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뽑고 돌아서면 또 풀이 올라온다
▲ 양파 뽑고 돌아서면 또 풀이 올라온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풀 뽑고 돌아보면 또 풀이 올라온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농사에서 풀은 전쟁에 빗댈 정도로 이겨야 하는 상대이지만 승자는 항상 풀이다. 며칠 사이에 쑥쑥 올라오는 풀들을 보면 그 질긴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뽑힌 자리에서 또 올라오는 풀은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한 생존전략이며 자연생태계의 1차 생산자로서 많은 양의 씨앗을 계속해서 퍼트린다.

풀은 다른 생명체를 먹이로 하지 않으면서도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서 지상과 지하의 생명체에게 끊임없이 먹이를 제공한다. 그리고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흙을 사막화(가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흡수하여 양분(광합성)으로 이용한다.

뜨거운 여름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여름풀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뻗어 나간다. 들불처럼 번져서 흙을 덮는 이유는 흙의 가뭄을 막고 뿌리에서 뽑아 올린 수분으로 광합성을 비롯한 생명 활동하기 위함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풀(식물)은 물과 햇볕을 이용하는 생존전략으로 진화했고, 광합성만 충분하다면 생존에 필요한 양분은 스스로 만들어낸다.

광합성이 뛰어난 옥수수는 풀을 이겨내는 작물이기도 하다
▲ 옥수수 광합성이 뛰어난 옥수수는 풀을 이겨내는 작물이기도 하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광합성과 타감물질

풀은 가뭄을 예방하고 수분을 유지하여 흙을 살리는 고마운 존재임에도 현실에서 풀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필요하거나 불필요한 존재로 나뉜다. 음식이나 약초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귀한 보물이지만, 선택된 작물을 키우는 농사에서는 제거해야 하는 잡초로 각인돼 있다. 풀과 함께 있으면 작물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풀과 작물이 함께 있으면 흙속의 양분을 뺏겨서 작물성장이 느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족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양분을 제공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풀보다 작물 성장이 느린 것은 양분 다툼이 아니라, 햇볕을 필요로 하는 광합성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흙속의 뿌리에서 타감물질(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상대를 견제하기 때문에 풀보다 작물의 성장이 늦어지기도 한다. 같은 조건에서 농업기술로 개량된 작물은 자연에 오랫동안 적응한 풀에게 무조건 백전백패한다.

볏짚이나 낙엽같은 유기물을 덮어서 풀의 기를 꺽을수 있다
▲ 마늘 볏짚이나 낙엽같은 유기물을 덮어서 풀의 기를 꺽을수 있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위와 같은 이유로 현실에서는 작물이 자라는 두둑에 검은 비닐을 씌우거나 짚과 낙엽 같은 유기물을 덮어서 풀의 성장을 억제하기도 한다. 풀보다 먼저 작물의 뿌리가 흙에 활착을 하면 뒤늦게 올라오는 풀과의 영역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작물이 성장하는 두둑과 떨어져 있는 고랑의 풀을 작물과 함께 키우면 그 풀은 본연의 흙살리기를 하면서 병충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광합성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작물보다 높게 자라지 않도록 베어서 그 자리에 덮어주면 풀이 또다시 올라오는 시간을 지체시키고 가뭄을 예방하는 수분을 유지할 수 있다.

풀을 베어서 그 자리에 덮어주면 2차 풀을 억제하고 흙의 수분유지를 한다
▲ 고추 풀을 베어서 그 자리에 덮어주면 2차 풀을 억제하고 흙의 수분유지를 한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농사에서 세상을 보다

땡볕에 농장 양파밭에서 며칠간 풀과 씨름을 하느라 어깨와 손이 저리다. 제초제의 유혹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농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초제를 사용하는 농사를 무조건 배척하지도 않는다. 농사에서 풀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현실적인 상황에 맞춰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안타까운 것은 농사에서 풀은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의 흑백 논리와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집단의 폭력성과 닮았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끝없는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고, 농사에서는 생태계 파괴와 건강한 농산물의 생산이 불가능한 악순환에 빠진다.

제초제를 한 번만 사용하면 풀이 안 나올 줄 알았다가 그것이 아닌 것을 알고는 적절하게 풀을 키우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농부를 만난 적이 있다. '흙이 살아야 농사가 산다'는 말에는 흙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함께 공존했을 때 모두가 잘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태그:#광합성, #타감물질, #다양성, #양파, #제초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