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

영화 <디트로이트>의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개척 시대 이후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정신을 내세운 만큼 차별의 역사 또한 뿌리 깊기도 하다. 인디언, 흑인 노예에 이어 인종 차별이 전면에 드러났고 이 흐름을 연구하는 게 하나의 학문이 될 정도니 말이다.

그만큼 인종 문제, 인종 차별을 다뤄온 영화들도 많았다. 대부분 거시적 차원에서 차별의 부당함과 그 속에서 피어난 개인의 고귀함 내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해왔다. 오는 31일 개봉 예정인 <디트로이트> 역시 큰 틀에선 그렇게 분류할 수 있다.

갈등의 축

<디트로이트> 속 배경인 1967년 미국 사회는 인종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뤄져 온 반작용으로 나타난 흑인폭동으로 인물들의 비극성이 그 어떤 시기보다 강조되기 쉬운 때였다. 영화엔 여러 갈래의 흑인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각자 겪는 비극 역시 단순히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에서 비롯된 차별에 속하는 것이긴 하다.

가장 전면에 드러나는 캐릭터는 실존하는 팀이자 재기발랄한 흑인들로 구성된 보컬 그룹 드라마틱스다. 그 멤버 중 하나인 래리(알지 스미스)와 그의 친구 프레드(제이콥 레티모어)는 당시 전설의 레이블이던 모타운과의 계약을 꿈꾸며 공연을 준비하던 중 폭동으로 인해 무대에 서지 못하고 어떤 모텔로 숨어들게 된다. 그곳에서 육상용 딱총을 가지고 놀던 또 다른 흑인 무리와 백인 여성 둘을 만나게 되고, 총소리를 듣고 수사를 나온 경찰들과 엮이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반복되는 총소리를 저격수의 것으로 간주한 경찰들은 내면에 극도의 분노가 가득 찬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자신들의 무리한 수사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모텔 투숙객들을 때리거나 심지어 일부 죽이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이 육체적 심리적 상처를 입는 모습은 영락없이 당시 미국사회에 실재했던 실상이기도 하다.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또 다른 축에는 역시 흑인이지만 경비대 일과 공장 일로 연명하는 디스무케스(존 보예가)가 있다. 동족들 사이에선 백인에게 붙었다며 배신자 취급을 받지만 동시에 백인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인 무시를 당하는 인물. 그 안에서 그는 나름의 합리성과 이성을 부여잡으며 생활한다.

<디트로이트>가 빼어난 지점은 이런 갈등을 단순히 전면에 제시하기만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경찰들에게 수난을 당한 뒤 이후 재판과정에서도 별로 나아지지 않던 흑인 인권 문제를 제시하며 관객들의 분노와 공감만을 자아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그 수상했던 시절을 거쳐 온 각 개인들이 어떤 심리적 변화를 겪었고, 지금 이 시대에 어떤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지를 덤덤하게 보이려 한다.

감독의 주특기

이 때문에 특정 캐릭터나 이야기에 감정이입하려 했던 관객 입장에선 다소 복잡하게 다가올 여지가 있다. 마치 분노의 대상이 분명한데도 그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고 꾹꾹 눌러 가슴에 담는 식이다. 영화를 본 뒤 그 압력이 어떤 묵직함으로 남을 만하다.

연출을 맡은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특기라고 볼 수 있다. 전쟁 영화 <허트 로커>와 미국사회공공의 적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소재로 한 <제로 다크 서티>를 통해 이미 사회적 분노에 대해 성찰한 바 있는 그다. 이 작품들에서도 감독은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실제 사건을 재구성하고 캐릭터를 단순화시키는 게 아닌 복잡다단한 면을 있는 그대로 보이려 했다.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복잡다단함.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렇지 않나. 한두 가지의 이유로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사람의 마음 또한 그렇게 쉽게 재단할 수 없는 때가 많다. 영화 <디트로이트>는 그 점에 주목했다. 모진 고통을 이겨내고도 끝내 유명 가수와 교회 성가대의 갈림길에서 고뇌한 래리나, 엉뚱한 방향에서 누명 아닌 누명을 써야했던 디스케무스의 미묘한 표정을 묘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관객들에겐 일종의 낯섦을 선사하는 순간이다. 단순히 당시 정부와 공권력, 그리고 일부 몰지각했던 백인들을 질타하고 끝날 줄 알았던 영화가 각 등장인물들의 입체적 변화를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곱씹고 곱씹으며 천천히 소화를 시키다 보면 이야기가 아닌 영화 속 캐릭터가 마음에 남아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 줄 평 :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묵직한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증명하다 
평점 : ★★★★(4/5)    

영화 <디트로이트> 관련 정보

연출 : 캐서린 비글로우
출연 : 존 보예가, 안소니 마키, 윌 폴터 등
수입 및 배급 : 그린나래미디어
러닝타임 : 143분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8년 5월 31일


디트로이트 인종차별 흑인 미국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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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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