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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오늘 이 동네 활어도 매상에 우럭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어요. 방생 실천한다고 사람들이 이쪽 포구로 몰린 거죠. 글쎄, 한 집에서 300kg도 넘게 팔려나간 곳이 있었다니까요."

부처님오신날 오후, 충남 당진의 한 포구에서 만난 식당 주인의 푸념이다. 이날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물고기를 살려 보낸다고 찾아온 수많은 방생 행렬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 온 수백 명의 신도가 넙치, 우럭 등을 포구 앞바다 활어도매상에 샀다는 것이다.

특히 이 포구 부근은 주로 우럭양식을 하고 잡는 곳인데, 여기서 우럭을 사서 방생한다는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포구 앞바다의 한 활어도매상. (사진은 특정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포구 앞바다의 한 활어도매상. (사진은 특정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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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은 석가모니가 세상 중생들에게 광명을 준 날이라는 의미로 연등놀이·관등놀이·방생·탑돌이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그중 방생은 살생을 금기하고 있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의식 중의 하나다. 살생(殺生)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다른 사람들이 잡은 물고기·새·짐승 등 살아있는 것들을 사서, 자연으로 살려 주는 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생을 통해 전쟁의 위험을 없애고, 무병장수하며 자손이 번성하는 등 복덕과 수명이 영원한 공덕을 얻게 된다고 믿고 있다. 이처럼 방생은 공덕을 쌓아 복을 구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일단 수족관에 있는 어류는 용도 자체가 횟감용으로 들여온 것으로 양식이나 수입이 대부분이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치어는 수온 차이가 커 바닷물에 들어가면 곧바로 죽는 사례가 많다.


방생이 이뤄진 포구 부근은 주로 우럭양식을 하고 잡는 곳이다.
 방생이 이뤄진 포구 부근은 주로 우럭양식을 하고 잡는 곳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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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도 방생 나름이다. 이런 아름다운 방생도 있다. 지난 2016년 3월, 광주광역시 용봉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이병문 씨는 횟집 수족관에서 새끼 40마리를 낳은 참상어 가족을 바다로 돌려보내 큰 화제가 됐다.

처음엔 아쿠아리움으로 보내려 했지만, 결국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 씨는 상어들의 수온 적응을 위해 수족관 온도를 바다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적응시킨 후 150km나 떨어진 여수 향일암 앞바다까지 가서 놓아주었다. 상어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진정한 방생을 실천한 것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불교의 방생을 실천한 사례다.

방생이라는 것은 법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꼭 살아있는 생명을 놓아주는 것으로 방생을 실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가슴 아픈 말, 상처 주는 말 대신 위로의 말, 희망의 말을 전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방생의 실천이다. 소외이웃을 돕는 인간 방생부터 꽃이나 나무를 심는 생명 살림까지 다양한 방식의 방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경주 문무대왕릉 앞 횟집에 걸려있는 '방생 고기 팝니다'의 문구는 우리 방생 문화의 씁쓸한 이면이다. 방생을 위해 수족관의 양식어류를 사는 무분별한 행위를 과연 부처님이 기뻐하실까.

방생이 펼쳐진 바닷가 바로 앞에서 만난 한 횟집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 말이요. 우리 집은 포구 앞이라 딱 한 팀만 고기를 사 갔지만, 그렇게 생선회를 먹으면서 또 방생한다니 웃기지도 않아요. 사정에 맞게 내 주머니도 좀 풀고, 좋은 말로 나와 이웃이 기쁘면 그게 바로 최고의 방생 아니겠어요?"

몇년 전, 경주 문무대왕릉 앞 횟집에서 만난  ‘방생 고기 팝니다’ 문구.
 몇년 전, 경주 문무대왕릉 앞 횟집에서 만난 ‘방생 고기 팝니다’ 문구.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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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방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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