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 풍경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 풍경
ⓒ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관련사진보기


봄비가 내렸다. '호우시절'(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을 바랐다면 모를까, 장날에 비라니, 난관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봄꽃 싱그러움 가득 담은 포스터와 딱 맞아떨어지진 않으나, 처음 '은평 꽃 피는 장날'을 멈출 순 없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에도 분주한 몸짓이 한창이다. 처음이니까, 장날이니까, 예정된 만남이니까. 도시농부, 사회적경제인, 지역활동가들이 북적북적 장날을 준비하고 손님 맞을 채비를 갖추고 있다. 자, 기대하시라. 도시농업과 사회적경제가 만나고 교류한다. 봄비가 대수랴.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두려운 게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은평 꽃 피는 장날

지난 12일, 롯데몰 은평점 광장. 봄비를 뚫고 은평과 인근 지역에서 재배한 농작물과 건강한 먹거리, 수공예품과 문화가 한데 어우러졌다. 봄비 예보가 이날만큼은 틀리길 바랐지만 기대는 허물어졌다. 그렇다고 두 손 놓지도 않았고, 좌절하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함께 장날을 만들어가기 위해 힘을 모아온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좋아서 가는 시장, 좋아서 하는 시장'을 주제로 은평에 도시형 장터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겨울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논의하고 힘을 모았다. 은평은 서울에서도 도시농업이 비교적 활발한 지역이다. 북한산을 포함해 녹지 비율이 높고 도시농업체험원, 다양한 주말농장과 개인농장이 자리 잡고 있다. 도시농업 관련 민간 네트워크도 10년 이상 역사를 쌓아왔다. 특히 은평 도시농업은 사회적경제와도 꾸준히 교류하면서 신뢰를 쌓아왔다. 건강과 맛뿐 아니라 지역에 이로운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적경제 기업과 단체 등이 지역사회에 사회적 가치를 불어넣고 있다.

이런 마당에 이들이 작당을 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이자 좋은 제품을 판매하는 창구로서 도시형 장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열린 좌담회와 지속적인 논의를 거쳐 '꽃 피는 장날'이 탄생했다. 도시농부, 지역활동가, 사회적경제인이 만나고 농산물 직거래를 통해 지역 도시농업의 가치를 알리고 도시농업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도시형 장터를 5월을 시작으로 11월까지 매달 열기로 한 것.

윤호창 은평구 사회적경제허브센터 사무국장은 "작년 겨울부터 도시농업을 중심으로 한 건강한 장터를 고민했고 여러 차례 모임과 회의를 거쳐 사회적경제와 도시농업이 만나는 '은평 꽃 피는 장날'이 열리게 됐다"며 "매달 대표 작물을 꼽아 꽃 피는 장날 포스터에 그려지는데 5월은 무꽃이 선정됐다"고 말했다. 운영진들이 모여 장터 이름을 고민하는 와중에 농사 경험이 없는 스탭이 '무나 땅콩에도 꽃이 피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그것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꽃 피는 장날'로 장터 이름을 정했다. 꽃은 그 달의 대표 작물을 수채화로 그려 포스터에 넣고 있고, 5월 첫 장날의 꽃은 자연스레 무꽃이 됐다.

은평  '꽃 피는 장날' 5월 포스터
 은평 '꽃 피는 장날' 5월 포스터
ⓒ 은평사회적경제허브센터

관련사진보기


비처럼 음악처럼

통계를 보면, 은평구는 떠나고 싶지 않은 동네다. 도시농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은평구 주택보급률은 107%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구 수 대비 가장 많은 주택을 공급한다. 또 자치구를 벗어나지 않고 이사한 비율을 뜻하는 '자치구별 구내 인구 이동률'을 보면 그 비율이 6.9%로 25개 자치구 가운데 강동구(7.0%) 다음으로 높다.

박치득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장은 "로컬푸드 기반의 안전한 먹거리와 문화가 있는 농부시장이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농부시장 마르쉐@를 통해 확인했다"며 "소농 혹은 아는 사람들의 단순한 네트워크가 아닌 도시에서 장터를 열면 그것이 문화로 만들 수 있고 무엇보다 은평은 도시농업이 비교적 활발하고 사회적경제도 활성화돼 있어 충분한 접점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런 은평에서 '꽃 피는 장날'은 어쩌면 살짝 늦은 감도 있다. 장터를 열자는 아이디어가 나오자마자 탄력을 받아 장터가 추진되고 열린 것은 그만큼 이를 필요로 했다는 방증이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도 5월 첫 장터에 45개 팀이 참가했다. 농부팀, 요리팀, 수공예팀 등 다채로운 품목을 다루는 팀이 함께였다. 특히 도시형 장터답게 농부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은평뿐 아니라 인근 지역이나 은평과 인연을 가진 도시농부들이 장터를 빛내기 위해 모였다.

날씨는 화창하지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화창했다. 농부이자 상인, 구매자, 봉사자 등 너나할 것 없이 모인 이웃사촌들이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 등 복합문화장터를 만든 덕분이다. 은평의 자랑거리인 물푸레 합창단도 가세하고 채소 소믈리에 이야기도 곁들여졌다. 이날 단순한 농작물, 먹거리 중심의 장터가 아닌 은평의 새로운 문화를 불러오기 위한 장터의 탄생을 알렸다.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 풍경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 풍경
ⓒ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관련사진보기


장터는 입구부터 텃밭에서 가꾼 싱싱하고 파릇한 제철 채소로 시선을 끌었다. 이어 후각과 시각을 강탈(?)한 것은 연잎밥이었다. 산속의 찻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중다원'이 찜 기계에서 갓 쪄낸 연잎밥은 하얗게 피어오른 김과 함께 식욕을 부채질했다. 연잎밥에 어우러진 전통차와 반찬도 가세했다. 하얀 떡가래를 떡꼬치로 굽고 조청을 얹은 맛은 봄비가 지닌 차가움을 씻어 내릴 만큼 따스했다.

봄비 때문인지 따스한 국물이 그리운 찰나, 베트남 쌀국수가 솔솔 향을 뿜고 있었다. 서울혁신파크에 있는 사회적기업 마을무지개가 봄비에 어울리는 메뉴를 선보였다. 따스한 밥이 그리운 사람에겐 베트남 볶음밥이 마련됐다. 그리고 김치전도 딱이다. 봄비에 막걸리만 있었으면 완벽했을 터이다. 꽃 피는 장날이라는 이름에 맞게 꽃전도 등장했다. 집밥활동가 학교에서 즉석에서 꽃전을 부쳤다. 꽃전 향기가 빗속을 뚫고 장터를 은은하게 만들었다. 한살림에서는 유정란과 젤리를 내놓고 손님을 유혹했다.

먹거리가 아닌데도 시각과 후각을 흔든 것이 있었다. 곱고 아름다운 양초(캔들)와 디퓨저(향기를 퍼지게 하는 인테리어 소품), 요즘 뜨고 있다는 '프리저브드 플라워'(생화에 착색제와 보존액을 입혀 건조하여 1∼5년간 모습이 유지되는 가공화) 등이 5월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존 공산품과 다른 수공예품도 눈에 띄었다. 무화학·무방부제로 만든 레고 비누, 계피와 레몬 정제수와 글리세린 등 천연 재료로 만든 천연모기약, 한 땀 한 땀 손뜨개질로 만든 모자와 아기 신발, 인형, 수세미, 카네이션 바구니 등은 선물용으로 제격이었다.

도시 생태계에서 빠져서는 안 될 도시양봉의 산물도 엿볼 수 있었다. 베스트가든의 노란 꿀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꿀 한 모금 들자니 도시양봉가가 한 마디 던진다. "지금 먹는 꿀의 양이 꿀벌 한 마리가 평생 모으는 양이다." 꿀 한 모금이 어떤 생명체에겐 평생의 노동이라니, 세상 모든 생명체의 노동을 허투루 볼 수 없는 이유였다. 힘들지 않은 농사는 없으며 결코 도시농업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봄비가 음악처럼 흐르고 있었다.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 풍경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 풍경
ⓒ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관련사진보기


은평이 만드는 사회적 가치

장터는 지역이나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드러냈다. 우선, 일회용이 없었다. 대신 접시, 컵 등을 대여했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환경보호를 실천하자는 장터 참석자들의 태도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장터 손님들이 사용한 식기 등은 자원봉사자와 현장관리인이 세척과 정리를 맡았다. 플라스틱 의자를 뒤집어 비닐을 씌워 쓰레기통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돋보였다.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이 섰던 풍경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이 섰던 풍경
ⓒ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관련사진보기


"지역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시장을 지향하길 바란다"는 농부시장 '마르쉐@' 김송희 코디네이터의 조언에 맞춰 이날 장터는 지역과 인간관계를 고려한 시장으로 꾸며졌다. 은평의 대표 마을합창단인 물푸레합창단이 등장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 합창단은 은평뉴타운에 자리한 물푸레 카페를 기점으로 남녀노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웃공동체다.

역시 장터에 노래가 빠질 순 없는 법.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물푸레합창단은 대중가요를 비롯해 타령, 합창곡 등 준비한 다양한 레퍼토리를 율동과 함께 선보였다. 장터에 있는 이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빗속에서 이뤄진 공연이었지만 장날의 흥을 돋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물푸레합창단 공연에 이어 조지형 채소 소믈리에의 간략한 토크쇼도 펼쳐졌다. 채소 소믈리에는 채소와 과일에 관한 정보와 지식, 가치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즉 채소·과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물론 요리법이나 섭취·손질법 등을 알려주는 직업군이다. 조 소믈리에는 이날 장터에 나온 농작물들 상태가 무척 좋다며 이를 즉석에서 요리하고 맛보게 했다. 두부를 소로 넣은 양파전과 샐러드가 입 안 가득 꽃이 피게끔 만들었다. 마켓이나 큰 유통처가 아닌 소농들이 재배한 작물을 직접 얼굴을 마주대하고 거래할 수 있는 도시 농부시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 풍경
 5월 ‘은평 꽃 피는 장날’ 풍경
ⓒ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관련사진보기


은평 꽃 피는 장날이 도시농업 소믈리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것을 가릴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고 가치를 전파하기 때문이다. 왜 도시농업이 필요하며 얼굴을 마주한 거래가 어떤 시너지를 낳을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자연스레 공동체를 엮고 묶어주는 역할도 한다.

이날 행사가 끝난 뒤 참여단체들이 둘러 모여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참여자들이 나눈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비가 와서 망설이다가 왔는데, 판매가 많고 적고를 떠나 이렇게 만나서 무척 반갑고 좋았다."
"재미로 와서 재밌게 즐기고 돌아간다. 6월은 더 재밌지 않을까 기대한다."
"양평에서 함께 농사짓는 분들과 어설프게 준비해서 왔는데 다음 달에도 꼭 함께하고 싶다."

소농들은 팔고 남은 상품들을 서로 사주고 마음을 나눴다. 장터의 목적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힘을 모으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은평 꽃 피는 장날은 도시농업과 사회적경제를 비롯해 민관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 센터장은 "다양한 주체들이 한데 힘을 모았고 지향가치나 방식이 모범적이었다는 측면에서 이제 첫 시작이었지만 뿌듯함을 느낀다"며 "우리 꽃 피는 장날이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져서 참여한 소농이 돈도 벌어가고 사람이 북적북적 모이는 장터로 계속 잘 해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시농업과 사회적경제가 만나 직거래 장터를 열고 이 장터가 도시농업 활동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우리동네텃밭협동조합 문명희 이사장의 기대처럼 서울 곳곳에 있는 지역 장터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도시농부와 음식시민이 선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6월에도 은평 꽃피는 장날이 찾아온다. 6월 4일까지 출점 업체(은평 및 인근에서 활동하는 개인, 주민/사회적경제 기업(은평구 소재지 우선)를 모집하며 6월 9일 롯데몰 은평점 광장(3호선 구파발역 3번 출구)에서 열린다. 6월에는 포스터에 어떤 제철 농작물의 꽃이 필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울특별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서울 사회적경제의 다양한 활동과 우수 사례를 발굴하기 위해 자치구 사회적경제 생태계조성사업단 및 통합지원센터와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태그:#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은평, #사회적경제, #꽃피는장날
댓글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사회적경제 정책 통합 및 지속가능한 기반 조성을 위해 2013년 1월 설립된 민관 거버넌스 기관입니다. 사회적경제 부문?업종?지원조직들의 네트워크를 촉진하고 서울시와 자치구의 통합적 정책 환경 조성 및 자원 발굴?연계, 사회투자, 공공구매, 윤리적 소비문화 확산을 통해 기업과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촉진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