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 (주)훈프로


아이들에게 현대사를 가르칠 때 무척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통일'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가 비록 장기 독재는 했지만, 국가의 경제는 살렸다는 것. 2000년에 태어난 이른바 '밀레니엄 세대'인데도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서만큼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촛불 혁명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그의 딸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며 아쉬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최순실에게 못된 것만 배운 바람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좋은 유전자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황당한 분석까지 내놓곤 한다. 박정희가 만주국 장교 출신의 친일파라는 걸 모르는 아이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에 대한 '통일된' 평가를 뒤집기는 역부족이다.

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배운 건지 알 수 없지만, 6.25 전쟁 이후 전개된 역사에 관한 지식은 대체로 이러하다. 이승만 독재 정권을 시민들이 4.19 혁명으로 축출했지만, 새로 권력을 쥔 민주당 정권의 무능과 부패로 인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섰다고 여긴다. 또, 박정희 피살 직후 광주 학살을 통해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야말로 민주주의 압살의 주범이라 믿는다.

5.16 군사 쿠데타는 '구국의 결단'까지는 아니더라도 불가항력의 사건이고, 만약 박정희가 피살되지 않았다면 전두환과 같은 '악마'가 권력을 찬탈하지 못했으리라 보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서 이승만과 전두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박정희만큼은 예외다. 박정희 대통령은 익숙해하지만, 이승만과 전두환에게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붙이는 아이는 거의 없다.

박정희의 총애 받으며 승승장구한 전두환, 그런데...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1961년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명명 하에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지에서 자행한 국가 폭력, 인권 유린, 강제 노역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2018) 한 장면 ⓒ (주)훈프로


주지하다시피 전두환 정권은 유신 권력의 연장선에 있다. 전두환이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육사 생도의 지지시위를 주동했으며, 이후 박정희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는 사실만 봐도 확연히 드러나건만, 이 둘을 연결 지어 생각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야만적인 전두환의 신군부는 그저 '갑툭튀'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전두환이 주상 같은 법의 단죄를 받지 않은 채 자연사하는 건 역사의 치욕'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자행한 숱한 인권 유린이 그의 '주군'이었던 박정희로부터 배웠으리라는 상식적 추론은 머릿속에 없다. 예컨대, 광주 학살에는 분노하지만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는 애써 눈 감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알아도 인혁당 사법살인에 대해선 모르쇠다.

대표적인 건 '삼청교육대'다. 사회정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부랑아들을 영장도 없이 마구 검거하여 혹독한 고문과 강제노역을 시킨 국가의 폭력에 대해선 치를 떨지만, 그것이 이름만 달랐을 뿐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과거 영화 <실미도>가 개봉되면서 무자비한 권력의 실체가 드러났지만, 그걸 그저 영화 속 허구로 여기는 이가 적지 않다.

흡사 전두환 정권의 만행이 전임 유신 정권의 치부를 덮고 있는 모양새다. 1970년대 권력에 의해 자행된 숱한 간첩 조작 사건들이 최근 들어 대법원으로부터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이미 멀어진 뒤다. 침묵을 강요당해온 긴 세월 탓에 이를 기억하는 이들조차 많지 않다. 누구 말마따나 '죽은 사람만 억울한' 꼴이 됐다.

불과 4년여 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도 사실상 이제야 첫발을 내디딘 마당에, 이미 반세기 가까이 지난 당시의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유가족들마저 세상을 등지고 나면, 자칫 역사 교과서에 단 한 줄도 기록되지 못하는 참담한 운명에 처하게 될 지도 모른다. 진상규명에 대한 동력은 무정한 세월과 정확히 반비례한다.

박정희 정권의 납치, 감금, 강제노역을 고발하는 영화

 다큐 영화 <서산개척단>.

다큐 영화 <서산개척단>. ⓒ 훈프로


그렇듯 역사 교사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영화 한 편을 만났다. 지난 24일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5.16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박정희 정권이 '조국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고아나 빈민 청년들을 납치, 감금해 강제 노역을 시킨 만행을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고발한 작품이다.

'삼청교육대'의 원조 격으로, 영화에서 거론된 규모로만 보면 국가 전체를 병영으로 만들고자 했던 의도마저 읽힌다. 끔찍한 구타와 폭행, 배급마저 부실한 강제노역에다 강압적인 합동결혼식에 이르기까지 국가 권력이 얼마나 야만스러울 수 있는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강제노역에 대한 대가로 공언했던 토지 배분 약속마저 내팽개치는 장면에서는 치미는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다.

고백하건대, 명색이 역사 교사인 나 또한 까맣게 몰랐던 내용도 있었다. 전국 곳곳의 간척사업을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금(PL-480)을 받아놓고선, 박정희 정권은 강제노역에 대한 임금과 식량을 제공하기는커녕 정권 유지 자금으로 전용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정권의 기만적인 토지 배분 약속은 이를 감추기 위한 파렴치한 술책이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사실상 일제강점기에 일본과 러시아, 태평양의 섬 곳곳으로 강제로 끌려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징용'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자국민을 대상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했다는 점에서 당시 일제의 만행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이는 해방된 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박정희 정권의 국가 운영 방식은 일제 때 그대로였음을 보여준다.

지금껏 박정희가 전두환보다 '비교우위'였던 건, 권력형 부정 축재 혐의에서 자유롭다는 점이었다. 정적을 가만두지 않는 냉혹한 권력욕에다 여성 편력이 남달랐지만, 돈 문제만큼은 깨끗했다는 게 정설처럼 굳어졌다. 이러한 그릇된 고정관념 또한 후임 전두환의 죄과에 의해 가려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단 설령 기업들로부터 갈취한 돈조차 '조국 근대화'에 사용되었을 거라는 '통일된' 인식 때문이다.

이제라도 박정희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산개척단> 스틸컷.

<서산개척단> 스틸컷. ⓒ 훈프로


아직도 내 주변엔 한일 굴욕 외교와 베트남 파병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아끼고 아껴 공장을 짓고, 농토를 넓히고, 고속도로를 냈다고 호언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박정희의 공보다 과가 훨씬 크다고 여기는 이들조차 그의 주머니에 들어갔기에 망정이지, 전두환에게 갔다면 벌써 나라를 말아먹었을 거라고 말할 정도다. 여태껏 박정희가 '경제' 하면 누구나 맨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된 연유다.

영화 <서산개척단>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반세기 넘도록 고통과 울분 속에서 살아온 당시 서산개척단원들의 피맺힌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격문'이다. 하지만 역사 교사의 눈에는, 속칭 서산개척단으로 불린 '대한청소년개척단'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나아가 어느 동네에서는 '반신반인'으로 추앙받는 박정희를 재평가하자는 당찬 요구였다. 이제라도 박정희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호소다.

박정희에 대한 '환상'에 경도돼 있는 기성세대에게 더 필요한 영화일 듯싶지만, 당장은 아이들에게 관람을 권유할 생각이다. 현재 개봉관이 몇 군데 안 되는데다 얼마 동안 스크린에 내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짬을 내보라고 독려할 것이다. 교사들 사이에선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열 교과서보다 낫다'는 말이 회자된다.

해마다 5월이면 5.18 광주 학살을 주제로 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교육 효과를 따지자면 영화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영화 <암살>로 교과서 속 '숨은그림찾기'였던 약산 김원봉이 아이들 사이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영화 <지슬>로 인해 전혀 알지 못했던 제주 4.3의 참상을 아이들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가히 영화의 힘이다.

멀게는 해방공간과 6.25 전쟁, 4.19 혁명, 가깝게는 5.18 광주 학살과 6월 민주항쟁 등에 관한 영상과 멀티미디어 자료는 이미 많이 나와 있어 수업시간 학습 자료로 활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박정희 집권 시기에 해당되는 것은 그 숫자도 적으려니와 딱히 쓸 만한 것도 없다. 있다 해도 고증이 안 된 부실한 내용이거나 경제 성장과 같은 '국뽕' 수준의 자료가 대부분이다.

가슴을 치게 만든, 서산개척단원 출신 촌로의 한 마디

"국가와 민족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적극 협력해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아직도 영화 속에 등장한 박정희의 이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 말이,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파시즘임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서산개척단원들의 '노예 같은' 삶을 정당화시킨 무서운 논리였지만, 당시 대다수 국민들은 이에 저항하기보다 전가의 보도처럼 내면화시켜버렸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니, 아버지가 저지른 일을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거라는 바람이…."

영화 속 주인공인 서산개척단원 출신의 한 촌로가 뒤끝을 흐리며 던진 말이 가슴을 친다. 분노할 대상에게 시혜를 바라는 듯 잔뜩 움츠린 채 말을 잇는 장면이었다. 물론, 그의 바람은 실낱같은 기대를 품었던 박근혜 정권 시절엔 입 밖에도 낼 수 없었다. '국가의 노예'였을 뿐이라고 선선히 말하는 그는 어느새 국가 권력에 철저히 주눅이 들어버린 것이다.

어느덧 팔순이 된 당시 서산개척단원들은 그들이 개척한 땅 위에 마을을 일구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고 있다. 그 동네의 마을 회관 입구에도 태극기와 함께 '새마을 깃발'은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76분의 러닝 타임 중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 장면이었다.

서산개척단 박정희 이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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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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