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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은 나에게 매우 혹독한 해였다. 개인적으로 갱년기를 거쳐 폐경 진단을 받아 멘붕에 빠져 몹시 허우적거린 시간이 길었다. 내 몸의 변화에 대해 무심했던 터라 밤마다 온 몸이 쑤시고 저리고 아픈 데도 그저 나이 드느라 아픈가 보다 하며 아무렇지않게 넘겼더랬다.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지는 건 마음에 걸렸지만, 그저 여성 호르몬에 좋다는 석류나 칡즙을 먹는 것이 내 노력의 전부였다. 그것도 생각날 때만.

그러다 대표적인 갱년기 증상인 열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열이 올라올 때마다 온 몸의 털이 다 솟는 것 같았다. 동시에 오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불쾌감이 온 몸을 유린하듯 훑고 지나가면 몸서리가 저절로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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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몸의 변화보다 더 심각한 건 마음이었다. 마음에 물기와 열기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느낌. 차갑고 싸늘하고 외롭고 무기력했다. 평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의 대명사라고 자부했건만, 어느새 나는 손 하나 까딱하기조차 싫은 무기력 병자가 되어 있었다. 다 때려치우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태풍처럼 마음을 휘저었다.

그러나 내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40대 싱글에게 도피는 사치일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책임지고 있던 모임에서 문제가 생겨버렸다. 무기력과 들쑥날쑥한 감정 사이에서 그로키 상태가 되어 있는데,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나에게 과도한 요구를 해댔다.

그러는 사이, 닥친 완경. 어느 순간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죽을 것 같은 느낌에 숨이 턱 막혀왔다. 공황장애였다. 낯선 내 모습에 짜증이 났고, 모든 게 억울하기만 했다. 도움을 요청할 이도 마땅치 않았다. 주변에 완경을 겪은 이도 별로 없었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 보아도 교과서 같은 답을 말할 뿐이었다.

"갱년기 오면 원래 그래."

남들 다 겪는 것이니 아무렇지 않게 넘기라는 식의 말은 말한 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를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았다. 유난 떠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의연한 척 해야 할 것만 같고, 쿨하게 넘기지 않으면 의지박약한 사람 취급 받는 것 같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우울은 깊어만 갔다.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글쓰기였다.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고 있던 터라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에 내 스스로 다가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솔직하게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꽃피는 시절을 지나 헐벗은 겨울나무가 된 것 같다는 서러움 대잔치의 글이었다. 글을 인터넷 카페에 올리자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답글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화양연화'라는 닉네임을 가진 학인의 답글이 눈에 띄었다. 

"이 글이 내 글인지 님 글인지 모를 만큼 몰입해서 읽었어요. 존재의 본질이 더 잘 보이는 겨울나무의 미를 만방에 뿌려 보아요. 앙상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겨울 자작나무의 위엄처럼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갱년기와 완경을 지나며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던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의 말이었다.

"방송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말이 내용(콘텐츠)보다는 그 아래를 흐르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상대가 전하는 그 감정을 내가 오롯이 느낀다면 말의 내용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이런 순간을 기다리며 늘 카메라 앞에 선다. 누군가의 삶으로 들어가는 경험.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하나의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을 '공감'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순간엔 오직 '그 사람과 나'만이 존재한다고 느끼며, 우리 사이엔 감정의 강이 서로를 연결하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 실제로 이렇게 방송을 하고 나면, 출연자를 그냥 보낼 순 없었다. 그래서 방송에서 느낀 감정을 붙들고 그를 배웅 나간다. 아쉬움과 여운은 한 순간 지워지는 것이 아니므로, 출연자도 마찬가지 같다. 우리는 어느덧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눈 친구가 되어 있다. 이렇게 나는 사람을 만났고, 친구를 만들었다."


정용실 아나운서가 <공감의 언어>라는 책에 쓴 글이다. 말을 직업으로 삼는 아나운서로서 그녀는 무엇보다 '공감'을 강조한다. 진정한 공감과 소통이 우리가 살기 위해 붙잡는 따스한 손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의 말에 대공감.

<공감의 언어> : 상처받지 않고 외롭지 않게, 아나운서 정용실의 유연한 대화생활
 <공감의 언어> : 상처받지 않고 외롭지 않게, 아나운서 정용실의 유연한 대화생활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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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라도 더 해야 존재감이 사는 방송국에서 그녀는 소통을 방해하는 '에고'를 없애기 위해 말을 줄였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내게 있어서 화양연화의 답글은 가장 따뜻한 손이었다.

내 글을 본 글쓰기 선생님이 다른 여성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오마이뉴스>에 글을 기고해 보라고 권해주셨다. 용기를 내서 닉네임으로 글을 보냈고, 그 글에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결혼을 일찍 했다면 여자 나이 48세면 손주도 보니 할머니도 되는 나이. 보통 인물이 좀 있거나, 학벌이 좋거나 또는 종교에 빠진 경우 결혼 못하는 여자가 많다. 혼기를 놓치면 중매도 재처 자리가 주로 나온다. 여자에게 가장 큰 명예는 어머니 이상 없다. 50대 후반 여성이 달맞이유를 먹고 생리를 다시 했다고 들었다. 열심히 노력해 내년 말 쯤엔 어머니가 된 기쁜 글을 올려주길..."

"일반적이고 평범한 정신세계의 여성들은 가정을 꾸리고 살아갑니다. 아이 낳는 게 유세냐고 삐딱한 자기합리화를 하겠지만 애 낳는 건 유세할 만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개인적인 인생에서 홀로 잘 먹고 잘산다고 과연 나중에 공허와 허탈감은 뭐로 채울 수 있을까요?"

"그러게 빨리 결혼해서 애를 낳지 그랬어요? 결혼 안하는 여자들 보면 정말 대책이 없어 보여요."

어떤 이는 내가 성적으로 문란하게 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일찍 폐경되었다는 근거 없는 인신공격성 악플을 달기도 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전혀 상처받지는 않았다. 그저 여성의 완경(특히 비혼 여성)에 대해 보이는 사람들의 거친 시선에 놀라기는 했다.

자기중심적인 해석과 판단, 원하지 않았는데도 쏟아내는 조언, 멋대로의 결론. 완경 때문에 겪는 아픔과 어려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이토록 어려울까 싶었다. 이 세상의 반은 여성이고, 그 여성들 대부분이 겪는 어려움인데 말이다. 완경 이후의 삶을 겨울 자작나무에 비유해준 친구의 말이 더욱 내 마음에서 반짝이는 이유다.

"'공감'은 '공명'하는 것이다. 함께 울리는 것이다. 같은 톤의 소리를 내는 것이다. 상처는 상처로, 아픔은 아픔으로, 나약함은 나약함으로 말이다. 이는 상처를 얘기하는데 치유를 성급하게 꺼내들거나, 아픔을 얘기하는데 인내를 떠올리거나, 나약한 한 인간으로 만나고자 하는데 자신은 더 나은 인간이라고 여기는 교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닐까. 이것이 진정 같은 높이, 같은 위치에서 소리 내는 게 아니겠는가." - <공감의 언어>


호르몬제 치료를 받으면서 다행히 나는 예전의 컨디션을 찾았다. 정기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면서 몸도 많이 좋아졌고, 마음도 촉촉해졌다. 다시 시작된 생리가 몹시 반갑다. 물론 다시 완경의 시간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분명 지난번과는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아주 좋은 예방주사를 맞은 까닭이다. 난 혹독한 시간을 거치며 따뜻한 말, 지혜의 말을 얻었다. 그리고 "어느덧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친구도 생겼다.

그녀의 온기와 생명 가득한 말이 나를 살렸다. 덕분에 다음에 또 겪게 될 때에는 조금은 씩씩하게 지나갈 수 있을 거라는 용기도 얻었다. 비록 화려한 꽃과 풍성한 잎을 자랑하던 시절은 지나갔어도 겨울의 자작나무 같은 위엄과 우아한 매력을 가진 여성이 되고 싶다는 희망도 생겼다.

무엇보다 앞으로 비슷한 아픔과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도 진정으로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보다 '공감의 언어'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그래서 난 이 세상에 공감의 언어가 공기처럼 충만해졌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공감의 언어>는 일상 속에서 공감의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따뜻하고 다정한 안내서 같은 책이다. "말을 소생시켜야 합니다. 말을 따뜻한 것, 살아 있는 것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추천.


공감의 언어 - 상처받지 않고 외롭지 않게, 아나운서 정용실의 유연한 대화생활

정용실 지음, 한겨레출판(2018)


태그:#공감의언어, #정용실, #완경,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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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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