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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7일 오후 ‘최저임금 1만 원 실현 6. 17 걷기대회 만원:런'에 참가한 시민과 노동자들이 함께 걷고 있다.
 지난해 6월 17일 오후 ‘최저임금 1만 원 실현 6. 17 걷기대회 만원:런'에 참가한 시민과 노동자들이 함께 걷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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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으로 올해 최대 8만여 명의 고용 감소가 예상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 결과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 나왔다. 이번 연구에 주로 인용되거나 고용 계산 등에 사용된 일부 외국 사례가 국내 상황과 맞지 않다는 것.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KDI는 부정확하고 편의적인, 외국 추정치를 기초로 한국의 최저임금에 대해 논평했고, 속도조절론으로 결론 내렸다"고 꼬집었다. 이어 "여기에 외국 정책사례도 부적절하게 사용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국장은 KDI의 분석에 대해 4가지 오류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최저임금 연구의 경우 나라마다 노동시장 사정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추정치를 근거로 한 국가의 임금효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나라마다 노동시장 사정 다른데 그 추정치로 한국 미래 짐작"

그는 "이번 분석은 엄밀히 따지면 한국을 분석한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과 헝가리의 최저임금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가져다가 한국의 사례를 '짐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의 나라의 추정치를 가져다 분석해 볼 수는 있지만, 그걸 근거로 자기 나라의 최저임금 효과를 예상하고 공개적으로 대서특필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이 국장은 덧붙였다.

KDI는 지난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를 추정했는데, 고용 계산 과정에서 헝가리와 미국의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넣어 산출했다. 최저임금이 변화하는 정도에 각 국가의 고용탄력성을 곱해 임금노동자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추정한 것. 고용탄력성은 경제성장에 따른 고용변화의 정도를 말하는데, KDI는 헝가리의 고용탄력성을 -0.035로, 미국의 경우 -0.015로 추정했다.

헝가리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적용한 뒤 국내 임금노동자수 2000만 명을 곱하면 고용이 8만4000명 줄고, 미국 추정치를 적용하면 3만6000명 감소한다는 것이 KDI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고용탄력성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어 이를 이용해 다른 나라의 고용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이 국장은 비판한 것이다.

지난 4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지난 4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 한국개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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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1970~1980년대 미국 자료 가져다 써...이후엔 고용감소 없어"

두 번째로 이 국장이 지적한 것은 KDI가 계산할 때 쓴 외국의 추정치를 편의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의 추정치 -0.015는 그나마 옛날 것(대부분 1970~1980년대)이고, KDI 논문에서도 인정했듯이 그 이후 추정치는 0에 가깝다"며 "즉 전체적인 고용감소 효과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KDI는 이번 보고서에서 미국의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계산할 때 1981년 자료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실제로 감소시키는가에 대해 미국 최저임금위원회는 1977년부터 4년 동안 대규모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고 했다. 여기에 최 연구위원은 '미 최저임금연구위원회(US Minimum Wage Study Commission,1981)'라는 주석을 달아 당시 연구자료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또 최 연구위원은 "1972년부터 2007년까지 64건의 연구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최저임금의 영향은 없거나 있더라도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작은 값'"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2000년 이후의 27개 연구에서도 고용에 대한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더라도 경제적인 의미는 가지지 못할 만큼 작다'고 평가됐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이 국장은 "그런데도 굳이 이 추정치를 사용한 것은 최저임금의 부정적 효과를 전제하고 분석했다는 느낌을 준다"며 "헝가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KDI는 헝가리의 고용탄력성을 추정하면서 지난해 나온 연구자료를 참고했는데, 이 연구에선 헝가리의 2000~2004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영향을 분석했다.

더불어 이 국장은 "최저임금 속도가 빨리 올랐다는 이유로 헝가리를 살폈지만, 사실상 최저임금의 상대수준이 비슷한 영국의 탄력성은 사용하지 않았다"며 "후자 역시 0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국장은 영국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감소 효과가 생겨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한국 추정치 사용하면 고용감소 없어"

이 국장이 꼬집은 세 번째 문제는, KDI가 한국의 고용탄력성 추정치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연구도 최근 많이 늘었다"며 "부분별, 연령별 차이는 있지만 총계 차원에서 고용탄력성은 0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국장은 "올해 초 유럽연합에서 헝가리를 포함한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분석했는데, 고용탄력성은 0에 가까운 마이너스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KDI의 계산식에서 한국의 추정치를 적용하면 고용감소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KDI가 사용한 헝가리 추정치를 최신 버전으로 적용해봐도 고용감소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이 국장이 언급한 부분은 KDI가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프랑스 사례를 들었는데, 이조차도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KDI 분석이 주목한 2000년대의 최저임금 인상은 프랑스가 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불가피하게 시간당 임금을 조정해 생긴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국장은 "너무 급작스레 최저임금을 올려 생긴 부작용 탓이 아니다"라며 "한국의 사례와는 전혀 맞지도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국장은 "연구기관은 통계와 자료를 잘 챙겨서 토론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KDI 분석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말했다.



태그:#KDI,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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