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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교실은 언제나 왁자하고 시끌벅적하다. 한글 해독은 물론 그리기, 만들기, 오리기 등등 모든 과정에서 제각기 다른 성장과 발달을 보이는 '반짝이들'이 한 교실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중 '느린 아이'들까지 배려하다보면 똑같은 질문을 한 100번쯤 해야 하루치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 겉표지. 초등 1학년, 어린 지구인들의 왁자한 교실 이야기.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 겉표지. 초등 1학년, 어린 지구인들의 왁자한 교실 이야기.
ⓒ 교육공동체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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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놀라운 일이 생겼다. 와글와글 떠들던 아이들이 조용해진 것이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을 똑바로 보고 있다. 선생님은 너무 좋아서 밤낮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찾고,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을 들고 학교를 찾아간다.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최은경, 교육공동체 벗)라는 제목의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이다.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의 저자 최은경은 현직 교사다. 아동문학 전공자이기도 한 최 교사는 매일 같이 수업일기를 쓴다. 수업 중에 아이들이 하는 말을 책에 연필로 급히 적기도 한다. 시인이 시골 어머니의 입말을 받아 적는 것과 그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 있는 언어는 순간순간의 삶과 일상 속에서 터져 나오는 법이다. 최 교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태어난 지 일곱 해밖에 되지 않는 어린 사람들'과 선생님과의 대화는 이렇듯 원초적이다.

"이야기가 좋아. 글자는 싫어, 절대 먹지 않을 거야."
"글자는 먹는 게 아니야."
"그럼 뭔데?"
"잘 봐. 이렇게 붙잡아서 같이 노는 거야."
"잡는 법 가르쳐 줘. 안 가르쳐 주면 잡아먹어 버릴 거야." - 본문 11쪽

최 교사는 봄부터 무더운 여름까지 아이들에게 글자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 가을이 되자 한 아이는 "이제 눈 감고도 잡을 수 있어!"라고 말한다. 또 한 아이는 자기가 쓴 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일취월장이다. 자음과 모음을 합쳐 낱자와 낱말을 읽히는 시간.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 <개구리>를 읽으며 낱자 만들기를 한다.

개구리

한하운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라
- 본문 23쪽


선생님은 칠판에 시를 적고난 뒤, 한하운 시인이 열일곱 되던 해 나병(한센병)에 걸린 이야기 며, 공부도 포기하고 산에 들어가 있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일본에 가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이야기며, 그러다가 다시 병이 나타나 병을 고치러 소록도까지 걸어갔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은 개구리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때 어릴 적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익혔던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를 떠올린다. 이쯤해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넌지시 묻는다.

"시인은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거죠?"
"엄마한테 가면 안 돼요?"
"그때쯤 시인의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가고 없었어요."
"시인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어요?"
"혼자 가야했어요. 병을 고치기 위해서."
"개구리가 시인을 보고 그기 가, 그기 가 했으니까."
"무슨 뜻이야?"
"그기 가면 괜찮아, 이렇게요."
"하하, 그렇구나. 개구리가 시인한데 힘내라. 괜찮아. 이렇게 말하는 거구나." - 본문 25쪽

한하운 시인이 아이의 말을 들었다면 무덤에서 배꼽을 잡고 웃다가 나병이 낫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아이가 한하운의 시 '개구리'를 따뜻한 응원가로 풀이한 것은 놀랍다. 놀랄 일이 또 있다. 아이들은 자음 'ㄱ'과 'ㄹ'이 '개구리'라는 시 제목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 뒤 자신 있는 얼굴로 소리 치고 개구리 떼처럼 교실을 뛰어 다니는 모습을 최 교사는 웃음 띤 얼굴로 지켜본다. 참으로 행복하고 신명나는 교실 풍경이 아닌가.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에는 많은 옛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루는 '아동 학대 예방'에 대하여 공부하는 날이었다. 최 교사는 학년 선생님들과 아동 학대 예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의논한다.

초등 교육용으로 배부된 안전교육 동영상에는 적나라하고 무서운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친숙한 옛이야기 그림책 <해와 달이 된 오누이>로 수업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제일 재미있어 한 대목은 바로 호랑이에게 도망치려고 꾀를 낸 장면이다. 그 장면을 읽어준 뒤에 아이들에게 묻는다.

"여러분들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걸 만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꾀를 써야죠."
"어떻게?"
"저∼더우니까 밖에 나갔다 올게요, 하고 도망쳐요."
"아니, 배가 아프다고 똥눠야겠다고 해요."
"몰래 방에 들어갔다가 안심 알리며 폭탄을 가지고 호랑이랑 대결해요."
"자기는 자기 자신이 지켜야 해요. 오누이처럼." - 본문 32쪽


이 책 곳곳에서 최 교사의 교육에 대한 깊은 고민도 엿보인다.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이른바 '일등주의'에 대한 우려도 그중 하나다. 아이들은 툭하면 "일등", "백점"이라는 말을 외친다. 숨은 그림과 낱말 찾기 놀이를 하는데도 서로 일등으로 마쳤다고 해서 말싸움이 났다.

모든 순간에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들. 일등만 상품을 주고 백 점을 맞아야 선물을 사 주는 어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염된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최 교사의 고민은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수업 내용으로 결과가 빚어진다.

최 교사는 그림책 <네가 일등이야!> 주인공 멍멍이도 아이들과 꼭 닮았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경기에 나간 멍멍이는 친구와 인사도 안 하고 말도 않고 출발했다. 그리고 일등으로 달리는데 그 앞으로 아기 새 다섯 마리가 지나갔다.

결국 꼬마 멍멍이는 일등을 포기하고 멈춰 서서 아기 새들을 차에 싣고 천천히 달려 꼴찌로 도착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꼬마 멍멍이를 향해 "진짜 일등은 너야"라고 소리치며 폭죽을 터트린다. 최 교사는 그림책을 다 읽어주고 나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꼬마 멍멍이는 어떤 인물인가요?"
"멍멍이는 일등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아기 새를 구해 주고 꼴찌를 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네가 일등이야 했구나."
"일등을 포기했지만 일등이란 칭찬을 받았어요."
"여러분이 멍멍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세요." - 본문 92쪽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이들의 내면에 어떤 일이 생길까? 이야기를 듣기 전과 조금은 다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교육의 힘이 아닐까? 초등 1학년 교실은 특별하다. 일생의 단 한 번인 '초등학생 되기'를 처음으로 해보기 때문이다.

1학년 담임은 아이가 처음 학교에 온 날부터 2학년이 되기까지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계속해서 파악해 나가야 한다. 이때 최 교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반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가?'라는 물음이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다.

최 교사는 초등 국어 교과서 집필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내용들은 최근 2년 동안 도시 일반 초등학교에서 저자가 직접 겪은 생생한 기록들이다. 돌봄에서 교육으로 넘어오는 초등학교 1학년 시기,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모습을 이 책에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경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초등학교에서 애써서 잘 배운 우정과 환대의 정신이 시험 성적이 우선인 상급학교로 진학하면서 사그라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다. 이 책을 초등학교 교사뿐 아니라 중등 교사와 학부모들도 함께 읽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는 이유다.


태그:#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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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