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소연

배우 장소연 ⓒ 권우성


어느덧 연기한 지 18년차가 됐다. 그간 숱한 '단역'이 배우 장소연을 스쳐갔다. 동시에 장소연은 연기가 아닌 다른 일도 해야 했다. 장소연은 여러 매체 인터뷰에서 "배우는 작품이 없으면 수입이 0원"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지난 5월 말,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끝마치고 만난 종영 인터뷰에서도 장소연은 이 말을 반복했다. 이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교훈' 같은 것이었다.

장소연은 배우로서 작품을 하는 동시에 휴대전화 안테나를 조립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교통량을 조사하는 아르바이트를 잠시 하기도 했다. 잠시 캐나다로 떠나 리포터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의 외국어 능력을 알아본 관계자로부터 한 백화점 명품관 점원으로 일을 해달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소연은 그 모든 일에 대해 "연기 외에는 뭔가를 계속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돈을 벌려면 회사에 취직하거나 고정적인 일을 해야 한다. 배우는 일이 없으면 수입이 0원이니까, 최소한의 생활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그런데 고정적인 일을 하면 오디션이나 촬영에 갈 수 없으니까 임시직이나 단기적인 일을 많이 했다. 어쩌면 연기를 안 했으면 캐나다에서 계속 살았을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도 '아 역시 연기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극단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연기를 평생 해야 겠다는 자신은 없었다. 캐스팅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럼에도 할 수 있는만큼 원없이 하고 싶었다."

장소연은 연기를 '짝사랑'에 비유했다.

"끊임없이 연기를 좋아했다. 연기하는 게 정말 힘들 때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싫다거나 질린 적이 없다. 짝사랑 같은? 뭔가를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지 않나. 좋아져'버리는' 거다. 처음 중학교 때 연극을 봤는데, 뭔가에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한 눈에 반하는 것 같았다. 이후로도 계속 생각이 났고, 무대에서 호흡해보고 싶었다. 집에서 혼자 연습을 했고, 마침내 오디션을 보게 됐다. 그런데 오디션을 보는 자체가 재밌었다. 오디션 현장이 곧 무대가 됐다. 정말 현장에서 해보면 얼마나 재밌을까 싶었다. 지금도 촬영장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연기 18년차, 알바와 병행하며 고집한 연기

 배우 장소연

배우 장소연 ⓒ 권우성


장소연은 연기를 위해 외국어를 배웠고, 연변 사투리를 연습했다. KBS <해피투게더>에 나와 영어, 일어, 중국어로 유창한 언어 실력을 뽐냈고, 영화 <황해>를 위해 숙지했던 연변 사투리를 선보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아서"라면서 빙그레 웃었다.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역할이든 맡으면 그날로 그 배역을 '체험'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커피 가맹점 점주 '경선'으로 나온 장소연은 가맹점 점주 교육을 따로 받았다.

"새로운 작품과 인물을 할 때마다 잘 소화하고 싶었다. 연기를 갈구하는 마음이 매번 더 커졌다. 물론 이번 드라마에서는 직업보다 인물들 간의 관계를 잘 그려내는 게 주가 된다. 그럼에도 역할이 몸에 체화가 돼있어야 연기할 때도 불편함이 없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직업으로나 생활로나 최대한 경선이가 돼 살려고 했다. 캐스팅되는 순간부터 식습관이나 자세를 만든다. 그래야 나도 편하다."

장소연이 내성적이라 생각했던 그의 부모님은 '배우'라는 직업에 반대했다. 한 번은 가족들끼리 다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장소연이 나오는 영화 <욕망>이 방영되는 걸 봤다고 한다. "너랑 똑같이 생긴 애가 TV에 나온다"는 아버지의 말에 장소연은 모른 척 하고 바로 학교에 갔다고. '어떻게 딸인줄 모를 수가 있느냐'는 기자의 반응에 장소연은 '하하' 웃으면서 "그 영화에서 가발도 쓰고 평상시 스타일과 많이 달라서 가능했다"고 답했다.

"학교 다닌다고 그러고 촬영 가고 MT 간다고 말하고 지방 촬영 가고 그랬다. 특별한 사생활이 없어서 거의 집에 있고 촬영할 때만 나가 있었다."

아버지가 딸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MBC <하얀거탑> 때부터였다. "친척들이 딸이 TV에 나온다고 연락이 오고 그랬다. 그때는 속일 수가 없지 않나." 하지만 <하얀거탑> 이후로도 반대는 계속 됐다.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매일 일이 있는 게 아닌 탓에 장소연은 아버지로부터 "취직을 하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장소연은 "한 3년 전까지는 계속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순종적인 편인데,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고집을 잘 안 꺾게 되더라"고 말한다.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네가 연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나는 현장이 편하고 재밌다. 나로서 오롯이 있으면 쑥스러운데, 한 인물로서 카메라 앞에 있으면 그 인물의 '당위성'이 있으니 즐겁다. 나는 심부름도 잘 하고 말을 잘 듣는 편인데 일적인 부분에서 내 고집을 한 번도 꺾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기를 하면서 평소에 느끼지 않는 감정을 느낀다. 난 단조롭게 사는 편인데, 현장에선 평소에 쓰지 않던 감정이 나온다. 이 인물과 상황에 빠져 사는 게 재밌다. 내 자신의 다른 면도 발견하게 되고, 그게 너무 재밌다."

"안판석 감독이 다시 드라마 제안해도 100%"

 배우 장소연

배우 장소연 ⓒ 권우성


배우 장소연은 영화 <국경의 남쪽>(2006)부터 안판석 감독과 함께 했다. <국경의 남쪽> 때는 단역 출연에 그쳤지만 이후 <하얀거탑>(2007), <아내의 자격>(2012), <밀회>(2014), <풍문으로 들었소>(2015),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까지 2006년부터 한 작품을 제외한 안판석 감독의 모든 작품에 출연했다. 그는 '앞으로 안판석 감독이 제의해도 작품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100%"라고 답했다.

"작품을 바라보는 안판석 감독님의 근간은 변하지 않았다. 과한 걸 싫어하시고 정말 있을 법한 사람의 이야기를 추구한다는 건 항상 같았다. 내가 감독님에게 존경하는 부분은 계속 작품을 할수록 발전하는 방향으로 시도를 하신다는 점이다. 촬영장이 즐거울 수 있도록 여러 시도를 하신다. 또 상대적으로 다른 드라마 현장에 비해 촬영 시간은 짧지만, 현장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정서적으로 교류할 수 있게 배려를 많이 하신다. 스태프들하고도 대화를 계속 하려 하시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분위기를 만들어나간다. 김창완 선생님께 촬영 끝나고 '미니 콘서트'처럼 노래를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웃음) 술자리는 거의 없었는데 그렇게 한 번씩 서로 놀면서 친해지고 현장이 즐거울 수 있게 만들어주신다."

장소연은 소위 '안판석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는 "믿고 맡겨주시니까 감사하다. 또 매번 다른 역할을 주시기 때문에 너무 신나고 고맙다"고 말했다.

"<하얀거탑>까지 오디션을 봤고 이후로는 오디션을 따로 보지 않았다.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셔서 내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랑 이런 역할이 있는데 같이 하겠느냐고 물으시면 그저 너무 좋다고 답한다. (웃음) 우연히 연극 <라빠르트망>을 하면서 안판석 감독님이랑 친한 안무 감독님을 만났다. 반가워서 안판석 감독님께 '지금 공연하고 있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 전화를 주시더라. 안부를 주고 받다가 갑자기 '근데 너 몇 살이지?' 하시는 거다. 답을 하니 '스케줄 어떻게 되냐'고 물으셨고 '잘 맞을 것 같다'고 '같이 하자'고 하셨지만 어떤 역할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 해주셨다. 조금 기다리고 있다가 마음이 조급해져서 '뭘 준비해야 하지' 싶어져 다시 연락을 드렸다. 원래 쑥스러워서 전화를 잘 못 하는데, 그때 바로 메일로 대본이랑 시놉시스를 보내주셔서 바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장소연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경선' 역할에 한동안 빠져 지냈다. 경선을 두고 장소연은 동생을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든 누나고 책임감이 강하지만 외롭게 살았던 인물인 것 같다면서 그와 비슷한 면이 본인 안에도 있다고 고백했다.

"많이 표현하지 않고 감정을 누르지만, 힘들 때마다 삐져 나오는 것도 닮았다.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경선이에게 많이 빠져 있었다. 아프면서도 행복한 작업이었다. 나 역시 혼자 배우 일을 하면서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일이 너무 없거나 또 잘 안 되어도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했다. 그런 부분에서 경선이와 비슷한 점이 있고 공감이 갔다. 무엇보다 경선이로 살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너무 중요하구나'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위안이 너무 크구나'를 느꼈다."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속 배우 장소연(경선 역)의 모습.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속 배우 장소연(경선 역)의 모습. ⓒ JTBC


안판석 감독은 배우 장소연이 경선으로서 감정의 결을 잘 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장소연은 "화를 내는 연기를 하다가 진짜로 화가 나서 말문이 막히면 그 말문이 막히는 장면을 그대로 살려주신다"면서 안판석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에 대해 장소연은 "리허설은 안 하고 순간적인 리얼리티가 더 담기길 바라는 게 아닌가 싶다. 감독님이 중간에 끊지 않으시고 내가 연기하는 걸 끝까지 다 봐주셨다"고 말했다.

'인물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있었다는 말에 대해 장소연은 "시청자 분들에게 조금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면 재방송으로 드라마를 한 번 더 봐주셨으면 하는 거다. 그 인물의 속마음이 더 잘 보일 것 같다"고 당부했다. 그는 "나도 빠져서 보면 그렇게 보일 때도 있었는데, 떨어져서 보면 그 인물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보이더라.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이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앞으로 시청자들은 장소연을 어떤 배역을 통해 볼 수 있을까. 지금보다는 좀 더 중심 인물로서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배역의 크기보다는 인물의 진정성이 잘 표현될 수 있는가, 이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지를 중심에 두고 작품을 선택하고 싶다."

장소연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작품으로 나오면 그 작품의 한 부분이 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서 조심스럽게 조정래 소설가의 <아리랑>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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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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