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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이 특정 재판을 볼모로 박근혜 정권과 거래를 시도한 충격적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법률가들은 근본 개혁을 요구하며 대법원 앞에 천막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특히 사법부가 스스로 권력에 협조했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시국 농성중인 법률가 5명과 만나 이번 사태의 원인과 해법을 진단해봤습니다. 7일 오전에 진행된 좌담회에는 이덕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승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참석했습니다. 기사는 두 차례로 나눠 싣습니다. [편집자말]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 설치된 양승태 전 대법관의 사법거래 규탄 법률가 시국 농성장에서 법률가들이 원인과 해법에 대해 좌담을 하고 있다.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 설치된 양승태 전 대법관의 사법거래 규탄 법률가 시국 농성장에서 법률가들이 원인과 해법에 대해 좌담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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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단순히 고위법관 몇 명 처벌하자고 나온 게 아니다."

폭염주의보가 예고된 7일 오전, 조금씩 열기가 달아오르는 천막 아래에서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아래 특조단)' 조사 결과로 드러난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 "사법부가 정말로 최악의 상황까지 갔다"라고 진단했다. 이는 이 자리에 함께한 법률가 네 명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했다.

"최악의 상황... 고위법관 몇 명 처벌로는 안된다"

이덕우 법무법인 창조 변호사
 이덕우 법무법인 창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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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특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가 조직 이익을 위해 정치집단처럼 행동했다는 데서 존재 이유가 붕괴했다고 봤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흔들 수 있는 사건을 선별해 숙원사업과 맞바꿀 협상 카드로 삼은 일이 그 예다.

이덕우 변호사는 "서로 견제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삼권분립 구조를 만들어 놓은 건데, 하라는 견제는 안하고 사법부 스스로 권력을 키우고 청와대와 '딜(deal)'을 하려고 했다"라면서 "사법부 전체를 가져다 붕괴시켰다"라고 지적했다.

이호중 교수 역시 "사법부를 권력 집단으로 생각하고 조직을 최대화시키려고 다른 정치 집단과 거래를 하는 상황까지 갔다"라면서 "과거 군사정권에 협조했던 일과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암울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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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 "국정 협조 사례", "윈윈(win-win)" 같은 표현이 서슴없이 등장하는 일을 두고는 "마치 국정원 같다"라고 입을 모았다. 조승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기각, 인용, 각하 등 판결 방향에 따르는 영향력을 파악했다는 건 그 파장을 감안해 수위 조절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라며 "이런 건 정보기관이 보이는 행태인데, 법원행정처가 국정원보다 더 했던 것 같다"라고 평했다. 바로 옆에 앉은 이 교수는 "법원행정처가 사법부에서 국정원 역할을 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오민애 변호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법부 권한을 남용한 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법원에서는 최대한 공정하게 진행될 거라고 믿으면서도 '설마, 혹시' 하는 의심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 의심이 다 사실이라는 증거가 나왔다"라는 것이다. 또 "공개된 보고서 위에는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법원'이라고 써있던데, 그런 일을 하면서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라고 묻기도 했다.

"너무 이상했던 사건들, 모두 재판거래 리스트에 올랐다"

금속노조법률원 김태욱 변호사
 금속노조법률원 김태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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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거래' 의혹이 불거진 재판들은 실제로 석연치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태욱 금속노조법률원장(변호사)은 "언급된 사건 중에는 선고 당시에 '대리인이 대법관한테 찍혀서 이렇게 나온 거 아니냐, 이해가 도저히 안된다'는 말이 굉장히 많았다"라면서 "결론적으로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사건들이 거의 다 법원행정처 문건 속에 들어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그중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을 예로 들며 "구체적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8개월 만에 파기환송됐는데, 심리불속행(심리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도 아니고 파기를 이렇게 초고속으로 하는 경우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용자가 파업을 예측할 수 없었다"라는 이유로 뒤집힌 철도노조 파업 사건과 관련해서 김 변호사는 "조정기간을 거치고 노조가 파업을 예고하면서 회사가 그에 따른 예비 인력까지 미리 배치했는데, 대법원은 이걸 예측가능하지 않았다고 봤다"라고 황당해했다. 김 변호사는 통상임금 판결의 경우 "판결문에 '다수논리는 법리라고 볼 수 없다'는 식의 얘기가 소수의견으로 기재됐을 정도"라며 "이후 진행된 하급심에서도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몰라 또다시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라고 말했다.

'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을 사후적으로 추려냈을 뿐 실제로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반론에는 아직 단정할 상황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협상용으로 작성한 문건에 일부는 아주 구체적 계획까지 적혀있고, 일부는 그렇지 않더라도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목적으로 하나의 문서를 작성했다면 나머지 사례도 그랬을 거라고 추측하는 게 합리적 의심"이라고 했다. 또 김 변호사는 "특별조사단이 별 내용이 없어서 공개 안했다고 한 문건도 막상 공개되자 비슷한 수준의 자료가 있었다"라면서 "더 많은 자료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당연히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재판에 개입했는지 여부에만 논의가 집중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호중 교수는 "재판 개입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르게 봐야 한다"라며 "국정운영에 협조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순간 사법부는 무너지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체가 재판 개입"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대법원장의 의중이 암암리에 알려지면 그에게 잘 보여야 하는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하다"라면서 "직접 전화를 걸어 지시를 해야만 재판 개입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양승태, 국민이 왜 분노하는지 전혀 이해 못해"

 조승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조승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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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은 이번 사태가 특정 개인이 아닌 오래된 구조에서 잉태됐다고 봤다. 조승현 교수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 아래에서 상고법원을 설치하고자 하는 정치적 욕심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구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호중 교수 또한 "관료적 시스템을 배경으로 한 가장 추악한 모습"이라며 "세상과 담 쌓고 뼈 빠지게 공부해 판사가 된 뒤 승진을 위해 조직 논리에 금방 순응하고 물들어가면서 대법관까지 올라가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깨뜨리지 않으면 또 나올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사건 이후 계속 침묵하다 지난 1일에야 입장을 밝힌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선 성토가 쏟아졌다. 이날 그는 재판 개입 의혹을 부인하며 "대법원의 재판은 정말 신중하고 신성한 것"이라며 "그것을 함부로 폄하하는 것은 정말로 견딜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호중 교수는 "사법권 독립이라는 명제 뒤에 숨는 비겁한 행태"라며 "사법 독립을 무너뜨린 장본인이 그를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사법권 독립권 침해라고 말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또 "양 전 원장은 이날 '대법원 재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라면서 국민을 협박했는데, 이미 무너졌다"라면서 "지금은 무너뜨린 걸 다시 세우려는 단계"라고 받아쳤다.

오민애 변호사는 "양 전 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에서 이 사태의 본질이 다 드러났다"라고 평했다. 그는 "양 전 원장은 이 사안이 왜 문제가 되는지, 사람들이 왜 분노하는지 공감하거나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사법부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위치에서 나오는 건데, 그걸 다 망가뜨려 놓고 이제 와서 자신들의 권력을 침해하려 한다고 방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양승태 자택 앞 놀이터에서 연 기자회견이 지난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골목성명'과 꼭 닮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태욱 변호사는 "장소와 포즈는 전두환, 말하는 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슷했다"라고 말한 뒤 "'검찰이 수사를 한다더냐'라고 되물은 대목에서는 '니들이 아무리 항의해봤자 나는 처벌 받을 일 없다'라고 자신하는 것 같아 참 씁쓸했다"라고 말했다.

 오민애 법무법인 향법 변호사
 오민애 법무법인 향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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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 5인이 말하는 사법농단 ② - 대안] "재판거래도 국정농단, 양승태 적폐세력 국민이 몰아내야"



태그:#양승태, #김명수, #사법농단, #대법원,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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