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에서 돌아왔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또다시 부상 때문에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6월 1일(이하 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홈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던 커쇼는 크게 부진하진 않았지만, 그에게 걸었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투구를 했다.

커쇼의 등판 기록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62구를 던져 5이닝 4피안타 1볼넷 5탈삼진 1실점의 기록은 부상으로 1달을 결장했다가 돌아온 투수임을 감안하면 준수했다. 그나마 1실점도 2회초 수비 때 필리스의 주자 마이켈 프랑코가 홈 플레이트를 밟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는데, 이에 대한 챌린지를 신청했으면 기록되지 않을 실점이었다.

문제는 다저스가 이에 대한 프랑코의 실수를 빨리 눈치채지 못했고, 이 때문에 비디오 판독을 신청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커쇼는 1실점 노 디시전을 기록했고, 다저스는 필리스에 1-2로 패했다.

시뮬레이션 4이닝만 치르고 복귀한 커쇼, 회복되지 못한 구속

 다저스의 선발투수 클레이턴 커쇼

다저스의 선발투수 클레이턴 커쇼 ⓒ EPA/연합뉴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경기 하나의 결과가 아니었다. 커쇼의 등판 기록보다 등판 내용을 상세히 뜯어보면 뭔가 문제가 있었다. 커쇼가 던진 공들을 살펴보면 평소 커쇼가 던지는 구속이 나오지 못했고, 결국 커쇼는 62구만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6회부터 등판하지 않았다.

커쇼가 던진 62구 중 빠른 공은 20구였다. 그런데 이 20구 중 시속 145km(90마일)를 넘는 공이 단 한 구도 없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가 몇 경기 정도는 구속이 안 나올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커쇼가 지난해 던졌던 빠른 공 1142구 중 시속 145km 미만이 나온 공이 한 구도 없었다는 경기 기록을 들어보면 뭔가 심각한 상황임이 감지됐다.

커쇼가 올 시즌 왼쪽 이두박근 건염으로 부상자 명단(Disabled List)에 들어가기 전까지 7경기에서 빠른 공 평균 구속은 시속 148km(91.9마일)였다. 이후 부상자 명단에 들어갔던 커쇼는 한 달의 공백 끝에 메이저리그 마운드로 돌아왔다.

커쇼는 현재 류현진(사타구니 내전근 파열)이 거치고 있는 캐치볼의 거리를 늘린 뒤 불펜 피칭을 실시했고, 이후 시뮬레이션 게임 4이닝을 치렀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실제로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세워 놓고 실제 경기처럼 진행하는 훈련이다.

커쇼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 경기만 치른 뒤 바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로 복귀했다. 다저스 측에서도 마이너리그 팀에서 던지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던지면서 상대 타자들이 커쇼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고 커쇼의 구위를 판단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커쇼는 필리스 타선을 상대로 5이닝 1실점으로 비교적 잘 던졌다. 앞에서 언급한 상대 팀 주자의 실수만 제 때에 감지하고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을 경우 무실점도 가능했던 경기였다. 구속이 떨어졌지만 커쇼가 그나마 관록으로 경기을 이끌어간 결과였다.

재활 등판 없이 복귀한 커쇼, 다저스의 복잡한 속사정

커쇼가 시뮬레이션 게임 4이닝만 치르고 메이저리그 실전으로 복귀한 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 우선 다저스 선발진이 부상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5월 초까지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류현진은 사타구니 근육이 찢어지면서 아직까지 롱토스만 실시하고 있다.

류현진은 엉덩이 고관절 부상을 당한 일본인 투수 마에다 겐타와 함께 애리조나 주에 있는 다저스의 스프링 캠프장으로 이동하여 치료 프로그램을 소화할 예정이다. 최근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마에다는 애리조나에 남고, 류현진은 이후 다저스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원정 일정에 합류하여 팀과 동행하며 재활 훈련을 진행한다.

엉덩이 고관절 부상을 당한 마에다는 일단 언제쯤 돌아올지 알 수 없다. 베테랑 투수 리치 힐은 손가락에 터졌던 물집은 나아졌지만, 언제 또 물집이 그를 괴롭힐지 모른다. 개막 로테이션 5명 중 알렉스 우드만 아직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 역시 최근에 다리 근육이 놀라서 부상자 명단에 들어갈 뻔했던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선발투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다저스는 마이너리그에서 선발 수업을 받거나 옵션이 얼마 남지 않아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던 선발 요원들을 로테이션에서 활용하고 있다. 로스 스트리플링, 브록 스튜어트, 워커 뷸러 등이 콜업되어 기회를 얻고 있으며, 어깨 재활로 아직 부상자 명단에 있는 훌리오 유리아스도 후반기에 복귀가 가능하다.

다저스의 또 다른 속사정으로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재활 경기를 치르러 마이너리그 트리플A 경기에 다녀오기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 보통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트리플A에서 재활을 치르는데, 다저스의 산하 트리플A 팀인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오클라호마 주는 텍사스 주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중부 지역으로 분류된다.

재활 경기를 치르는 선발투수들은 재활 등판을 위해 마이너리그 경기에 다녀오는 날이 아니면 메이저리그 팀 훈련 일정에 동행하기도 한다. 코칭 스태프나 트레이너들도 선수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 가까운 곳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편하다.

때문에 다저스의 투수들은 재활 등판을 치를 때 거리가 먼 오클라호마시티보다는 다소 가까운 란초쿠가몽가로 가서 경기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란초쿠가몽가에는 다저스 산하 상위 싱글A 팀이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다저스는 시뮬레이션 1회만 치른 뒤 커쇼를 복귀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커쇼 본인도 워낙 승부욕이 강한 투수였기 때문에 이러한 팀의 결정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복귀전을 마치고 허리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커쇼가 팀에 기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심한 것도 그의 승부욕 때문이다.

최근 5년 간 DL 등재만 4시즌... 가볍게 볼 수 없는 커쇼의 허리

커쇼는 다른 투수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젊은 시절 전성기를 맞이했다. 만 24세인 2011년에 생애 첫 사이 영 상을 수상했고, 2013년과 2014년(MVP 포함)까지 무려 3번의 수상을 20대 중반에 해낸 것이다. 선수들에게 명예로운 자선 활동 기여상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역시 2012년에 수상하면서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각종 개인상은 모두 한 번 이상 수상했다.

그러나 커쇼의 건강 상태는 2014년부터 불안한 모습이다. 2014년의 경우 호주에서 공식 개막전을 치르는 바람에 평소보다 일찍 시즌을 시작했고, 이 때문에 신체 리듬이 급격히 바뀌어서 등쪽 근육 염증으로 인해 개막전 등판 이후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웠다.

어쩌면 이 부상이 커쇼가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시달리는 전초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커쇼는 2014년 200이닝을 넘기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7경기 198.1이닝 21승 3패 평균 자책점 1.77에 239탈삼진을 기록했다. 4년 연속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최저 평균 자책점 타이틀을 지킨 만큼 커쇼는 앞으로 더 대단한 기록을 달성할 것으로 보였다.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지 않았던 2015년이 커쇼의 가장 최근 온전한 풀 타임 시즌이었다. 그리고 커쇼는 이 해에 유일하게 300탈삼진을 돌파하며 구위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증명했다. 타자들의 득점 지원이 원활했다면 승수도 넉넉히 확보하여 생애 4번째 사이 영 상 수상도 가능했을 정도였다(2015년 수상자 제이크 아리에타).

커쇼는 2016년 6월 말 생애 두 번째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당시 6월 마지막 등판에서 6이닝 98구 4실점으로 다소 부진했던 커쇼는 허리의 추간판 탈출 증세를 보이면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다행히 수술까지 가지 않고 경막외 주사를 맞으면서 치료했지만, 커쇼는 9월이나 되어서야 마운드에 돌아올 수 있었다.

2017년에는 7월 말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나마 2016년보다는 심각하지 않았기에 9월에 복귀할 수 있었고, 포스트 시즌 끝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하지만 월드 시리즈 5차전 선발 등판에서 부진했고, 7차전에서는 2경기 연속 부진에 빠졌던 다르빗슈 유(현 시카고 컵스)를 구원했지만 패배를 막진 못했다.

이번 시즌에는 이두근 건염으로 인해 한 달 동안 재활했지만, 허리 부상 이력이 있던 만큼 복귀 시점에 있어서 다소 이른 결정이었다. 최근 3년 연속으로 허리에 이상 징후가 발견된 만큼 향후 커쇼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담할 수 없다.

올 겨울 옵트 아웃 앞둔 커쇼의 운명은?

사실 다저스는 커쇼 이전에 허리에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서 붙잡지 않았던 선발투수가 한 명 있었다. 바로 2001년까지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의 주축으로 활약했던 한국인 투수 박찬호였다. 박찬호는 FA를 앞두고 있었던 2001년 자진 구원 등판까지 포함하여 무려 36경기에 등판했다. 당시 35경기 선발 등판은 내셔널리그 최다 등판이었다.

그런데 박찬호는 2001년 5월 경기 후반에 갑자기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강판되었던 경기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실점이었지만, 책임주자를 남겨놓고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아쉽게 패전을 당했던 박찬호가 장기간 허리 부상에 시달리게 된 시점이었다.

이후 박찬호는 당시에는 심각하지 않았던 허리 부상을 숨기고 풀 타임 시즌을 보냈다. 그 영향으로 후반기 성적이 다소 부진했지만 15승 11패 평균 자책점 3.50의 기록을 남겼다. 당시 234이닝을 던져 내셔널리그 3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내셔널리그 이닝 1위와 2위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월드 챔피언을 이끌었던 커트 실링(256.2이닝)과 랜디 존슨(249.2이닝)이었다.

물론 다저스가 당시 박찬호를 잡지 못한 데에는 케빈 브라운과 대런 드라이포드에게 연속으로 대형 계약을 안겨주면서 재정 문제에 부딪혔던 점이 있었다. 결국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고, 이후 부상이 드러나면서 레인저스에서의 3년 반 동안 규정 이닝을 한 번도 넘기지 못했다. 특히 2013년에는 허리 부상이 심각하여 7경기 1승에 그쳤을 정도였다.

당시의 다저스와 지금의 다저스 프런트 구성진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다저스는 박찬호 이후 커쇼가 등장할 때까지 리그를 지배할 정상급 선발투수를 발굴하지 못했고, 커쇼의 등장 이후에도 다저스 유망주들 중 아직까지 커쇼를 뒷받쳐 줄 선발투수는 없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유망주들 중 뛰어난 구위를 보여준 투수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부상 등으로 메이저리그에 자리잡지 못했다.

커쇼의 선배 채드 빌링슬리가 부상으로 무너지자 다저스는 커쇼와 함께 마운드를 지킬 투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청부사 조시 베켓(시리즈 MVP 2회)을 영입했고, 지금은 디백스에 가 있는 잭 그레인키를 영입했으며, KBO리그 출신 선수 포스팅 시스템에 도전한 류현진까지 영입했다.

하지만 그레인키는 3년 만에 옵트 아웃을 행사해 다저스를 떠났고, 류현진 역시 어깨 수술로 2년 동안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베켓은 다저스에 온 이후 정작 포스트 시즌에서 한 번도 써 먹지 못한 채 부상으로 쓸쓸히 은퇴했다.

그러나 류현진과 그레인키를 제외한 다른 선발투수 영입에서는 계속해서 쓴 맛을 맛보고 있다. 브랜든 맥카시는 영입하자마자 4경기 만에 팔꿈치에 탈이 나서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고, 스캇 카즈미어 역시 부상으로 제 역할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브렛 앤더슨은 2015년에 1년 잘 던져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퀄리파잉 오퍼를 신청했는데, 앤더슨이 그 오퍼를 수용하자마자 허리 디스크로 100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허공에 날려 버렸다.

커쇼는 올 시즌이 끝나면 옵트 아웃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허리 부상으로 고생하던 투수가 옵트 아웃을 행사했을 때 좋은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찬호가 레인저스와 계약할 수 있었던 당시 배경에는 레인저스의 선발진이 워낙 부실했기 때문에 선수가 필요해서 계약했던 것이었다.

일단 커쇼는 다음 팀 일정인 콜로라도 로키스 원정에 동행하진 않는다. 콜로라도 주 덴버로 이동하는 대신 로스앤젤레스에 남아서 팀 주치의 닐 엘라트라체 박사에게 정밀 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커쇼의 다음 일정은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데, 엘라트라체 박사의 결정에 따라 로스터에 남아 상황을 살펴보는 데이 투 데이(Day to Day) 또는 부상자 명단 등재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허리 때문에 2016년 75일, 2017년 39일 동안 자리를 비웠던 커쇼의 건강 상태가 과연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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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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