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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개고기 마니아였다. 한 그릇으로 끝나는 법이 없었고, 두 번째 그릇도 찰랑찰랑 넘치게 담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다. 심지어, 아빠 몫으로 남겨진 뚝배기까지 탐했다. 기억 못해도 좋으련만, 기억이 난다.

"엄마, 좀 만 더 주세요. 저거 많아요. 아빠 다 드시지도 못해요."

어느 날, 커다란 들통에 담긴 개 머리를 마주하고 난 뒤, 나의 패악은 끝났다.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 깨어난 뒤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고기를 입에 넣지 않았다. 내 나이 열 살 전의 일이다.

그날 이후 보신탕은 우리 집에서 영구 퇴출되었지만, 다른 고기는 그 혜택을 입지 않았다. 나는 꾸준히, 많이 먹었다. 내가 본 것이 돼지머리였다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됐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이미 많은 돼지머리를 봤다. 어쩌면 그 앞에서 태연히 순대와 내장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저 익숙함의 차이였을까. 익숙함은 인간을 얼마나 마비시킬 수 있을지에 생각이 미친다. 깔끔하게 포장·진열되어 그것이 생명이었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고기들. 이들이 그 자리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야멸차게 말하건대, 이는 고기만을 위함이 아니다. 웃돈을 주고 유기농 채소를 고르는 건, 채소를 위함이 아닐 테니까.

<고기로 태어나서> 책표지
 <고기로 태어나서> 책표지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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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 태어나서>의 한승태 작가는 축산업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가 선택한 것은 통계가 아닌 '클로즈업'이다. 통계는 이해하기 쉽지만 금방 잊게 되고, 통계로서 비극을 알고 고통을 이해했다는 만족감은 계속해서 의심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동력을 감소시킨다는 설명이다.

"이런 숫자들은 우리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발언은 이보다는 점성이 강해야 할 듯싶다. 이들이 도깨비풀처럼 작은 가시를 품고 있어 아무에게나 달라붙고, 털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그 가시들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억센 뿌리를 내려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p9)


그는 클로즈업을 통해 "우리의 멱살을 그러쥐고 현장 한 가운데로 뛰어"(p10)들었다. 말 그대로다. 저자는 직접 닭, 돼지, 개의 농장에서 일하며 보고 겪은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 방대한 내용을 모두 옮길 수 없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부분을 옮기면 이렇다.

닭은 산란계 농장, 부화장, 육계 농장에서 길러진다고 한다. 각각 알, 병아리, 고기로서의 닭을 생산하는 곳이다. 저자가 본 산란계 농장의 닭들은 비좁은 케이지에 여러 마리가 함께 들어있다. "닭은 구기고 찌그러뜨려도 터지지 않기 때문"(p15)에 가능한 일이다. 이곳에서 건강한 닭을 기대할 사람은 없을 테다.

"철창이 가두고 있는 것은 닭이 아니라 가장 유해한 종류의 광기인 듯싶었다. 물론 철창 안에 있는 동물이 미친 건지 아니면 그들을 철창 속에 가둔 동물이 미친 건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말이다." (p19)


품종개량으로 육계와 산란계는 완전히 구분된다고 한다. 그것이 타산이 맞기 때문에 용도는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산란계 수평아리는 어떻게 될까? 닭고기는 암수를 구분하지 않지만, 알은 암탉에서만 나오므로, 이들은 코 푼 휴지보다 못한 폐기물일 뿐이다. 알에서 부화되자마자 비료를 만드는 발효기로 직행해 그대로 칼날에 갈린다고 한다. 운이 나쁘면 산 채로.

 '모돈 회전율'은 1년에 약 2회 정도. 7산 후엔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도축된다고 한다.
 '모돈 회전율'은 1년에 약 2회 정도. 7산 후엔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도축된다고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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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수명이 15~20년이라는 돼지는, 약 6개월간 길러진다고 한다. 고기용 돼지가 이렇고, 더 오래 사는 경우도 있다. 임신이 가능한 돼지, 즉 모돈은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스톨(stall, 모돈을 가둬놓는 케이지) 안에서 약 3년간 길러진다. 출산, 다시 말해 '모돈 회전율'은 1년에 약 2회 정도. 7산 후엔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도축된다고 한다.

"그렇게 옴짝달짝할 수 없는 스톨에 갇혀 영문도 모른 채 임신했다 새끼를 낳았다 임신했다 새끼를 낳았다 임신했다 새끼를 낳다가 죽는 것이 모돈의 운명이었다. 보통 돼지들이 살찌는 기계라면 모돈은 새끼 낳는 기계였다." (pp167-168)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닭과 돼지와 달리, 개의 경우는 보다 복잡하고 충격적이다. 저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의 주식은 음식물 쓰레기였다. 병원이나 학교, 식당 등은 돈을 내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분하고, 돈을 받고 사온 그것은 개 사료가 되는 것이다. 개에게 해로운 음식은 물론, 때때로 병뚜껑과 빨대가 들어있으며, 여름이면 운송 중에 이미 부패된다.

처치 곤란한 음식물 쓰레기를 이들이 처리하는 덕분에, 그리고 애초에 축산업으로 분류되지 않은 덕분에, 이들에 대한 규제는 미온적이라고 한다. 비윤리적 도축이 행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저자는 "비윤리적인 고기는 있어도 야만적인 고기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p454)고 밝히고, 나 역시 개고기 문화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현 실태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책은 식용동물에 관한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 않다. 이 책은 '노동에세이'다. 고된 노동과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이 어떻게 사람의 이성과 감성을 마비시킬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는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오직 이윤만 바라며 직원을 짐짝 취급하는 사장도 있고, (당연하지만) 직원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사장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돈밖에 모르는 사장은 상품인 돼지를 애지중지하고, 직원을 배려하는 사장은 돼지에게 전기 충격기를 쓰는 것을 허용한다.

"어느 과학자의 말을 바꿔서 표현해보자면 생명관에 상관없이 좋은 사람은 동물을 아끼고 악한 사람은 동물을 학대한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 그것은 대부분 동물은 물건이라는 믿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p263)


저자의 소망대로, 이 책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심으로,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한다. 그 바람에 방해가 될까 우려되지만, 책을 읽으며 입맛을 싹 잃어 한 끼를 걸렀다. 그리고 고작 몇 시간의 허기를 더 이기지 못하고 음식을 찾았다. 우적우적 급하게 음식을 씹으며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고, 동물일 뿐이다.

표지를 다시 본다. "맛있는 고기와 힘쓰는 고기의 비망록"이라는 글귀가 이제와 눈에 띈다. 이 말 덕분에, 개가 아닌 소가 나오리라 잠시 착각했었다. 그러니까 '힘쓰는 고기'는, 인간이었다.

동물로서의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혹 인간이 우월한 지위의 동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미덕을 발휘해도 좋겠다. 나와 다른 존재의 고통을 느끼는 연민.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하는 노력. 정말이지,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선량한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의 선량함을 의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선량한 사람이 된다. (폴 오스터, <폐허의 도시> 본문 재인용, p444)


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지음, 시대의창(2018)


태그:#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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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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