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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은 한센병 약을 구하러 삼팔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온다. 이때부터 거지가 된다. 밤에는 다리 밑에서 거적을 덮고 자고 아침이면 깡통을 들고 집집마다 들어가 음식 찌꺼기를 얻어먹는다. 봄여름가을은 버틸 만했다. 문제는 겨울이었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추위가 이어질 때면 얼어 죽는 거지가 늘었다. 옆에서 같이 자던 거지가 아침이면 죽어 나갔다. 잠들면 자기도 죽을 것만 같았다. 한하운은 무릎을 쳤다.

'그래, 내가 쓴 시를 파는 거야!'

그 다음 날부터 바로 서울 명동 거리에 나가 시를 팔았다. 소문도 났다. 명동에 가면 시 파는 거지를 만날 수 있다고. 시 '개구리'도 명동 어느 찻집에서 누군가에게 판 시다. 그의 시 가운데 '파랑새'가 있다. "나는 / 나는 / 죽어서 / 파랑새 되어 // 푸른 하늘 / 푸른 들 / 날아다니며 // 푸른 노래 / 푸른 울음 / 울어 예으리. // 나는 / 나는 / 죽어서 / 파랑새 되리." 그의 기억에 따르면 이 시는 1945년 8·15 해방 이전에 쓴 시인데, 해방이 된 뒤 함흥 어느 신문사에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는 북한에 사회주의 정권이 설 때라 문학판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정리가 될 때이다. 이 시는 '반동시'라 하여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한다.

남한에 내려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잡지사나 신문사를 찾아가 투고를 해도 거지가 왔다고 문전박대를 하고 쫓아내기 일쑤였다. 그는 이런 일을 겪고 난 뒤 도화지에다 '파랑새', '비 오는 날', '개구리'를 써 명동 다방이나 바를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한 장씩 팔았다. 백 원도 받도 천 원도 받았다. 하룻밤 사이에 만 원을 벌 때도 있었다.

2010년 인천문화재단이 펴낸 한하운 전집이다. 인천문화재단은 시인이 낸 단행본과 여러 잡지에 실린 원고를 꼼꼼히 살펴보고 한곳에 모아 전집을 펴냈다.
▲ 《한하운 전집》(문학과지성사, 2010) 표지 2010년 인천문화재단이 펴낸 한하운 전집이다. 인천문화재단은 시인이 낸 단행본과 여러 잡지에 실린 원고를 꼼꼼히 살펴보고 한곳에 모아 전집을 펴냈다.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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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 정지용, 이분은 이용악인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어느 바에 들어갔는데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 대여섯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에게 도화지 시 〈파랑새〉를 건넸다.

"이거 당신이 쓴 거요?"
"네. 이거 시가 되건 안 되건 한 장 사 주시오."


그중 한 남자가 "Green bird!" "Green bird!" 중얼거리면서 한하운에게 같이 있는 사람을 소개했다.

"자, 이분은 정지용, 이분은 이용악인데, 모두 시인이오."

이러면서 술 한 잔을 권한다. 한하운은 거절한다. 정지용과 이용악을 어찌 모르겠는가. 온몸이 부끄러워 달아올랐다. 진사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이곳에서 도망쳐야만 했다. 이때 정지용이 한하운 손을 붙잡고 만년필을 쥐어준다.

"오늘 밤은 돈이 없으니 이 만년필을 쓰시오."

한하운은 만년필을 술상에 내려놓고 정신없이 그곳을 빠져나온다. 정지용의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에게 이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다가도 이날 생각만 하면 온몸이 달아올랐던 것이다.

한하운은 시를 팔면서 경북 영양 출신 사회주의자 시인 이병철을 만나게 되고, 이병철은 서울신문에서 내는 잡지 <신천지>(1949년 4월호)에 한하운을 추천한다. 이렇게 하여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에'을 비롯하여 열세 편이 한꺼번에 잡지에 실린다. 그리고 그 다음 달 5월 열두 편을 더해 25편을 묶어 그의 첫 시집 <한하운 시초>를 낸다. 이 시집은 그 뒤 수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한하운 시초》는 시인 이병철이 발문을 쓰고, 당시 천재화가 정현웅이 표지 디자인을 했다. 이병철과 정현웅은 한국전쟁 이후 월북했다. 그 때문에 한하운 또한 사회주의자로 내몰리기도 한다.
▲ 《한하운 시초》(정음사, 1949)와 《보리피리》(인간사, 1955년 3판) 표지 《한하운 시초》는 시인 이병철이 발문을 쓰고, 당시 천재화가 정현웅이 표지 디자인을 했다. 이병철과 정현웅은 한국전쟁 이후 월북했다. 그 때문에 한하운 또한 사회주의자로 내몰리기도 한다.
ⓒ 정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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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책 읽는 소리를 듣고

한하운은 1960년 자신이 쓴 시를 해설한 <황토길>(신흥출판사)을 펴낸다. 이 책에 '개구리'를 쓰게 된 내력이 나와 있는데, 그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그는 개구리에 꽂혀 마치 생물학자처럼 개구리를 연구했다고 한다. 올챙이는 정충(情蟲) 같고, 그 생김새는 그로테스크하고 살빛은 배암처럼 무시무시했다. 또 눈알을 보고 있으면 뚱구레하고 서슬이 시퍼랬다. 우는 소리는 더 야릇했다. 아무리 소리를 붙잡아 글로 나타내려 해도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그런데 또 이것이 밤낮 울기만 했다. 그는 이런 말까지 한다. "울음은 전원의 전설을 말하는 것 같다." 그는 개구리를 시로 쓰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네다섯 해가 훌쩍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깡통을 들고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 초등학교를 지날 때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마다 소리 내서 읽고 있는데 그 소리가 마치 모내기 철 논두렁에서 듣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같았다.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쭈그려 앉아 그 자리에서 시를 썼다. 그는 이 시를 쓰고 자신의 기지(機智)에 스스로 놀라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그는 왜 '가냐 더려' 하지 않고 '가갸 거겨' 했을까. 또 1연 '가'를 쓴 다음 2연에 '나'와 '다'를 이어 쓰지 않고 왜 '라'로 바로 건너뛰었을까. 그는 그 까닭을 이렇게 밝힌다. "개구리의 양서적 생리는 이율배반을 비유하는 상징인지도 알 수 없어 '가'와 '라'로서 이 모든 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자신만 아는 말로 써서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어릴 때는 아가미로 숨을 쉬고 물에서 살고, 자라서는 폐와 피부로 숨을 쉬며 뭍에서 사는, 그래서 양쪽에서 산다는 양서(兩棲 두양·살서)류를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에서 두(兩 짝량) 글자만 가지고 표현했다는 말일 것이다.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가

그의 본래 이름은 태영(泰永 클태·멀영)이다. 이 세상을 넓고 멀리까지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의 나이 열일곱에 한센병에 걸린다.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1945년에 다시 병이 도졌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때 일이다. 태영은 자신의 이름을 하운(何雲 어찌하·구름운)으로 바꾼다. 어찌하여 내 신세가 떠다니는 구름 신세가 되었느냐, 하는 말이다. 그의 이름처럼 그는 거지가 되어 떠돌이 신세였다. 남한 어디에서도 한센병자를 품어주지는 않았다. 시골도 도시도 다 똑같았다. 아니 시골이 더 심했다. 이름을 하운으로 바꿨지만 사람들은 그를 '문둥이'라 했다. 한센병 환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이름은 넷이 되었다. 태영, 하훈, 문둥이, 그리고 문둥이 시인.

나는 시 해설집 <황토길>(신흥출판사)에 나오는 '개구리' 해설을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시인과 그 시인이 쓴 시를 읽는 독자의 거리를 절감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안심을 하기도 했다. 사실 그의 해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손에 바로 잡히는, 절실한 뭔가가 빠져 있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알맹이가 없이, 그 시를 쓸 때 처한 형편이나 그 밑바닥을 말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아니 당신이 알고 지내는 시인들을 염두에 둔, 그래서 더더욱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하는, 그래야만 인정해 주는 문단 풍토 속에서 아웃사이더가 자신의 말을 최대한 가다듬어 한 말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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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직이 묶어 펴낸 《가도 가도 황톳길》(1985, 지문사) 표지와 앞날개 ·
ⓒ 지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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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를 처음 읽었을 때, 독자로서 내 느낌은 이랬다. 이 시를 발표한 해인 1949년, 그는 이때 한센병에 걸려 다리 밑에서 거적을 덮고 살아갔다. 아마 늦봄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개울 가까이 무논에서 개구리 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다. 그는 어렸을 적 고향 함경남도 함주에서 들었던 개구리 소리가 떠올랐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보였다. 어머니가 눈앞에 보이고, 어머니에게 배운 한글 자모 소리가 떠올랐다. 순간 개구리 소리는 꾸우악 꾸우악도 아니고 골골골도 아니고 산개구리 소리 호로롱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바로 이 소리였다.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 라.


이런 사정을 알고 이 시를 읽으면 가슴에 뭔가 꾹 차오른다. 이 시는 그저 한글 자음과 모음을 가르치는 시가 아닌 것이다. 어린 시절, 문둥병에 걸리지 않았던 그 어린 시절이 그리워, 속으로 꺽꺽 울면서 쓴 시가 아닐까 싶다. 서러움에 복받쳐 쓴 시가 아닐까 싶다. 또 문둥이들이 사람대접을 받는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그기 가"고 있냐고, 마침내 그곳에 가 '파랑새'가 될 수는 있냐고...


태그:#김찬곤, #한하운개구리, #한하운전집, #한하운시초, #한하운보리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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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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