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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파서 누워있을 자유도 없어!" 엄마들끼리 모이면 흔히들 주고받는 말입니다. 더 이상 이 말이 사실이 아닌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들도 돌봄받는 세상을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독박돌봄노동 탈출기를 시작합니다. [편집자말]
캐나다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우리는 평등한 부부관계는 돌봄을 함께 실천할 때 가능함을 알게 됐다. 나는 이곳의 여성리더십 워크숍을 통해 배운 것들을 남편과 공유했다. 남편 역시 가부장적인 가정문화 속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온전하게 살아가기 힘들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그리고 가사와 육아에 보다 동등한 책임감을 가지고 관심을 갖기로 약속했으며, 함께 있는 동안에는 식사준비, 청소, 빨래정리 등을 함께 하며 행동으로 옮겼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마다 짜증과 지시로 반응했고, 이런 상황은 결국 남편의 폭발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관련 기사 : 나의 갑작스런 '돌봄 파업', 남편도 힘들었겠구나]

 2016년 방영된 MBC드라마 '워킹맘 육아대디'는 맞벌이 부부가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며 육아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2016년 방영된 MBC드라마 '워킹맘 육아대디'는 맞벌이 부부가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며 육아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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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동의하고 '행동'으로 노력하고 있음에도 잦은 신경전으로 갈등만 깊어가고 있을 때 해결책을 찾아준 것은 만 9살짜리 아들이었다. 우리의 갈등이 최고점에 있었던 지난 겨울. 이곳 성당의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던 아들은 집에서 부모님께 '고맙다'고 말하기를 숙제로 받아왔다.

이 숙제를 하느라 아들은 "엄마, 오늘 찌개 끓여줘서 고마워. 아빠는 고기 구워줘서 고마워"라는 식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고맙다'고 말을 했다. 별 것 아닌 것에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아들은 주일학교 숙제를 아주 성실히  했다.

너무나 성실한 아들의 '고맙다'는 말하기는 우리 부부도 이 말을 따라하게 만들었다. 아들이 남편에게 "과일 주스 만들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면, 나도 덩달아 "고마워"라고 말했다. 남편 역시 아들과 함께 내게 "오늘 식사준비 해줘서 고마워"라고 인사를 했다.

생각과 행동에 이어 말에서도 변화가 일어나자 정말로 집안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맙다고 말할 거리를 찾다보니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보기보다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됐다.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남편이 재료들을 손질해주면, 손질한 부분에 대해 "고맙다"고 말했고, 식사 후 함께 설거지를 할 때도 "같이 하니 훨씬 일이 수월하게 끝나서 좋다"고 말했다. 남편 역시 아침에 내가 싸준 점심도시락을 받아들면서 "점심 준비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고, 퇴근 후엔 "오늘 점심 참 맛있었다"고 이야기해줬다.

'고맙다'는 말이 바꾼 변화들

 남편이 내가 제공하는 돌봄노동에 대해 고맙다고 말해주자, 나 역시 주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듯해 집안일을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남편이 내가 제공하는 돌봄노동에 대해 고맙다고 말해주자, 나 역시 주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듯해 집안일을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됐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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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피드백 해주자 남편은 가사에 더욱 적극적이 됐다. 지금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한 후 시간이 남으면 스스로 청소기를 돌린다.

매일 아침 두 개의 점심 도시락을 챙기는 동안(밴쿠버에서는 학생이나 직장인 대부분이 점심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남편과 아이는 스스로 외출준비를 하고, 각자의 점심 후식으로 가져갈 과일을 챙긴다. 내가 해 둔 빨래를 스스로 정리하는 일도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남편이 내가 제공하는 돌봄노동에 대해 고맙다고 말해주자, 나 역시 주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듯해 집안일을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됐다. 가끔 몸이 안 좋거나 바쁘거나 피곤할 땐 억지로 식사 준비를 하지않고 쉬고 싶다고, 바쁘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럴 땐 내가 쉬는 동안 남편이 홀로 식사준비를 하고 식탁도 차린다.

처음엔 이런 대접을 받는 일이 어색했지만, 이젠 미안해하지 않고 남편이 차려준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내가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되자 결혼 후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여자여서 억울하다"라는 생각도 많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돌봄노동에 쓰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캐나다에 오면서 한국에서의 커리어는 잠시 중단됐지만, 이곳에서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과거 기자로서의 경험과 현재의 심리 상담현장에서 쌓아온 지식들을 결합한 글쓰기를 하면서 단절되었던 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킬 수 있었다. 나의 과거와 현재가 통합됐다는 느낌은 결혼 후 육아와 가사에 치여 잃어버렸던 나의 정체감을 다시 회복하게 했다.

내가 정체감을 회복하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데 에너지를 쓰면서 아이의 단점을 보다 잘 수용하게 되었고, 남편도 있는 그대로 존중하게 됐다. 가족들을 돌보느라 나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자, 역설적으로 돌봄노동을 더 즐겁게 하게 됐다.

가사분담을 시작할 무렵엔 남편이 제대로 하는지 감시를 하곤 했지만, 이젠 남편이 하기로 되어있던 일이라도 내가 여유가 있을 땐 기쁜 마음으로 한다. 남편과 내가 서로 돌봄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감사하게 느껴진다.

남편 역시 아빠로서의 정체감을 갖게 됐다. 이는 직장 위주의 생활을 강요하는 한국과는 달리 가족 중심의 생활을 중시하는 캐나다 사회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이곳에서 남편은 매일 오후 5시면 퇴근해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아들과 조깅을 한다.

식구들보다 회사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날이 더 많았던 한국과는 매우 다른 풍경이다. 아이 학교에서 행사가 있는 날엔 당연히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한다.

주말엔 골프를 치는 대신, 가족과 함께 집을 가꾸고 피크닉을 가고 아이가 좋아하는 요리도 한다. 한국선 "골프 약속은 절대 깰 수 없다"던 남편이 지금은 "난 한국 돌아가도 골프는 안 갈 거야. 가족이랑 함께 주말을 보내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알았어. 그리고 혹시라도 둘째가 생긴다면 나 육아휴직 1년도 무조건 쓸 거야. 아이랑, 가족이랑 함께 하는 시간을 뺏는 사회가 잘못된 거지, 이걸 요구하는 게 잘못 된 게 아니거든"이라고 말한다.

갈등을 피하지 않기

물론, 이런 변화들이 항상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문득문득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들고, 예전의 가부장적인 패턴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화가 난다. 여전히 아내와 엄마로서 충실하지 못할까봐 조바심을 내며 사회적 정체감과 가정에서의 정체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가 꾸린 가정 안에서는 평등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시댁과 관련해서는 답답한 가부장제의 그림자 안에 갇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 부부는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재빨리 알아채고 이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억울해하지 않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 이것만으로도 보다 평등한 부부관계의 기초는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지난 12년간의 결혼생활은 내 안의 가부장제를 깨닫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위한 투쟁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발을 담그면서부터 어딘지 모를 부당함과 억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이 나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그 위로부터 오랫동안 대물림해온 가부장제의 그림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이런 문화들을 무척 답답해하고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음에도, 이미 내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가부장적 여성상을 포기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찾으려 노력할수록 죄책감이라는 또 다른 감정이 올라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거세지는 내 안의 분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행동으로 달라지기 위해 애썼다.

다행히 남편은 나의 이런 생각을 존중해주었고 함께 노력해주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캐나다라는 새로운 환경을 만나면서 나를 괴롭히던 가부장제의 그림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한국의 직장문화와 사회분위기는 지난 10여 년간 긴 갈등 끝에, 이곳 캐나다에 와서야 이뤄낸 변화들을 원점으로 돌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다시 갈등할 것이고 크게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겠다.

엄마의 독박 돌봄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반쪽의 정체감으로만 살게 함으로써 온전한 한 사람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는 것을 방해한다. 아주 오랫동안 일상 속에 녹아든 가부장제를 바꾸는 데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부모 세대는 평생을 갈등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피곤하고 힘들지라도, 갈등을 피하지 않고 맞서 나갈 때 우리의 딸들과 아들들은 좀 더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반-합에 의해 세상이 발전하듯, 이런 갈등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으며 지극히 사적인 '나의 독박돌봄노동 탈출기'를 마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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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로 세상을 관찰하며 살다, 지금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존중받는 세상을 꿈꾸며, '생명감수성'과 '마음의 성장'을 일상과 문화콘텐츠를 통해 공유하고 소통합니다.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