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앤더슨 실바나 존 존스, 론다 로우지 같은 UFC 챔피언들은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한 편이었다. 이들은 챔피언 보유 기간 동안 1년에 평균 두 차례 정도 옥타곤에 올라 꼬박꼬박 타이틀 방어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챔피언 벨트를 따낸 후 슈퍼파이트를 하거나 복싱경기로 외도를 하면서 격투팬들을 애타게 하다가 끝내 타이틀을 박탈당한 전 라이트급 챔피언 코너 맥그리거와는 차원이 다른 행보였다.

최고의 하드웨어와 최악의 흥행력이 공존하는 웰터급 챔피언 타이론 우들리도 2016년7월 챔피언에 오른 후 1년 동안 세 차례나 방어전을 치른 성실한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챔피언답지 않게 흥행에서 회사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우들리는 최근 상위권 파이터들과의 방어전에 집중하기 보다는 GSP, 네이트 디아즈 같은 인기 파이터들을 도발하고 있다(물론 상대들이 크게 반응해주지 않는다는 게 진짜 문제지만).

이에 데이나 화이트 대표는 오는 6월10일(이하 한국시각)에 열리는 UFC 225대회에서 웰터급 2위 하파엘 도스 안요스와 3위 콜비 코빙턴의 웰터급 잠정 타이틀전을 성사시켰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두 상위권 파이터가 잠정 타이틀전을 치르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작아진 파이터가 있다. 오는 28일 UFN 130대회 메인이벤트에서 영국의 신성 데런 틸을 상대하는 웰터급 랭킹 1위 '원더보이' 스티븐 톰슨이 그 주인공이다.

화려한 킥복싱 전적의 타격가, 현란한 변칙 타격으로 타이틀 도전권 획득

 톰슨은 변칙적이고도 화려한 킥기술로 여러 파이터들을 절망에 빠트렸다.

톰슨은 변칙적이고도 화려한 킥기술로 여러 파이터들을 절망에 빠트렸다. ⓒ UFC.com 홈페이지 캡처


10대 시절이던 90년대 후반부터 각종 킥복싱 대회를 석권하며 격투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톰슨은 킥복싱에서 57전 전승이라는 완벽한 전적을 쌓은 후 2010년 종합격투기에 데뷔했다. 미국의 중소단체에서 5연승을 거둔 후 UFC에 진출한 톰슨은 옥타곤 데뷔전에서 댄 스티트젠을 헤드킥으로 제압하고 KO보너스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기세가 오른 톰슨은 단 두 달을 쉬고 UFC 145에 출전해 강한 맷집과 끈질긴 경기력으로 진흙탕 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맷 브라운을 상대했다. 하지만 톰슨은 레슬링과 그라운드 싸움에서 브라운에게 밀리며 격투기 데뷔 후 첫 패배를 당했다. 톰슨에게는 패배 자체도 안타까웠지만 브라운전에서 무릎을 다치며 1년 넘게 옥타곤을 떠나 있던 것이 가장 아쉬웠다.

하지만 부상에서 회복한 톰슨은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복귀 후 연승행진을 달리던 톰슨은 2014년2월 호주의 신성 로버트 휘태커를 상대로 화려한 타격 공방전을 펼친 끝에 1라운드 KO로 승리했다. 톰슨에게 패한 후 웰터급에서 한계를 느낀 휘태커는 한 경기를 더 치른 후 미들급으로 체급을 올렸고 널리 알려졌다시피 오늘날 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2015년 7월 웰터급에서 잔뼈가 굵은 제이크 엘렌버거를 스피닝힐킥에 의한 KO로 제압한 톰슨은 2016년2월 웰터급 전 챔피언 조니 헨드릭스를 만났다. 헨드릭스는 로비 라울러와의 재대결 끝에 타이틀을 빼앗겼지만 웰터급에서 가장 강한 펀치를 보유했다고 알려진 선수였다. 하지만 톰슨은 사실상 폭행에 가까운 현란하고도 압도적인 타격으로 헨드릭스에게 생애 첫 KO패를 안겼다.

타이틀로 가는 마지막 관문에서 만난 선수는 당시 웰터급 랭킹 1위였던 로리 맥도널드(현 벨라토르 웰터급 챔피언)였다. 두 선수 모두 원거리 타격전을 주무기로 하는 선수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됐지만 타격으로는 킥복싱 57연승에 빛나는 톰슨이 한 수 위였다. 결국 톰슨은 킥과 펀치를 섞은 다양한 타격 기술로 유효타를 늘리면서 만장일치 판정으로 맥도널드를 꺾고 타이틀 도전권을 따냈다.

톰슨은 옥타곤에서 유행(?)하는 세대교체 바람을 피할 수 있을까

 톰슨(왼쪽)에게 있어 같은 (무에타이) 킥복싱을 베이스로 하는 대런 틸은 상성을 예하기 힘든 상대다.

톰슨(왼쪽)에게 있어 같은 (무에타이) 킥복싱을 베이스로 하는 대런 틸은 상성을 예하기 힘든 상대다. ⓒ UFC.com 홈페이지 캡처


톰슨은 2016년11월 로비 라울러를 꺾고 새 챔피언에 오른 우들리와 타이틀전을 치렀다. 톰슨은 1라운드에서 킥을 시도하다가 우들리에게 킥캐칭을 당한 후 장기인 킥공격이 위축됐고 레슬러 출신 우들리의 그라운드를 경계하면서 단순하게 경기를 풀어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톰슨은 더 많은 유효타를 날리고도 우들리에게 여러 차례 큰 공격을 허용했고 무승부로 판정되면서 타이틀을 가져오지 못했다.

톰슨은 5개월 후에 열린 재대결에서도 우들리 특유의 노련한(그리고 지루한) 경기운영에 막혀 고전하다가 또 한 번 판정으로 패했다. 아무리 체급의 상위권을 정리한 파이터라도 두 번의 타이틀전 기회를 놓쳐 버리면 먼 길을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UFC 웰터급은 톰슨이 주춤한 사이 도스 안요스와 코빙턴이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톰슨은 작년 11월 호르헤 마스비달을 판정으로 꺾었지만 한 경기에서 승리했다고 바로 타이틀전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결국 톰슨은 오는 28일 영국 리버풀에서 열리는 UFN 130 대회에서 랭킹 8위 틸을 상대하게 됐다. 1992년생의 신예 틸은 톰슨과 마찬가지로 (무에타이) 킥복싱을 베이스로 하는 왼손잡이 타격가로 종합격투기 데뷔 후 아직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작년 10월 '카우보이' 도널드 세로니를 KO로 제압하고 실력을 인정 받은 틸은 홈에서 톰슨이라는 빅네임을 잡고 단숨에 타이틀 전선으로 뛰어 들겠다는 기세다.

사실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틸은 아직 톰슨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톰슨과 틸 모두 화려한 킥복싱 전적을 가진 왼손잡이 타격가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두 선수의 상성은 일단 맞붙기 전까지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든 매우 치열하고 흥미로운 타격전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경기라는 점이다.

최근 UFC에서는 프랭키 에드가, 자카레 소우자, 카를로스 콘딧 같은 노장 파이터들이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상대에게 덜미를 잡히며 세대교체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자주 벌어지고 있다. 1983년생 톰슨 역시 9살 어린 틸에게 덜미를 잡힌다면 웰터급 세대교체의 제물이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톰슨은 아직 '옥타곤 최강 킥복서'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을 생각 따윈 전혀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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