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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음에 따라 현대인들의 관심사는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말과 글로 가지는 능력보다 과학과 기술의 산물로써 얻는 능력이 더욱 이목을 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기대만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위협, 두려움 등의 부정적인 심리 또한 갖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은 선물인가? 위협인가?'와 같은 토론 주제도 최근 인기 있는 주제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산적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고에 기초한 것인데, 가히 1800년대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끔 만든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신속하다는 점은 굳이 인공지능의 획기적인 발전 속도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인간이 수행하는 정형적 업무를 보다 잘 수행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고 있다. 러다이트 운동도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노동 수행을 기계가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사고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인간의 두려움 아니었는가? 결국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노동환경은 반비례적 상관관계를 갖고 있고,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간은 미래에 노동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이른다. 자연스레 '미래에 사라질 직업'이 연일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앞선 '미래에 사라질 직업'을 보고 있으면, 어떠한 기준을 적용하여 미래에 사라질 직업의 결과를 도출하였는지 의문이 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로 하여금 의구심을 갖게 하는 항목이 바로 '판사'이다. 처음 미래에 사라질 직업으로 판사가 순위권에 들었을 때, 내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나의 장래희망이 법조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이를 재고하여 보아도, 판사는 가까운 미래에는 결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논리적 판단과 수리적 판단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논리란, 한 인간이 다른 인간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문학적 소양이다. 다시 말해, 인간만이 터득할 수 있는 창의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한국 형법에서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외규정에서는 형의 감경이나 집행유예도 가능하도록 명시해놓고 있으므로 살인죄에 대한 양형의 폭이 매우 넓은 것이다. 한 판사가 A의 과정을 통해 일어난 살인은 사형으로 벌하고, B의 과정을 통해 일어난 살인은 무기징역으로 엄단하였을 때, 왜 같은 살인이지만 양형이 다른지 피고인과 청중, 나아가 모든 불특정 다수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인공지능은 법대로 판단할 테니 더욱 정확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지만, 인공지능이 '법대로' 판단하려면 아마 형법에서 다음과 같이 살인죄를 명시해야 할 것이다. "살인죄 - 살인의 방법, 경위, 과정 등은 상관하지 아니하고 누구든 다른 사람을 살해할 시 무기징역에 처한다."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판사는 범죄자의 살인 동기, 경위, 과정, 환경 등 모든 것을 고려하여 논리적 양형을 하는 반면에, 인공지능은 그럴 수 없다. 인공지능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 범위 내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한 판단이 가능할지 몰라도, 범죄가 날마다 지능적으로 변화하는 근래에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초로 한 '수리적 판단'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으로 기인한 범죄를 이해할 수 없다. 대부분의 범죄는 한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아니라면, 자본주의에서의 소유욕이 원인일 것이다. 판사는 피고인에게 판결을 내릴 때, 피고인에게 유리한 요소와 불리한 요소를 구분 짓고 최대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난해 일어난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면, 상황은 다음과 같다. 남편은 항상 아내를 구박하고, 심하게는 폭행하기도 한다. 아내는 연일 남편의 폭행과 욕설에 시달려야 했으며, 자살기도 또한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남편의 폭행 수준이 현저히 심해 아내는 부엌에서 과도를 꺼내들었고, 몸싸움 도중 아내가 든 과도에 남편이 찔려 사망하였다. 아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기소되었고, 추후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 상황에서, 아내에게 유리한 점은 남편의 폭행과 욕설 수준이 일상에서 지나치게 심해 아내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점, 아내가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서 일어난 범죄라는 점 등이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과도에 찔려 사망한 점, 아무리 흥분 상태였어도 과도로 인해 남편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 등이 아내에게 불리한 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과연 이렇게 인간의 감정에서 시작하고 감정에서 끝난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또한, 이런 식으로 인공지능의 판결을 인간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법에 감정적인 판단은 있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범죄 행위가 일어나게 된 감정적 동기와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이해관계에 대한 판결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은 결과에 대해서만 결론지을 수 있을 뿐, 선후관계와 동기 등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이타적 행위라는 것이다. 남편에게 일상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욕설을 들었던 아내가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과도를 꺼내들어 남편이 사망에 이르게 된 사례와 단 한 순간의 감정으로 꺼내든 과도에 남편이 사망에 이르게 된 사례가 동일한 죄질의 범죄라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범죄 행위에 대한 합리적 판결을 내리려면, ①인간이 삶에서 얻는 경험칙을 충분히 가져야 하고, ②인간의 범죄행위가 어떠한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고, 설령 이것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하며, ③새롭게 일어난 범죄에 대하여 과거의 판례는 보조적 수단만으로 참고하고 소급 적용해서는 안 된다. 이어서, ④중대한 법적 책임만을 물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닌 누군가의 구속영장심사, 공탁이나 벌금의 범위 등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양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학술적 논증이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⑤피고인과 검사 측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쟁점에 대해 논리적 절차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가까운 미래에 변혁적인 발전을 거친다고 하여도, 과연 인간의 신체적·재산적 자유를 구속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또한, 설령 인공지능이 이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인간이 인공지능의 판결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도 의심이 든다. 서론과 같이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공지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칼럼을 쓰며 호모사피엔스의 지성과 창의성, 그리고 논증적 사고법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을 느낀다.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는 인간의 무궁한 호기심과 상상력, 이를 뒷받침하는 창의력과 지성이 만들어낸 것 아니겠는가? 논리를 만드는 것 또한 지성이고, 창의력이다. 나는 판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나아가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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