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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사다. 마침 보름달이다. 달빛에 기대 공양간 뒤곁 드럼통 화덕 옆에 도란도란 사람들이 앉아 한 소쿠리의 머위대를 다듬고 있다. 화덕 큰 솥 안에서는 낮에 계곡 대나무밭에서 뽑아 온 죽순이 펄펄 끊고 있다. 경남 창녕에서 온 해직교사 출신 박 선생, 부산 고무공장 노동자 출신 권 선생, 빈민운동과 노동자정당운동을 하다 폐암 판정을 받은 정 선생과 경기도 성남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김 선생이 앉아 도란도란 살아왔던 날들 이야기를 꺼낸다.

이젠 자신만을 위해 이 깊은 산사에서 홀로 쉼을 가져야 하지만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위해 참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들. 그들의 평생의 노고는 어디에 어떤 흔적으로 남는 것일까. 쓸데없는 질문이다. 저 자연처럼 인간들 역시 수고한 많은 것들의 결실을 스스로 챙기지 않는다. 챙길 수도 없다. 내가 오늘 누리는 최소한의 자유를 위해 누군가 과거에 어떤 고통을 지고 갔는지 묻지도 않고 알 수도 없듯이 우리 모두의 수고도 누군가의 일상에 평범하게 자리잡을 것이다.

그렇게 이름 없이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 평등을 위해 일하다 지치거나 병든 이들이 경제적인 부담없이 자율적으로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 소망들이 모여 만들어 놓은 전북 남원 만행산 자락 깊은 곳에 자리잡은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의 저녁 풍경이다. 내 역할은 삼발이 리어카로 땔감을 실어와 내려주는 일. 실어증에 걸린 이처럼 머위대를 다듬는 이들 옆을 서성이는데 전화기가 울린다. 서울에서 지금도 온갖 노동자 투쟁 기획을 도맡아하고 있는 '사라'다.

"형, 스타케미칼 고공 200일(5월 30일 기준) 글 어떡할 거예요."

차마 쓰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작년 겨울 내가 앞서서 하자 했던 일이었다. "형, 나도 일 많거든." 스타케미칼 고공 지원 함께 할 거니, 대신 형도 하이디스 농성 3년 맞이 일 함께 하자고 딜을 요청해 와서 그렇게 우리끼리 누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합의 조정하기도 했었다.

막혀도 전진하고, 디딜 곳 없을 땐 고공으로 간 사람들

 지난 2015 7월 8일 차광호씨가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에서 408일 고공 농성을 마쳤다.
 지난 2015 7월 8일 차광호씨가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에서 408일 고공 농성을 마쳤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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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들은 2015년 차광호의 408일 간 고공농성까지 더하면 600일이 넘게 하늘살이를 하고 있는 이들이다. 얼마 전엔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도 했었다. 그때도 글을 쓰던, 올라오던 하라는 벗들의 지침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나도 어떤 고공에 있다는 '싸가지 없는' 마음이었다. 평지라고 붙잡을 것 하나 없는, 고공 아닌 곳이 없는 냉혹한 사회다. 오체투지로 며칠에 걸쳐 청와대를 향해 가다 국회 앞에서 경찰들이 행진을 막아 엎드린 채로 날을 꼬박 새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는 박근혜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20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출발해 다음해 1월까지 쌍차, 유성, 콜트콜텍 등 해고노동자들, 그리고 기륭, LGU+, SK브로드밴드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정리해고-비정규직법 전면폐기를 위한 오체투지'를 제안하고 3차 행진까지 함께 했다. 그때도 국회 앞에서 막는 경찰들과 대치해 다섯 시간 넘게 싸우기도 했다. 현장에서 다섯 명이 연행당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방송차를 탈취당하고, 방송차를 지키던 동지가 결국 구속되어 몇 개월 살다 나오기도 했다. 1980년대 사북 탄광에서부터 노동운동을 해왔던 선배 노동자였다.

최근 그 당시 국회 앞 기자회견 건으로 재판 하나가 비로소 끝났는데 생각지도 않게 국회 앞이라고 해서 무조건 100m 이내 집회를 막는 것은 옳지 않다고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었다. 얼마 전 헌재에서도 최종적으로 국회 앞 100m 이내라고 무조건 집회 시위 등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 기본권 침해로 위헌이라는 판결이 났다. 며칠만 빨리 판결이 났어도 또 일단의 사람들이 길바닥에 엎드린 채 날을 새는 어려움은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국회 앞은 이명박근혜 시절 내내 기자회견도 가능치 않던 공간이었다. 물론 노무현 때도 김대중 때도 그렇긴 했다. 노무현 정권 초기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때 국회 앞 차벽 앞에서 물대포를 맞고, 밀어붙이는 경찰병력에 의해 통째로 사람들이 넘어질 때는 압사라는 게 이런 경우에 일어나겠구나 공포심을 가졌던 기억도 있다. 노무현 정권 말기 한미FTA를 밀어붙일 때도 골목까지 막아 선 차벽이 있었고 사람들이 깔려 죽는다고 해도 밀어붙이던 공포스러운 경찰벽이 있었다.

각설하고, 2015년 당시 오체투지 때도 엎드린 채 날을 샌 적이 있다. 영하 10도를 오가는 겨울밤이었다. 청와대 행진을 막는 경찰에 항의해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60여 명이 엎드린 채로 일어나지 않고 밤을 꼬박 샜었다. 청계광장에서 출발해 광화문 네거리와 세종문화회관 앞 횡단보도를 오체투지로 넘어 정부종합청사까지 1km 남짓을 가는데 대략 다섯 시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잘 모르는 이들은 왜 자해투쟁을 하냐고 했지만, 모르는 소리. 당시 오체투지는 가장 비타협적이고 송곳처럼 날카롭게 전경련과 국회와 대법원, 청와대 등 권력의 핵심을 향해 온몸으로 전진해가는 전투적인 투쟁이었다. 보통 영하 7, 8도의 날씨에 3박 4일, 4박 5일 동안 서울 전역을 기어서 청와대를 향해 가는 오체투지단을 탄압할 경험이 그땐 경찰에게도 전무했던 때다.

을지로에서는 도심이니 횡단보도는 걸어서 건너달라는 경찰의 협상 요청과 협박을 거부하고 오체투지로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기 위해 일곱 시간을 대치하고, 몇 명이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당시 오체투지 건으로 영광스럽게도 내겐 일곱 건의 경찰 조사가 추가되기도 했다. 며칠 전 당시 건 중에 또 하나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부했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박근혜 때 일어난 일을 촛불정부 때 기소당하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변하는 것도 있지만 여전한 게 더 많은 세상이다.

당시 2차 오체투지 때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해산경고를 열 번 넘게 듣고 이제 연행에 들어가겠다는 선무방송도 한참을 들었지만 그 누구도 엎드린 채로 일어나지 않았고 피하지 않았다. 근처 세월호 농성장과 민주노총 등에서 공수해 온 침낭이나 덮개로 엎드린 한 사람 한 사람을 봉분이라도 만들 듯 감싸주던 따뜻한 기억들. 그후 경찰은 한참동안 오체투지라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무조건 불허를 했었다. 흰 소복만 봐도 경기를 일으켰다. 우리의 지속적인 투쟁과 문제 제기가 보태져 며칠 전 헌재에서도 국회 앞 100m 이내 집회 시위 금지가 위헌 판결이 난 것 아니겠는가 가끔은 위안을 해본다.

왜 우리는 여전히 싸워야만 하는가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연대단체 참석자들이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오체투지를 벌이며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에 막혀 무산됐다.
이날 이들은 "낮은 자세로, 온몸으로 기어 비정규직의 현실을 알리려 했지만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며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거지꼴이 된 우리의 모습이 2014년을 사는 한국 비정규직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연대단체 참석자들이 지난 2014년 12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오체투지를 벌이며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에 막혀 무산됐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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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체투지 행진을 촛불정부 하에서도 다시 해야 한다니, 다시 국회 앞에서 경찰에 막혀 엎드린 채로 날을 새워야 한다니, 때론 기운 빠지고 암담하다. 고공에 올라 간 노동자들 문제가 200여 일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는 이 사회도 참 여전하다. 특별히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차에 몇 시간 방치만 해두어도 경찰에 동물학대로 신고가 들어가고, 주인에게 책임이 물어진다고 한다. 무슨 고양이나 강아지가 저 높은 고공에 고립 방치된 채 200일이 되었다 해도 정치 사회적으로 문제될 일이다.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해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말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노사 문제에는 정치권이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노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 정부 여당이 앞장서 최저임금법과 노동법을 개악하는 것일까. 2200만 명의 국민이 정부 공식 통계 노동자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도대체 일터의 안전과 평화, 평등과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와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는 것일까. 노동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일까. 급기야 더 큰 사회적 사건이 되고, 물의와 갈등과 분쟁이 되면 그때야 나설 참인가.

근래 몇 가지 사건과 결정, 이야기들이 모두 노사 문제에 대한 정치의 개입이 어떤 것인가를 확인시켜준다. 최저임금법 개악은 기가 막히고 분노스럽다. 박근혜가 하려던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노동법 전면 개악이었으나 끝내 못했다. 전면 개악이 어려울 듯하자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등을 사측이 손쉽게 할 수 있게 기껏 시행령을 밀어부친 정도였다. 그런 노동법 개악을 촛불정부가 하다니, 착잡하다. 박근혜의 노동법 개악은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막아주지 않았다.

며칠 전 만기 출소한 한상균 민주노총 집행부의 총파업과 이어진 민중총궐기 등이 박근혜의 독주를 막았다. 같은 시기 청계광장 농성에 이어, 대통령 선거 투개표수인 1만 3천여 곳에 버금가는 전국 1만 개소 '노동법 개악저지 을들의 국민투표소' 일을 하던 때도 생각난다. 미안하지만 당시 민주당이 박근혜를 막기 위해 어떤 결사와 총력을 다했는지는 잘 기억에 없다. 간간히 을지로위원회 사람들을 보게 될 뿐, 당시 보수 여당과 다를 바 없이 덩달아 유들유들하고 논리적이고 말이 번지르하고 청산유수고 미끈미끈하던 그들을 민주주의의 거리와 광장에서 못 본지 한참 되었던 때다.

결국 위기를 느낀 노동자민중 시민들이 촛불항쟁으로 바로잡아놓은 세상이다. 그래놨더니 적폐청산 대상 당들과 손잡고 속전속결로 노동법 개악이라니 황당하다. 다수 의석이 없어 그렇다라는 핑계였다가 다수당 만들어주니 보수도 끌고 가야 한다고 스스로 보수가 되는 이들. 양의 탈을 쓴 하이에나나 카멜레온과 무엇이 다른가. 당신들에 의해 우리 노동자들과 민중, 평범한 시민들은 다시 현실과 정치를 모르는 '개돼지'들로 취급받는 더러운 기분이라는 것을 아는가. 아직도 촛불항쟁은 끝나지 않았고, 당신들이 그 적폐청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까먹었는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정부는 필연적으로 노자 문제를 핵심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기본 상식을 '노사 문제에 대한 불개입과 중립의 정치'라는 오래된 사기로 넘어서려는 것인가.

박근혜 시절 대법원의 노동계 블랙리스트 실행 가담 진상조사 결과 발표도 있었다. 박근혜 청와대에 충성하고 사법부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판결을 거래했다는 의혹이었다. 통진당 해산, 과거사 진상규명, 전교조 법외노조화, 그리고 쌍용차와 콜트콜텍, KTX 해고 승무원, 갑을오토텍 사건이 대법원에 의해 기획 판결됐을 가능성이 드러났다.

그 영향은 작지 않았다. KTX 해고 승무원 판결은 삼성전자, LG, SK 등에서 일하는 모든 하도급 노동자들의 원청 사용자성을 부정하는 판례로 쓰였고,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에도 정리해고가 합법'이라는 콜트콜텍 해고자 판결은 그간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하던 '명백한 경영상의 위기'라는 정리해고 요건을 무너뜨리고 모든 노동자들을 손쉽게 정리해고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 판례가 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논란의 당사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일 기자들 앞에 서서 재판에 간섭하지 않았으며, 판사에게 불이익을 준 적도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급기야 당사자들이 긴급하게 나서서 양승태 등에 대한 구속 수사와 정보 공개, 재심청구를 하게 되었다. 현행 대법원의 진실규명 용기에는 감사와 박수를, 그러나 미진함에는 강력한 규탄과 비판이 불가피하다. 0.1%의 부당한 외압이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최소한의 '법치'마저 부정한 '불법 판결'로 규정되어야 하고, 해당 법관들에게는 더 엄중한 책임과 처벌,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관련 판결들의 즉각 무효화와 재심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거래'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과 판결 원상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거래'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과 판결 원상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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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해진 다른 소식 역시 국가가 노사 문제나, 사회적 갈등 문제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확인시켜준다. 한 가지 소식은 경찰개혁위원회에서 그간 거리와 광장, 그리고 일터의 민주주의를 탄압하기 위해 집회 시위과 관련해 국가가 원고가 되어 진행하던 손배청구에 대한 권고안을 냈다는 소식이었다.

앞으로는 '국가원고 소송제기'에 엄격한(?) 기준안을 만들고 소송 진행 중인 광우병촛불, 세월호, 쌍용차, 유성기업, 그리고 나도 피고가 되어 있는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관련해서 '화해, 조정 등의 절차'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이를 위해 유관부처와 긴밀하게 협의할 것'이라고 한다. 마침 서울에서 열렸던 희망버스 국가손배 결심 재판에서도 재판부가 '조정' 과정을 거치자 했다고 한다. 범법자, 폭력배, 치한 취급을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화해와 조정'이라니. 유구무언이다.

재밌는 건 이 소식을 발표한 이철성 경찰청장이 박근혜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으로 있을 무렵 전경련 등을 통해 보수단체 지원을 통한 화이트리스트 육성 관련 계획안을 작성하고 관여했다는 의혹을 전하는 기사도 더불어 나온 것이다. 권고안을 지키겠다는 약속보다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물러나는 게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거듭날 수 있지만, 과정에 진정성 있는 책임의 시간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과오에 대한 고통의 시간을 통해 거듭나야 하는 것 아닐까. 어떤 자리와 권력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삶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을 숙고하는 반성의 시간이 훨씬 그와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또 하나의 소식은 헌재에서 2015년 세월호 1주기 추모제 때 경찰이 캡사이신을 섞어 무차별 사용했던 물대포 살수가 '법률의 기본원칙에 위배'되며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한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냥 씁쓸하다. 얼마나 많은 현장에서 그 물대포 앞에 서야 했던가.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당시 캡사이신이 섞인 물대포를 맞고 알아볼 수 없게 얼굴이 부어 병원으로 긴급하게 수송하던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물대포에 맞아 서울대병원으로 실려 간 백남기 농민의 한도 이젠 조금은 풀리는 것일까. 조문마저 막던 경찰들과, 또 사람들의 조문을 뚫지는 않고 자신들만 특혜처럼 쏙쏙 드나들던 국회의원 나리들과 한바탕하고는 신경이 곤두서서 사흘 동안 잠 한 숨 자지 않은 채 지키던 서울대 장례식장. 그러다 쓰러진다고 벗 노순택과 함께 종로 낙원동 모텔에 들어가 한숨 자던 그 한낮의 어지러움도 이젠 잊어도 되는 것일까.

하여튼 이렇게 국가는 반민주를 대리해서, 반평화, 반평등, 반생태, 반인권, 반노동자민중을 대리해서, 그간 숱하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평범한 노동자 민중과 시민들의 권리를 짓밟는데 앞장 선 주체였다. 그런 기본 성격을 부정하고 문재인 정부는 어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정권이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정말 그래 주겠다는 것인가. 22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평범한 서민들의 편에도 서지 않고, 소수 자본가들의 횡포도 놔두며 어떤 천상의 정권이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그들의 탑돌이는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스타케미칼 노동자들
 스타케미칼 노동자들
ⓒ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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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케미칼 노동자들 고공농성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졌다. 역사적인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 협정에 이은 평화협정, 다가 온 지자체 선거 등 다른 큰일도 많은데 몇 명의 해고노동자들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이 올라 가 있는 저 절박하고 가파른 절망과 고립의 장소가 우리 모두의 내면에 다름 아니다. 미래가 없는 노동자들의 막막한 오늘과 다르지 않다. 삶 속에서 무수히 무시당하고 외면, 배제당하는 노동자들의 처지 일상과 다르지 않다.

일상의 모든 관계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자본이라는 핵은 실상 잠재적 위협으로서의 핵무기보다 훨씬 위험하고 치명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파괴하고 있고 위협하고 있다. 단 한번도 우리가 위임한 적 없고 선출한 바 없으나 3대 4대 세습되며 그 어떤 권력보다 절대적인 자본의 힘과 독점과 폭력과 특혜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삼팔선을 허물고 한반도 비핵화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시급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모순을 숱하게 체험한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들이 자신들만의 복직을 넘어, '헬조선 타파', '수구보수정당 해체', '노동3권 보장' 등을 함께 내걸고 있는 것은 어쩌면 주변의 우려를 넘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목동 CBS 본사에 있는 스타케미칼 본사에 참다 못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사장 면담을 위해 올라간다고 했다. 200일 맞이 문화제에 많이들 와서 응원해주면 좋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굴뚝에 전화해 힘들지 않냐고 하니, 괜찮다고 한다. 근래 못 가봐 미안하다니, 도리어 '우리 걱정마시고, 행님이 푹 쉬어야 합니데이' 한다. '응원하고 있는 건 알지' 하니, 잘 알고 있다고, '지치지 마이소, 우리도 행님을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산사로 들어오기 전 마음을 씻기려고 이십 수일을 동해와 남해의 바닷가로 정처없이 돌면서도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그들이 자꾸 떠올라 차마 등대불빛은 쳐다보지를 못하기도 했었다. 올라 가 있는 홍기탁과 박준호는 나와 함께 '박근혜퇴진 광화문 캠핑촌'의 촌민으로 그 겨울 농성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2009년 용산참사 투쟁을 하다 나가 떨어져 충북 영동의 한 폐교에서 잠깐 쉬고 있을 때는 응원하겠다고 찾아와 온갖 산약초를 캐와 술을 담가주고 가기도 했던 게 홍기탁과 차광호 등이기도 했다.

본인들은 늘 자신들을 '우린 촌놈들이잖습니까'하고 겸손해 하지만, 지난 2015년엔 408일의 고공농성 끝에 '노조 승계, 단협 승계, 고용 승계'라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노동운동 전체에 새로운 기운을 만들기도 했던 투철한 이들이기도 하다. '여름 다가오는데 땡볕은 버틸 수 있겠냐'하니 '굴뚝 그늘 따라 탑돌이하며 살면 됩니데이' 한다. 그들의 탑돌이가 얼마나 쌓여야 '복직해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그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런 전화를 차광호가 굴뚝 농성하던 2015년에도 숱하게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또 누구와 이런 전화를 주고 받았더라. 쌍차의 누구, 유성의 누구, 기륭의 누구, 기아차비정규직의 누구, LG유플러스의 누구, 부산 생탁의 누구, 건설노조의 누구였을 것이다. 생각하면 그런 고공의 소리와 더불어 살아 온 지난 이십여 년. 이제 그만 저 외로운 고공의 이야기도 끝나야 하지 않겠는가. 다수의 노동자들이 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소수 자본가들의 역사가 이제 그만 먼 과거의 이야기로 사라져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때까지 다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이 어두운 세상을 건너야 하는 것일까.

 스타케미칼 노동자들
 스타케미칼 노동자들
ⓒ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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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 위에서 흔들리는 두 개의 빛이 손전등 빛이 아니라 홍기탁, 박준호 두 사람이 온몸으로 피워내는 혼신의 빛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시대의 등신불처럼 지금 그렇게 두 사람이 온몸으로 이 애매하고 다시 막막한 시대에 등대 불빛이 되어주고 있다. 미안하고, 고맙다.

글을 쓰라는 숙제를 마치고 방을 나서 뒤곁 아궁이로 가니 장작은 모두 타고, 하얀 재 속에서 벌건 숯불이 조용히 일렁이고 있다. 산사의 저녁은 아직도 서늘해 매일 저녁 무렵 아궁이에 불 넣어두고 일렁이는 불빛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일이 근래 가장 소중하고 애틋한 일이 되어 있다. 건너다보이는 능선 위로는 아직 보름달도 훤하다. 굴뚝 위에서도 혹 잠 못 들고 저 달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또 어떤 외로운 이들이, 삶에 지친 이들이 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빛을 그리워하는 이들에 의해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날이 있으리라.

혼자 있는 것 아니니 외로워말라는 건지 반딧불이 몇이 깜빡깜빡하며 토방 주위를 맴돈다. 까맣게 잊었었는데 반딧불이들이 지금도 살고 있구나. 홍기탁이라는, 박준호라는 반딧불이들이 아직도 살아 있구나. 큰 시대의 불빛은 되지 못해도 어떤 어두운 길에 이런 반딧불처럼 깜박이며 살아도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 하나 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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