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결정한 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 시대를 대변하는 '개헌'이 논의되며, 사법 정의 실현이 '적폐 청산'의 시금석으로 여겨지는 세상. 그런 현실이 반영된 것일까?

tvN의 <무법 변호사>, MBC의 <검법남녀>, JTBC의 <미스 함무라비>, KBS2의 <슈츠>, 그리고 얼마전 종영한 SBS의 <스위치-세상을 바꿔라(이하 스위치)>까지, 각 방송사에 '법' 관련 드라마들이 포진해 있다. 시청자들은 적어도 이들 드라마 중 한 드라마를 만날 확률이 높다.

물론 법을 다룬다고 해서 다 똑같지는 않다. tvN의 <무법 변호사>는 '법'으로 싸우는 변호사(봉상필, 이준기 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드라마 스토리를 견인하는 건, 그와 다수의 조폭들의 격투씬이요, 법정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봉상필의 작전들이다.

 미스 함무라비

미스 함무라비 ⓒ JTBC


전면에 '법'을 내세우지만, '무법'적 요소가 범람하는 아이러니한 '법 드라마'인 셈이다. 지난 5월 17일 종영한 <스위치>의 경우 '스위치'를 온오프하듯 자유롭게 이 사람 저 사람을 사칭하는 사기꾼이 얼떨결에 검사가 되는 설정이라는 점에서 <무법 변호사>와 같은 변칙 플레이의 궤도에 놓여 있다.

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KBS2의 <슈츠> 역시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전설적인 변호사와 함께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가짜 변호사'를 등장시켜 '법정 드라마'를 변주한다.

반면,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이미 동명의 저서를 펴낸 문유석 판사가 극본을 쓰고 있는 JTBC <미스 함무라비>는 앞서 두 드라마와는 달리 법원을 무대로 판사들의 교과서와 같은 내용을 현장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현실 사건을 모티프로 한 MBC <검법 남녀>는 검사와 법의관을 파트너 관계로 묶어 검시 현장과 그에 뒷받침되는 일선 사건 현장을 현실감 있게 풀어낸다.

드라마 속 여성 법조인들, 신선하긴 한데...

 드라마 <무법 변호사>

드라마 <무법 변호사> ⓒ tvN


제 아무리 설정이 다르고, 전개가 다르다고 해도 매일 매일 '법' 드라마를 방영하는 건 제 아무리 현실을 반영했다고 해도 좀 과하다. 다른 측면에서 이는 우리 드라마계의 소재 고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사법 정의가 중요하다 한들, 대한민국 전체 직업군 중 법 관련 일을 하는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또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드라마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공이 사기꾼이든지 무법 액션가든지 혹은 정의로운 판사든지, 법의관이든지 결국 그 무대는 법정이고, 그 정의의 실현은 '법'을 통해 판가름나는 이들 드라마는 '법'의 중요성을 '계몽'하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반면,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피로도 역시 높여 안타깝다. 제 아무리 이준기가 펄펄 날고, 정재영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메스를 휘두르고, 천재 박형식이 술술 법전을 읊어도 시청자들의 눈에 그 나물에 그 밥처럼 보일 수 있다.

식상함이 찾아올 때쯤, 이들 드라마에서 제법 신선한 장면을 목격했는데, <슈츠>를 제외한 드라마에서 두각을 보이는 여성 법조인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여주인공들은 정의의 상징이다. 그들은 의로우며, 그 의로움을 실현하는 도구로서 '법'을 이용하려는 데 거침이 없다. 그들이 '자산가'의 자제(검법남녀 은솔 역의 정유미)이거나, 사진관 집 딸(무법 변호사 하재이 역의 서예지)이거나, 재래 시장통의 친근한 딸(미스 함무라비 박차오름 역의 고아라)이거나 상관없다. 그들은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법원을 꿈꾸며, 사건에 감정을 이입을 하는 것도 모자라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마다하지 않는 열혈 '법조인'이다.

'권위 위에 잠자는 시민'이 되지 않는 '깨시민'의 전형같은 이들은 그런 '정의감'으로 인해 사건의 중심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하지만 무한 감성지수와 아직 무르익지 않은 경험은 때로 그녀들을 직업적 혼돈에 빠뜨린다.

여성은 감성적, 남성은 이성적?

 드라마 <검법남녀>

드라마 <검법남녀> ⓒ MBC


마음이 앞서는 <검법남녀>의 검사 은솔은 그로 인해 위험이 있는 검시실에 갇히는가 하면, 사건 현장에서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미스 함무라비>의 박차오름은 시장통 사람들의 민원에 귀 기울이다 법원 앞 1인 시위하는 여성의 사건에서 공정성의 잣대를 놓치기도 한다. <무법 변호사> 하재이는 어렵사리 공부해 겨우 변호사가 됐지만 법정에서 남편의 학대에 정당방위를 한 여성에 대한 판결에 분노하여 판사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변호사 자격 정지라는 징계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그녀들은 법의 정의로운 실현을 주제로 한 드라마 속에서 고뇌하고 성장한다. 때로는 그녀들이 벌인 일들이 '민폐'가 되기도 하고 그녀들을 '감정적이고 저돌적인 캐릭터'로 인식되게 만들기도 한다. 드라마 속 그녀들은 전문 직업인이지만, 캐릭터가 빛날 때는 대부분 감정적 요소가 발휘되었을 때다.

특히 아쉬운 점은 드라마 속 그녀들의 성장에는 남성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맹목적인 정의감에 불타던 <무법 변호사>의 하재이는 봉상필을 통해 어머니 죽음의 비밀을 알고 그녀가 그토록 존경하던 차문숙(이혜영 분) 판사, 그리고 그녀가 만든 '괴물' 기성을 향해 법의 칼날을 겨누게 됐다.

<검법남녀>의 감정만 앞서는 은솔에게 때론 배신감을 안기기도 하지만, '법'의 길에서 '바로미터'가 되는 건, 그 어느 경우에서도 '법'의 진실을 향해 비켜서지 않는 법의관 백범(정재영 분)이다. 의지와 감성이 앞서는 박차오름이 전문적인 판사로 성장하는 데는 노회한 한세상(성동일 분)의 경험과 선배 임바른(김명수 분)의 배려가 전제된다(물론 <미스 함무라비> 속 임바른은 박차오름의 행동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등 변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정의로운 여주인공'을 내세웠음에도 여전히 '여성은 감성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라는 구도를 답습하는 드라마들이 아쉽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스 함무라비 검법남녀 슈츠 무법변호사 스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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