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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피곤하다. 9시 등교제를 해도, 야자를 자율적으로 시행한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입시경쟁교육을 없앨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적성에 따라 선택한 직업이 그 무엇이든 자아존중감과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마련해 주는 것. ‘실질적' 최저임금제 시행에 그 답이 있다.
 ▲ 아이들은 피곤하다. 9시 등교제를 해도, 야자를 자율적으로 시행한다고 해도 말이다. 결국, 입시경쟁교육을 없앨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적성에 따라 선택한 직업이 그 무엇이든 자아존중감과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마련해 주는 것. ‘실질적' 최저임금제 시행에 그 답이 있다.
ⓒ 이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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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격차 더 벌리는 최저임금법 개정안

"대한민국 교육은 대통령도 못 바꿔!"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입시 정책이 시행돼도, 결국 학벌이나 학력, 또는 직업에 따른 임금 격차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친구  간의 학습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길임을 본능적으로 체감하면서 매일을 살아간다.

이른바 촛불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학교는 여전히 그대로다.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인권 신장 등 괄목할만한 변화들이 없지 않았지만, '입시경쟁'이라는 근원적 문제는 단 한 번도 해소된 적이 없다.

지난 5일 기존 최저임금법에 상여금, 식비까지 포함되도록 하는 등 사실상 기존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 공포되었다. 복리후생비까지 최저임금액으로 산입되면 임금 총액이 줄어들어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타격이 크다. 노동계나 시민들 역시 이 개정안 통과가 촛불 민심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며 반발이 거세다.

개정안 찬반 논쟁, '정의'는 어디에?

최저임금 인상의 유의미한 효과가 있음을 분석한 한국노동연구원과는 달리,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는 내년도에도 올해와 같은 인상폭을 유지할 경우 고용 감소 등이 우려된다며 최저임금액의 인상폭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과 자원외교에 쏟아 부었을 세금을 고용 확대를 위해 사용했다면, 이는 벌써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도와 국정을 수행했던 당시의 집권 여당이자, 현재의 보수 야당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일부 야당은 이를 근거로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자체에 반기를 들고 있다. 또, 고용 확대를 위한 정부의 추경예산안 편성에는 그렇게 반대하던 그 야당이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 표결에서 보듯 정부 여당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최저임금액의 상승에 따라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 손실분이 발생한다면, 이는 다른 방식의 지원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최저임금법의 기본 취지는 저소득 노동자를 위해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영업자 등의 손실분 발생을 막겠다며 최저임금제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그들에게도 최저임금 상승으로 발생한 피해가 어떤 방식으로든 상쇄된다면 '실질적' 최저임금제의 시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인건비 상승 등으로 대기업의 경영 이익이 줄어드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현재 청와대에 몸담고 있는 한 법학자는 과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균형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에게 보다 유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정의롭고 공정한 것". 이 말에 동의한다면 대기업의 이익 증대보다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급여 확보가 절실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보다 유리한 입장으로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  몇년 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거셌고, 그 계기로 올해 초부터 전년대비 16.4%의 인상률을 보였던 최저임금. 그러나 올해 관련법 개정안 통과로 최저임금법의 취지가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2년 전, 서울시청 광장에서 1만여명이 운집한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퍼포먼스의 한 장면.
 ▲ 몇년 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거셌고, 그 계기로 올해 초부터 전년대비 16.4%의 인상률을 보였던 최저임금. 그러나 올해 관련법 개정안 통과로 최저임금법의 취지가 사라지고 있다. 사진은 2년 전, 서울시청 광장에서 1만여명이 운집한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퍼포먼스의 한 장면.
ⓒ 이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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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경쟁교육 해소의 토대가 되는 '실질적' 최저임금제

여러 논쟁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교육적 관점에서 개정안을 반대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다. 올해 초부터 적용되고 있는 16.4%라는 최저임금 인상률에 따른 최저임금액은, 당장 실질적 생활을 보장해 줄 급여액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어도 향후 관련 정책을 가늠할 신호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이밖에도 블라인드 채용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력 등, 일련의 사회적 변화는 학교의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미미하기는 했어도, 이제 공부만 잘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다양하게 진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학습과 삶의 병행을 조금이나마 꿈꿀 수 있게 했던 '파란 신호등'과 같은 역할이었음은 분명했다.

'실질적' 최저임금제는 직업의 종류에 따라 급여, 처우, 명예, 노동 강도 등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하지 못했어도 어른이 된 뒤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주 5일 기준으로 하루 8~10시간 정도를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꼭 필요한 여가를 가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한 정책이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공부나 돈, 또는 물질적 안락함만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적성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화된 진로진학교육의 기반이 되며, 나아가 현행 입시경쟁교육 해소를 위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정책인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내년에 이대로 시행된다면, 학생들에게 이것은 어떤 신호가 될까? 긍정적 변화가 학교 안에서 채 나타나기 전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무색하게 다시금 학생들은 과열된 경쟁 교육 속에서 허우적대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본권 보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현재 아이들 세계에서는 초, 중, 고를 막론하고 그들 간의 서열짓기와 혐오문화가 극심하다. '왕따' 같은 것은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띄지 않는 내재된 폭력성이 SNS상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폭발 직전의 용암처럼 타오르고 있음을 직감한다. 그 근원 역시 동급생 간의 치열한 성적 경쟁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개정안을 공포한 문재인 대통령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집권 여당과 보수 야당이 합작해서 내놓은 이 법안에 대해서는 역사가 냉정히 평가할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오는 14일에 개정안의 헌법 합치 여부를 묻는 헌법 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깊게 천착하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보호 정책이 헌법수호와 국민 기본권을 위한 최후의 보루인 헌법재판소를 통해 기사회생되기를 바랄 뿐이다. 실질적 최저임금제가 시행된다는 것은, 적어도 학교 교육에서는 학벌사회와 입시경쟁을 타파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되기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덧붙이는 글 | 1. 경향신문에 "교육개혁에 역행하는 최저임금법 개정"(2018.6.6)의 제목으로 실린 필자의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 일부 인용된 기사 및 사진 출처
(1) 이광국, "최저임금 1만 원과 야자 폐지, 무슨 관계냐고?"(2016.7.5)
(2) 이광국, "'개돼지'에 분노한다면 12일 최저임금 결정 주목"(2016.7.12)



태그:#최저임금, #헌법소원, # 헌법재판소, #입시경쟁,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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