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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름 대소동'이라는 코너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상황에 맞게 이름을 잘 지어냈는지 전개되는 스토리를 보다 보면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중 한 장면을 소개하면 이렇다. 배경은 아파트 단지이고, 고등학생 2명과 아파트 경비가 등장한다.

"담배 좀 끊어. 너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나 겁 하나도 않나. 나 우리학교 짱 '몰라'야."
"나두 겁 않나. 난 '몰라'의 빵셔틀(힘이 약한 학생이 힘이 센 학생의 강압에 못 이겨 빵이나 물건을 대신 사서 가져다주는 일) '지금' 이니까."
"'지금' 담배 사와."
"알았어 '몰라'."
"빨리 갔다 와."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의 이름이 '몰라'와 '지금'이다. 이때 아파트 경비원이 나타나 한마디 한다.

"이것들 학생같은데, 지난번 단지에 담배꽁초도 니들이지?"
"아녜요."
"일루와. 일루와. 안 되겠어. 딱 니들 이름 적어서 학교에 보내야겠어. 너부터 이름 말해."
"몰라."
"이 자식이 어디서 반말이야? 이름?"
"몰라요."
"몰라요? 이름을 모른다고?"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럼 이름? 빨리 이름을 말해."
"몰라요."
"아까는 안다며? 이름?"
"몰라요."
"진짜 몰라?"
"네 맞아요."
"뭐가 맞아?"
"아까 말한 거요."
"뭐라 말했는데?"
"몰라요."

"너 가만히 있어. 이따가 물어 볼겨. 너 이름 말해."
"지금요."
"어 말해."
"지금요."
"말하라고."
"지금요."
"지금 말하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뭐라고 말했는데?"
"지금요."
"아~ 말을 해야 적을 거 아냐?"
"아저씨가 말을 하라고 할 때 얘기할게요."
"지금."
"예."
"지금."
"예."
"이름."
"지금."
"너 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가 뭐라고 불러?"
"지금 들어 왔니?"
"에이~ 그럼 담배 핀 사람 말하면 용서해 줄게. 누구야?"
"너 말하지 마라."
"솔직히 말하면 보내주신데잖아."
"너 얘기하지마."
"담배 피운 사람은요, 몰라예요."

이런 식의 말장난이지만 꽤 웃음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내 이름 '김동이'. 포털사이트에 내 이름자를 검색하면 백과사전 인물정보에 동명이인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 나온다.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에 국가 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단다.

성은 다르지만 이효석의 <메밀꽃무렵>에도 동이는 등장한다. 왼손잡이라는 점도 나와 같다. 하여 대학 때 신입생 환영회나 어색한 자리에서 자기소개하는 시간이 있으면 난 메밀꽃무렵에 나오는 동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 쉽게 이름이 새겨지나 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사람들은 나를 쉽게 기억해냈다.

물동이, 술동이, 동이족 등 이름과 얽힌 별명에 상처 입은 동심

나에게도 자라면서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내 별명은 자라면서 줄곧 또래 친구나 비슷한 나이대의 형들에게 '물동이'였다. 아버지 친구들한테는 늘 술자리 옆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술동이'였다. 그리고 커서 한자를 알 무렵 친구들은 소위 오랑캐를 일컫는 '동이족'이라 불렀다.

나한테는 별명 모두가 부정적이고, 늘 놀림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흔치 않은 이름이지만 앞에 접두사를 붙여 별명으로 놀려 먹기에는 이처럼 쉬운 이름이 없어 보였다.

내 이름을 지어준 고향마을 의제 아저씨 댁 자랑스러운 내 이름 '김동이'를 작명해 준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의 내 시골집 이웃이었던 의제 아저씨 댁 모습. 세종시 편입 이후 마을에서 이사간 뒤 모습으로 추억의 사진이 돼 버렸다. 지금은 흔적 조차 남아있지 않다.
▲ 내 이름을 지어준 고향마을 의제 아저씨 댁 자랑스러운 내 이름 '김동이'를 작명해 준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의 내 시골집 이웃이었던 의제 아저씨 댁 모습. 세종시 편입 이후 마을에서 이사간 뒤 모습으로 추억의 사진이 돼 버렸다. 지금은 흔적 조차 남아있지 않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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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철부지 없던 어느 날 아버지께 물었다.

"아부지! 내 이름 누가 지었어유?"
"왜?"
"자꾸 놀려서유."
"니 이름이 얼마나 좋은 이름인데 누가 놀려?"
"그게 아니고 별명을 이름 따라서 술동이, 물동이라고 하잖유."
"니 이름은 아랫집 (김의제) 아저씨가 지었는데 뜻이 좋아. 이름도 이쁘잖여."
"뜻? 무슨 뜻인디유?"
"동녘동(東)에 햇무리이(珥). 동쪽을 밝게 비춘다는 뜻이여."
"뜻은 이제 알겠는디 친구들이 그걸 알아먹어야 말이쥬."
"또 놀리면 뜻을 잘 설명해줘. 그래도 놀리면 아부지한테 델코 와 혼줄을 내줄텐께."
"네."

그렇게 별명으로 인해 속상했던 어린 마음은 풀리는 듯 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준 사건(?)이 일어난다. 아버지 친구 중에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분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로 전근을 왔다. 아버지와는 어릴 적부터 죽마고우처럼 술을 즐겨 드시던 선생님은 술친구인 아버지를 찾아 집에 자주 들러 술잔을 기울였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꼭 한마디 했다.

"술동이 어디 갔어? 일루 와봐. 용돈 줄게."
"에이~ 왜 그랴. 애들 버릇 나빠지게."
"아녀. 얼른 와 봐. 그리고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돼. 맥주 조금 마셔볼랴? 술동이가 술 못 마시면 안 되지."

용돈 때문에 선생님한테 다가가려던 발길이 멈췄다.

"저 술동이 아닌디유. 저 숙제해야 돼유."

또 삐졌다. 동심에 또 하나의 상처가 생겼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은 이름 때문에 놀림 아닌 놀림을 받으며 흘러갔다. 나중에 한문을 배운 뒤에 알고 보니 이율곡 선생의 호인 이이(李珥)에도 같은 이(珥)가 쓰이는 걸 보고는 흔히 쓰는 한문은 아니지만 이름깨나 날렸던 선인들이 쓰던 이(珥)자가 내 이름자에 들어 있다는 자부심까지 들었다.

드라마 <동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

내 이름과 같은 드라마 동이 한자는 다르지만 드라마 동이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들에게 연락이 닿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드라마였다.
▲ 내 이름과 같은 드라마 동이 한자는 다르지만 드라마 동이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들에게 연락이 닿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드라마였다.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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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커서 또 하나의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 몇 해 전 사극의 장인인 이병훈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동이>를 M본부에서 방영한 적이 있었다.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가 어릴 적 오작인인 아버지와 함께 천민촌에 살다가 궁에 무수리로 들어가 숙종의 눈에 들어 후궁에까지 오르면서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된 과정을 그린 사극이었다. 숙빈 최씨는 특히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올린 인물로, 드라마 '동이'는 숙빈 최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사극이었다.

사극 폐인이었던 나 또한 이 드라마를 놓칠 수 없었다. 사극 마니아를 떠나 이 드라마는 마치 나를 위한 드라마처럼 다가왔다. 1회부터 꼬박꼬박 챙겨 본방 사수했다. 그런데 자꾸 드라마에 빠져들수록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극중 숙종이었던 배우 지진희씨가 '동이야! 동이야!'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네'라든가 어떤 때는 '왜'라든가 자꾸 대답을 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실소도 나왔다. 혼자서 드라마를 보고 대화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창 드라마 <동이>의 주가가 오를 무렵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의 늦은 밤. 한참을 잊고 살았던 지인한테 반가운 전화가 걸려 왔다.

"드라마 '동이' 보다가 동이 삼촌 생각나서 안부나 물을 겸 전화했어."
"반갑네요. 드라마가 전화 통화까지 하게 해주네요."

또 지인의 소개로 만난 한 인사는 명함을 건네자 드라마 <동이>의 영향인 듯 "이름만 보면 여자인 줄 알겠다"고 농담 섞인 말로 딱딱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지금은 스스로 자랑스러운 이름 '동이'. 어린 시절에는 속상했지만 되돌아보면 그 시절의 소중한 추억도 남기게 한 소중한 나의 이름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내 이름을 지어준 아랫집 의제 아저씨께 이 기회를 빌려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고, 아이들의 놀림 속에서도 이름의 뜻을 강조하며 '좋은 이름'이라고 응원해 준 아버지께도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름 때문에 생긴 일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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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