영진. 방송에서 그는 "사전협의 없이 전라노출 요구 받은 적 있다"고 고백했다.

지난 2017년 8월 <뜨거운 사이다>에 출연한 배우 이영진. 방송에서 그는 "사전협의 없이 전라노출 요구 받은 적 있다"고 고백했다. ⓒ OnStyle

 3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간기남>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수진 역의 배우 박시연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영화<간기남>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김수진 역의 배우 박시연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정민



배우 박시연의 경우 <간기남>(2012)을 촬영하면서, 염정아는 <테러리스트>(1995)를 촬영하면서 출연 결정 이후 시나리오가 수정돼 의도하지 않았던 노출신을 찍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시연은 2012년 당시 "영화에 출연하기까지 파격적인 장면이 있을 줄 몰랐다. 노출 연기를 한 번도 안 해봐서 부끄러웠고 힘들었다"고 밝혔다. 염정아는 2011년 한 예능에 나와 "촬영 직전 현장에서 시나리오가 수정돼 노출신 촬영을 하고 울었다"고 말했다. 염정아는 <테러리스트> 촬영 당시 22살로 "당시 매니저도 없었고 엄마도 같이 안 갔는데 하라니 얼떨결에 했다. 어린 마음에 상당한 상처였다"고 고백했다. 

당시 박시연과 염정아 모두 해당 영화의 주연 배우였고 각각 9년차와 5년차의 상당한 경력을 가진 배우였음에도 감독과 영화 촬영 전 노출신에 대한 상의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법개정, 무엇이 바뀌나 
 
 인재근 의원이 지난 5월 31일 대표 발의한 영비법 현행, 개정안 비교한 자료

인재근 의원이 지난 5월 31일 대표 발의한 영비법 현행, 개정안 비교한 자료 ⓒ 인재근 의원실

 
현재 영비법 제3조의4에는 '영화근로자와 계약을 체결할 때 영화근로자의 임금, 근로시간 및 그 밖의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돼 있지만, '구체적'이라는 조항 자체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계약서를 체결할 시 한계가 있었다. 

개정안은 이 조항을 "영화근로자 또는 영화근로자가 소속된 기획업자와 계약을 체결할 때 1. 업무의 범위 2. 보수 3. 근로시간 및 휴일 등에 관한 사항 4. 신체 노출 장면에 있어 노출 부위, 장면의 의도, 촬영 방법에 등에 관한 사항 5. 계약의 변경 및 갱신 등에 관한 사항 6. 그 밖에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인재근 의원은 제3조의4에 이어 제3조의6 수정안도 포함시켰다. "영화업자는 영화 촬영 중에 발생하는 안전사고로부터 영화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를 "영화업자는 영화 제작을 이유로 영화근로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며, 영화 제작 과정에서 영화근로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경우 영화 근로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로 변경한 것. '적절한 조치'라는 추상적인 항목에서 인권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법 조항이 개정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인재근 의원은 지난 6일 <오마이뉴스>에 "구체적인 개정안은 영화제작을 이유로 영화근로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규정함으로서 영화계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관행처럼 이어져 온 구두합의 등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상대적 약자인 배우 등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 현장에서 벌어지는 강압적 요구와 횡포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영화업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거나 강압적으로 계약조건을 변경할 경우, 영화근로자는 근로기준법 등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최근 우리 사회에 여성 인권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인식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국회에서도 본 개정안과 같은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법안이 통과되는데 큰 이견이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안병호 전국영화노동조합 위원장은 "그간 계약서를 써도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고 모호한 지점이 있었다. 계약서를 쓰더라도 출연자는 어떤 내용의 노출이 있는지 설명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듣지 못하고 현장에 가서야 이뤄지는 현재 사정을 감안했을 때 이번 영비법 개정안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계약서에 없는 노출 장면을 현장에서 강요당할 때 계약 위반을 이유로 촬영을 거부하기가 지금보다는 더 쉬워지리라는 것이다.  

실효성 있을까 

그렇다면 노출 장면을 사전에 계약서에 명시해야 한다는 영화법 개정안은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맡고 있는 정슬아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시급하게 돌아가는 촬영 현장 속에서 배우들이 노출을 거부하고 '촬영하지 않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현장 분위기인지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사무국장은 "노출 연기나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부분을 계약서에 명시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의미 있지만 계약서가 있더라도 현장에서 이것이 얼마나 적용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다"며 "지금까지 계약상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방식의 촬영이 이뤄졌을 때, 구두로는 삭제하겠다거나 배포하지 않겠다고 말했어도 이를 증명할 길이 없었던 문제가 있었다. 현장에서 조정한 합의안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같이 고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과 비용에 쫓기고 시급하게 촬영해야 하는 현장에서 모든 것이 세팅돼있고 '배우만 움직이면 된다'는 설득을 들었을 경우 이를 거부하고 '이전에 계약한 것과 다르니 촬영하지 않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현장인가가 중요하다." (정슬아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영화 '전망 좋은 집' 포스터

영화 '전망 좋은 집' 포스터 ⓒ 마인스엔터테인먼트

 
법적인 고민과 인권적으로나 성적으로 평등한 현장 조성이 더불어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 <전망 좋은 집>(2012)의 이수성 감독은 배우 곽현화와의 약속대로 <전망 좋은 집> 개봉 시에는 곽현화의 노출 장면을 삭제했지만, 촬영해놓았던 노출 장면을 담은 '감독판'을 만들어 IPTV와 VOD에 배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배우 곽현화는 "일단 노출신을 촬영하고 편집 때 원하면 감독이 빼주겠다고 설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 이사이자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사는 "현장에서 계약서를 자세하게 쓰는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조항을 위반했을 경우에 실효성 있는 제재가 있어야 한다.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넘어 실질적인 제재 수단까지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촬영 현장이라고 해서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면 안 되듯이 예술 행위이기 때문에 용납된다든지 감독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했을 때 뭐라 할 수 없는 분위기도 문제다. 현장에서 감독에게 정당한 항의를 하는 평등한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현장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도 받고 영화 종사자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조성되면 좀 더 나을 것이다." (서혜진 변호사) 

그렇다면 신체 노출만이 아닌 촬영 예정에 없던 신체 접촉을 포함한 갑작스런 성애 연기는 어떨까. 인재근 의원은 추가 입법을 통해 개정 법안의 미비점을 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재근 의원은 "급한 불부터 끄는 심정으로 이번 개정안을 발의했다. 추가 입법은 이번 개정안의 시행과 경과를 지켜본 후 검토 및 판단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영비법 개정안 인재근 의원 뫼비우스 김기덕 감독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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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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