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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물정 몰랐던 어린 시절, 나는 내가 돈을 벌고 미래의 남편에게 가사 일을 맡기겠다고 작정했다. 딱히 올바른 사고라고 볼 수도 없고, 뚜렷한 직업적 포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꽤 오래 그것을 소망했다. 어리숙했던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야 세상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너무 허황된 꿈이었다는 것을.

이것이 내 개인적 경험이고 무능일 뿐일까. 슬프지만, 그런 면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너무 많은 지표들이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보상 등에서의 성 격차를 증명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생활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위안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지만, 씁쓸함이 더 크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이란 말만 나와도 불편하게 여긴다. 누군가는 가정 경제의 책임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대다수 한국 남성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이유로, 페미니즘은 오직 한 성만을 위한 학문이나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보다 더 다양하고 열린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운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여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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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열풍이 유행처럼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끊임없이 이야기되길 바란다. 또한 자라나는 세대들은 모쪼록 어떤 치우친 관점 없이 자랄 수 있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중 하나로 나온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이 책의 부제는 '여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다. 혐오, 문명, 정치, 결혼과 가족, 전쟁과 재건, 호명, 규범, 운동, 노동의 역사에 관한 아홉 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여성사를 돌아봐야하는 필요성을 역설한다.

"곧 여성사란 한쪽으로 치우친 단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불편하고 또렷하게 보이지 않고 더디지만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치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여성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필요합니다."(p9, 머리말)


아주 옛날로 돌아가 보자.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유독 여성상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여성이 신처럼 숭배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인류 태초의 문화권에서는 남신보다 여신이 먼저 등장했고, "지구상 모든 곳에서 대모신은 우주이자 우주 만물의 창조자"(p41)라는 것이다.

또한 나라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한 여성은 모두 여신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유화, 소서노, 알영을 지모신이자 농업신, 호국신으로 숭배해왔고, 나라의 큰 제사 또한 여제사장이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혐오는 너무 일찍부터 발견되고 만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선덕여왕을 언급하며 여자가 왕이 되다니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라고 안도했다고 한다. 여자라서 안 된다는 사고는 선덕여왕 당시는 물론,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내려왔다. 업적은 폄하되고 과오는 부풀려지며 공정하지 못한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

여성에 대한 부당한 시선의 예를 보노라면 가슴이 무너진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을 부르던 '환향녀'라는 말은 우리가 알다시피 욕으로 변질되었다. 성리학적 질서를 세운다는 명목 하에 강조된 열녀 추앙은 어떠한가. 열녀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전쟁 시 적군이 쳐들어오면 몸을 지키기 위해 자살할 것, 남편이 죽으면 자결하여 같이 묻힐 것, 병든 남편을 위해 허벅지 살을 먹일 것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신여성을 비난하는 글에서 기시감마저 느껴진다.

"①참스럽지 못하고 ②얻어 입고 얻어먹고 놀기만 좋아하며 ③허영에 뜨고 ④사치덩어리요 ⑤품행이 더럽고 (…) ⑬까닭 없이 남자가 사 보내는 것을 기뻐하며 (…)"(p19, <신여성>1924년 8월호 재인용)


책에 실린 1930년 1월 12일자의 조선일보 삽화는 더욱 씁쓸하다. 결혼 조건을 내건 여성의 다리가 그려져 있다. 저자는 이러한 대상화가 오늘날의 여성 혐오 표현과 다르지 않음을 지적한다. 전근대적 여성상과 다른 새로운 여성상의 등장에 대한 두려움이 이렇게 조롱과 비난, 경고로 이어진 것으로 저자는 분석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책에서 보다 집중해야 할 것은 이 부분일 것이다.

"노동은 인류를 유지시킨 중요한 삶의 동기이자 고리입니다. 여성은 단 한 번도 노동의 역사에서 벗어난 때가 없었고 지금의 역사를 일구어왔습니다." (p192)


인류의 역사를 말할 때 한 성의 이야기만을 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도 못되는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이 땅의 여성 역시 역사의 한축을 담당했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세상에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개항 이후 두드러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찬양회라는 여성단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권리 선언을 한다. 이들은 여성 역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교육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여학교를 세우기도 한다.

뿐인가. 여성들은 3·1운동의 공동 주역이었다. 저자는 3·1운동이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의 생각을 하게 했고, 여성 자신이 민족의 구성원임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재판정에 선 여학생의 말이 인상적이다.

"세상 모든 일의 성공이란 모두 남녀가 공동으로 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좋은 가정은 반드시 부부가 함께 만들고 좋은 국가도 남녀의 협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p177, 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재인용)


1925년에는 조선여성동우회, 경성여자청년동맹, 경성여자청년회 연합으로 국제부인데이(지금의 '세계 여성의 날') 기념 강연회가 개최되고, 1927년에 조직된 근우회는 "조선 자매들아 단결하자"(p179)고 선언한다. 해방 후 조직된 조선부녀총동맹은 "우리는 해방된 조선의 여성주인공들이다"(p181)라고 선언하며, 모든 부분에서의 남녀평등을 주장했다고 한다. 일제의 감시 때문에 중단되었다가 해방 후 재개된 여성의 날 기념 강연회에서,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해방이란 말뿐이요 이곳 여성들은 봉건이란 쇠사슬에 얽매여 있으며 과거에도 보지 못한 수난의 시기에 있는 것이다. 착취의 쇠사슬이 끊어지기를, 남녀 동등권을, 학문의 자유를, 민생 문제의 해결을!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손으로 민주 정부를 세워야 한다." (p138)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의 평등을 분명히 하지만, 가족법은 오랫동안 전근대적 관습을 유지했다고 한다. 재산상속과 자녀 양육에 대한 권리에서 남녀를 차별하고, 부계 혈통을 우선시한 것이다. 가족법 개정 운동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1991년부터 새 가족법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가사노동의 가치가 법적으로 보장받고, 재산의 균분상속이 법적으로 보장된 것은 이때부터이고, 차별적인 호주제가 사라지게 된 것은 2008년이라고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성 평등은 개선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이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남녀 공히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별로 결정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갈 길이 먼데 이미 지나온 길에 만족하며 멈출 필요는 없을 테다.

저자는 일상의 차별들을 거부한 여성들의 의지가 현실을 조금씩 바꾸었음을 말한다. 자칫 사소해 보이는 여직원의 책상 닦기도, 결혼 퇴직제와 차별적 정년도, 이것이 옳지 못하다고 외친 이들의 노력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당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노력이 필요할 테다. 거듭 말하건대, 성 평등은 어느 한 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저는 즐거운 미래를 계획하는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여성사를 즐겨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p9)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 여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임하 지음, 철수와영희(2018)


태그:#이임하의 여성사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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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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