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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람을 지배하고, 사고의 틀인 프레임을 형성한다. 언어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견해는 독일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프레임을 통한 생각의 제약 효과는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통찰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표현이 우리의 사고 체계를 지배하고, 실제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까지 우리 공무원 노동자는 어떻게 언어가 만든 프레임에 갇혀왔을까.

공무원은 사전적 의미로 '국가 또는 지방 공공 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을 지칭한다. 우리 공무원은 열악한 처우와 노동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위기 극복을 위해 희생을 감당하였다. 낮은 임금과 힘든 노동 여건으로 인해 직업으로서 공무원은 선호 직군이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임금이나 복지 수준은 민간 기업에 비해 여전히 낮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라는 이유로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인기 직장이 되었다. 직업으로서 공무원과 공무원이 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했음을 방증한다.

공무원이 직업으로 인기 없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흔하게 공무원을 표현하는 언어로 '국가를 위한 봉사자'를 꼽을 수 있다. 공적 영역에서 헌신한다는 특수성이 봉사자로 표현된 것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공무원이란 직업군을 봉사자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인식 작용이 나타난다. 그 결과로 우리 공무원은 근무 여건이 힘들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그렇다 보니 오랜 세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제대로 된 노동자의 권리를 소유하지 못했다. 이제 공무원에게 덧씌워진 봉사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봉사자란 사전적으로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쓰는 사람'이다. 이 시대에 직업을 가진 어떤 노동자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 상황을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가.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한 노동자의 현실은 우리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만드는데도 장애가 된다. 공무원을 봉사자라는 틀 속에 가두는 순간 그들의 희생과 고통은 정당화된다. 말 그대로 봉사를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서운 언어 프레임의 결과인 것이다.

공무원이 가져야 할 '봉사하는 마음'은 외부에서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 스스로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면서 내재화해야 할 자부심의 한 요소이다. 공무원 각 개인이 주체적으로 봉사자의 마음으로 업무에 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불합리한 조건과 환경을 강요할 논리로 봉사자 프레임이 사용되는 것은 '공무원 100만 시대'를 맞은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공무원을 국가의 봉사자란 틀 안에 가두고, 불합리한 제도를 강요하는 행위에 변화가 필요하다. 시대가 변했으니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공무원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정부와 우리 사회 각 영역의 동반자로서 자리매김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최영조 시민기자는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공무원, #봉사자, #프레임, #국가공무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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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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