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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가 문을 두드린다. "이인분님이시죠?" 엄마는 얌전히 "네~" 한다. 택배기사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는 "인분? 에라이 똥이다~"라며 소리를 꽥 지른다. 그러고는 깔깔 웃는다.

"택배기사 중에 내 이름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인분 아니면 임분이야."

하긴, 엄마의 이름이 평범하진 않다. 나의 외할아버지가 엄마의 출생신고를 하러 나선 길에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신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얼큰하게 술에 취한 외할아버지는 면사무소 직원에 "우리 딸 이름을 이쁜이로 올려주시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옥자로 살았던 30년

 1950년생인 우리 엄마의 이름은 '이입분'이다.
 1950년생인 우리 엄마의 이름은 '이입분'이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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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름은 무조건 한자로만 지을 수 있었다. '쁜'이라는 한자는 옥편에 없다. 면사무소 직원은 고심 끝에 '설 립'에 '가루 분'자를 사용해 '입분'이란 이름을 적어 넣었다. 1950년생인 우리 엄마의 이름은 '이입분'이다.

딸을 예쁘게 키우고 싶었던 외할아버지의 바람과는 다르게, 입분이란 이름 때문에 엄마는 어려서부터 셋이나 되는 오빠들의 짓궂은 놀림에 시달렸다. 다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할머니, 그리고 이름을 지은 할아버지도 정작 맨 정신에 이 유별난 이름을 사용하긴 민망하고 부담스러웠다. 자의와 타의의 일치로 입분이라는 이름을 대신할 예명을 지었다. 구슬 옥에 아들 자, 옥자. 엄마의 고향 친구들과 친정 식구들은 엄마를 옥자로 기억한다.

사실 나도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엄마의 이름이 옥자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 이름을 적는 칸에 줄곧 '이옥자'라고 적었다. 아마 내 생활기록부에도 엄마의 이름은 이옥자로 적혀 있을 것이다.

엄마가 중년이 되도록 본명을 감쪽같이 숨길 수 있었던 건,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식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딸을 예뻐하긴 했으나 "여자는 한글만 알면 되지 공부할 필요 없다"던 외할아버지 때문에 엄마의 중학교 진학이 좌절됐다. 초등학교 학력으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엄마는 남의 집 농사일, 담뱃잎 따기, 고무신공장, 빵집 등 규모가 작은 곳에서만 일했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은 후에는 옥자라는 예명도 필요가 없어졌다. 'OO엄마'가 입분과 옥자를 대신한 새 이름이 되었다. 모든 거래는 아빠 이름으로 했다. 엄마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보험 하나가 없었다.

엄마가 마흔일곱 살이 되었을 때, 셋방을 전전하던 우리는 드디어 집을 갖게 되었다. 당시 언니와 나는 대학생, 남동생은 고등학생이었다.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갈 시기에 덜컥 집을 샀으니 엄마도 돈을 벌어야 했다.

다시 찾은 이름

새집에 이사 온 다음 날부터 엄마는 새벽같이 나가 동네에 있는 생활정보지를 종류별로 싹쓸이해왔다. 심호흡을 한 후 전화를 걸고, 시무룩해져 다시 정보지를 훑고, 전화를 걸고, 끊고...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올 무렵 드디어 "한 번 와 보라"는 곳을 만났다. 장난감 만드는 공장이었다. 엄마는 난생 처음 자신의 손으로 쓴 이력서를 들고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이름이 이입분이에요?"

인사담당자의 말에 면접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피식 웃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회사 동료들은 엄마의 이름을 금방 기억했다. 엄마가 낯선 직장생활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입분이라는 특이한 이름 덕분이라고, 엄마는 지금도 믿고 있다.

"회사가면 점심시간에 밥 나오지, 설거지 안 해도 되지, 내 통장에 월급 딱딱 들어오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만날 느이 아빠 눈치만 보고 살았는데, 그땐 당당해지더라고."

엄마는 그곳에서 57세까지 만 10년 동안 일했다. 그 사이 집 대출금을 모두 갚았고 적게나마 적금도 부었다. 지금은 용돈 수준이긴 하지만 다달이 국민연금도 받는다.

 엄마는 자신의 진짜 이름이 적힌 첫 자격증을 한동안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엄마는 자신의 진짜 이름이 적힌 첫 자격증을 한동안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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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동화 구연 교육과정을 이수해 자격증을 땄다. 엄마는 자신의 진짜 이름이 적힌 첫 자격증을 한동안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이쁜이 할머니의 동화구연'이란 현수막을 걸고 꼬맹이들 앞에서 처음 동화구연을 하던 날, 엄마는 빨간 하트 머리띠에 하얀 천사날개 장식을 어깨에 달고 나타났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동화책을 읽는 모습에 괜히 뭉클했다. 내 눈엔 하트 뿅뿅, 정말 천사나 다름없었다.

"난 내 이름이 좋아. 입분이란 이름을 쓰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으니까. 사람들이 웃으면 어때. 웃으면 좋은 거 아니야?"

입분이란 이름으로 행복해졌다는 엄마. 그게 정말 이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마가 즐겁다니 나도 좋다. 우리 엄마 이입분씨, 뒤늦게 이름을 찾은 만큼 이 행복 더 길게 쭉 누리셨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름 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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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