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려는 조선으로 그 이름을 바뀌었지만 고려가 건국된 것으로 따지면 1100년이 지났다.

1100주년 기념으로 부여에서는 특별한 전시전이 열렸다. '개태사 태평성대 고려를 열다' 특별전이다.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과 논산시, 국립 부여박물관이 함께 참여한 이 전시전에서는 논산의 국도변에 있는 개태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

박물관
▲ 국립부여박물관 박물관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국립 부여박물관은 군 단위에 만들어진 박물관 중 상당히 정성을 들여서 만들어진 곳이다. 부여가 백제의 마지막 고도였던 만큼 백제의 역사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은 부여의 옛 모습에서부터 백제시대에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연중 열리는 기획전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태평성대 고려를열다
▲ 특별전 태평성대 고려를열다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이해서 열리는 고려 건국 특별전은 2018년 5월 22일부터 7월 22일까지 만나볼 수 있는데 작은 사찰인 개태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고려 태조와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태조상
▲ 고려태조상 태조상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기 위해 919년에 송악(개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친화와 견제정책을 같이 펼쳤다. 그 결과 부자 사이의 문제로 사이가 벌어지던 후백제를 936년에 멸하고 결국 통일 왕조를 이루었다. 후삼국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해에 현 논산시에 개태사를 창건하고 4년 뒤에 개태사를 완공하였다. 태조의 뜻을 계승하는 상징적인 왕실 사찰의 역할을 하며 불교가 국교임을 천명하였다.

유물
▲ 유물 유물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이곳에서 열리는 특별전은 개태사뿐만이 아니라 고려시 시대에 만들어졌던 사찰과 유물들이 있다. 천안시 목천읍에서 나온 청동인물상이나 고려시대 청자 보살상 등도 있다. 청자는 고려시대에 최고의 기술이 집약된 한민족의 보물이다.

유물
▲ 출토 유물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시대 개태사는 936년에 창건한 뒤 시간이 흘러 1362년 공민왕 때에는 개태사의 태조진전에 가서 강화로 천도하는 일을 점을 치기도 했고 1376년에는 왜적이 개태사로 달려들자 박인계가 맞서 싸우다 전사하고 최영 장군이 이곳으로 내려와 홍산에서 왜구를 거의 섬멸시켰다.

공간
▲ 전시공간 공간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현재 건물이 남아 있는 개태사와 그곳에서 북쪽으로 약 300미터 떨어진 곳에 개태사지가 따로 있는데 개태사 터는 6차례의 발굴 조사로 전체 가람의 범위가 확인되었다. 개태사 터를 통해 당시 공간과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 사찰은 개태사뿐만이 아니라 부여의 무량사, 청양 도림사 터 등에서 고려 왕실 사찰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다.

기와
▲ 기와 기와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개태사 터에서는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글자가 새겨진 기와, 수막새, 암막새, 수키와, 암키와 등의 기와가 발굴되었다. 수막새와 암막새애는 화려한 무늬를 장식하였는데 연꽃무늬나 도깨비 얼굴무늬, 여러 종류의 식물무늬, 귀목 무늬, 도깨비 얼굴 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사람모양
▲ 사람모양 사람모양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이 전시전에서 조금 특이한 것은 개태사터에서 나온 소조상들이다. 2016년도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의 6차 발굴조사에서 동쪽 사역인 1 지역에서 소조상 파편들이 출토가 되었는데 이 소조상은 사람의 키와 같은 등신불 이상의 크기로 실제 사람과 같은 코와 입술의 표현이 디테일하다. 이런 소조상으로 볼 때 누구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당시 신앙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쇠북
▲ 쇠북 쇠북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고려왕실의 사찰이었던 개태사는 후삼국을 통일하고 하나 된 고려를 이룩하고자 했던 태조 왕건의 이상이 담겼던 사찰이다. 개태사지 석조여래 삼존 입상과 개태사 쇠북은 고려 태조를 상징하듯이 당당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자태를 갖춘 불상과 국내 최대의 쇠북으로 가치가 무척 크다고 한다.

개태사
▲ 개태사 개태사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이 부처님 오신 날이었는데 그때의 분위기가 아직까지 개태사에 남아 있다. 개태사는 고려가 저물고 나서 관심에서 멀어졌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윤광계는 자신의 글에서 '개태사에 들르다'라는 표현이 있다. 조선시대에 쇠락하여 빈 터만 남은 개태사의 황량한 모습을 읊고 있는데 허리가 반쯤 잘린 석승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유리건판 사진에도 살필 수 있다. 대형 철확에 대한 감회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옛사람에게도 경이로운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건국 1100주년 기념 특별전
개태사 태평성대 고려를 열다
2018.5.22 ~ 7.22
국립부여박물관 기획전시관


태그:#개태사, #태평성대고려를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무엇이든지 쓰는 남자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며, 역사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다양한 관점과 균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열심이 사는 사람입니다. 소설 사형수의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