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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일 오후 7시37분]

KTX해고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 요구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다.
 KTX해고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 요구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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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사법농단을 향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해당 문건을 공개하지 않고 있고, 관련자 형사 조치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또, 지난 조사결과 발표 당시 재판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인 대법관들은 '재판 거래' 문건에는 침묵하고 있다.

사건의 진화 : 사법부 블랙리스트 → 사법농단 재판거래

법원은 지난해 3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문제로 내부 조사를 시작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이었던 이탄희 판사를 발령한 지 11일 만에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러자 법원 내부에선 행정처가 이 판사가 소속된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를 하지 못하게 지시했음에도 이에 응하지 않자 인사조치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를 꾸렸고, 진상조사위는 한 달 뒤 "보복성 인사조치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이 판사가 '판사 뒷조사 파일'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지난해 11월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출범시켰고, 추가조사위는 내부 문서를 조사했다. 그 결과 판사 인사개입 문건뿐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 법원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을 거래하려고 시도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그러나 관련자들이 비밀번호를 열어주지 않는 등 자세한 확인이 불가능했고, 결국 3차 조사(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로 이어졌다.

3차 조사 결과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개입을 시도한 건 원세훈 전 원장 사건만이 아니었다. KTX 승무원 해고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박근혜 정부의 관심 사건 재판 결과를 사법부 숙원 사업과 맞바꾸려 했다. 선고 시점과 결과를 두고 "국정 운영의 동반자·파트너", "윈윈" 같은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했다.

대법원이 해당 사건 피해자의 간절함을 외면한 채 판결을 흥정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특정 성향을 가진 판사를 주요 보직에서 제외하는 등 법원 내부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사법농단'이었다.

여론 따라 달라지는 법원 입장... 처벌 없는 대책은 무의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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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난 25일 특조단은 관련자들에게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조단은 보고서를 통해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언급한 뒤 "그 밖의 사항은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돼 그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내부 징계면 적절하다는 의미였다.

여론은 법원의 '셀프 면죄부'라며 분노했다. 그러자 특조단 관계자는 28일 취재진과 만나 "단정적으로 형사적 조치가 없다고 한 부분은 우리의 불찰"이라며 "충분한 검토 여지가 있다고 본다"라며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여전히 법원이 직접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하는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의 추가적 조치를 할 수 없다, 겸허하게 열어놓고 비판을 받아들이겠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직접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지자,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법원 내외부 의견을 종합해 형사 조치를 결정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김 대법원장의 태도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동안 법관의 비위가 적발됐을 경우 법원이 검찰에 수사의뢰나 고발조치를 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향후 이번 사건이 재판에 넘겨졌을 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는 법원 스스로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판사들끼리 돌려본다? 국민들은?

이와 함께 법원 내부에서 이번 사안을 대하는 태도 역시 '폐쇄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조단은 내부 문건 410개 중 174개만 공개했다. 그것도 전부 공개가 아닌 주요 내용을 '인용'한 것에 불과했다. 특조단은 '(140505)세월호사건관련적정관할법원및재판부배당 방안', '(141229)민변대응전략', '(150803)VIP보고서' 등 민감한 제목이 달린 나머지 보고서를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공개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한 이마저도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 대표판사들만 해당 문건을 '열람'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법원 내부에선 대표회의에 전부 제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 대표판사인 A판사는 28일 오전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410개 파일 모두를 원문으로 제공받아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측은 1일 대표회의에 문건을 제출받는 방안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할 예정이다.

'내부 돌려보기'가 아닌 국민에게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같은 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대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참여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특조단 조사의 신뢰도와 투명성에 문제 제기가 있는 만큼 모든 문건을 투명하게 공개해 무너진 사법정의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 성명 내던 대법관들, 이번엔 왜 침묵하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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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법관들의 침묵도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2차 조사 당시 "원세훈 재판 과정에 청와대 개입은 없었다"며 단체로 불쾌감을 드러냈던 것과는 다른 모양새다.

지난 1월 23일 대법관 13명은 '원세훈 재판 개입' 의혹이 제기되자 대법원 공보관실을 통해 "사건의 중요성까지 고려해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할 사안으로 분류하고 대법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판결을 선고했다"며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현재 대법관 13명 중 7명만이 원세훈 댓글사건 대법원 판결 심리에 참여했음에도 긴급 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2차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지 하루 만이었다.

그러나 이번 3차 조사 결과 발표 뒤 일주일이 지났지만, 대법관 전원은 침묵하고 있다. 대법관 13명 중 어느 누구도 사법농단 사태에 관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는 31일 성명을 통해 "당시 대법관 7인은 응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오는 8월 2일 퇴임하는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과 11월 1일 퇴임하는 김소영 대법관 등 재임 중인 대법관들이 현 사태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없이 임기를 모두 채우고 퇴직하는 것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대법관 4명의 실명을 거명하며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



태그:#양승태, #대법원, #김명수, #대법원장,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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