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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름은 모르겠으나 동네 산책길 담장 위의 화분에 핀 종 같이 생긴 꽃
▲ 동네 산책길에 꽃이름은 모르겠으나 동네 산책길 담장 위의 화분에 핀 종 같이 생긴 꽃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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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트막한 동산에는 냉이, 두릅, 고들빼기, 등등 봄나물이 '나 잡아봐라' 하며 고개를 내민 지 오래다. 고들빼기 하면 할아버지 생각이 나는데, 고들빼기의 쓴맛이 위장에 좋다며 고추장에 무친 나물 한 종지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는 하셨다. 그 쓴 고들빼기가 뭐 그리 입에 맞는지 연신 "향이 좋다, 입에 달다" 하시며 아들에게도 권하곤 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할아버지에게는 고들빼기의 쓴맛을, 동무들에게는 고들빼기보다 더 쓴소리를 자주 듣는데...

"너는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다. 인생의 쓴맛을 좀 더. 봐야만 돼."

글쎄? 아버지는 동무들의 말이 반만 맞다고 본다. 고들빼기처럼 인생의 쓴맛이라? 겪어봤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만 제3한강교 위에서 신발 가지런히 벗어놓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흩뿌린 눈물이 있으니 인생의 쓴맛을 아주 안 보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제3한강교 사건 하면 엄마는 지금도 "그때 뛰어내릴까 말까 망설일 때 누가 확, 등이라도 떠밀었어야 했는데..." 우스갯소리를 하다만 사연이랄 것도 없이 아버지가 생각해도 좀 우스운 사건이었다.

다리 위에 섰어... 그런데 말이야

저녁 노을, 다리 그리고 한강.
 저녁 노을, 다리 그리고 한강.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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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잘 나가던 사진관이 광고 사진을 하나 촬영했는데 이게 사기꾼이었더라. 2000만 원 정도 손해를 본 데다가 사진이 디지털로 급격히 바뀌면서 월세가 몇 달치 밀렸다. 급기야 엄마가 일을 나가는데 그게 그렇게 싫었던 거지. 갑자기 다리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아무튼 노래 제목처럼 제3한강교라고 해두자. 다리 위에서 신발을 벗어놓고 뛰어내리려는데 춥겠더라고. 어떡해? 집으로 와서 술 한잔 마시고 엄마 끌어안고 훌쩍거리며 미안하다고 했어. 지금 생각해봐도 코미디 치고는 삼류 코미디라 웃음밖에 안 나온다. 허허! 

그러나 푸른색으로만 넘실댈 것 같은 드넓은 바다도 가만 들여다보면 오만 가지 색이 숨어있다. 어찌 사람의 인생이라고 단맛만 있을까? 신맛도 있고 쓴맛도 있을 테지. 단맛은 단맛대로 신맛은 신맛대로 쓰임새가 있다고 여긴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오로지 단맛 일색이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금방 질리고 만다. 1년 365일 밥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은 쌀밥의 담백함 때문이라고 아버지는 생각한다.

우리네 인생도 단맛만 있다면 재미없지 않겠나? 미국의 가도 가도 끝없는 일직선의 고속도로보다는 고개가 가파러 구름도 쉬어간다는 박달재의 꼬불꼬불한 고갯길이 더 재미있는 이치와 같은 거지.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봐서 아는데 거의 120도의 커브 길을 돌아 나타나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풍경, 커브길을 돌 때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풍경에 탄성을 지르며 도대체 지루할 시간이 없다.

'인생에서 단맛은 내 복이요, 쓴맛은 내 분수의 척도'라고 아버지는 단정 짓는다. 단맛은 단맛 그대로 즐기면 되고 쓴맛은 쓴맛 그대로 분수껏 살면 아버지처럼 제3한강교 위에서 신발 벗어놓고 신파극은 연출 안 해도 되리.'

오늘은 아버지가 아주 재미있는 시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시인 이시영 선생의 시에 등장하는 '정춘이 형'은 시인 서정춘 선생을 이야기한다. 참으로, 참으로 멋들어진 시가 아닐 수 없다. 다음에는 서정춘 선생의 가슴 찡한 시를 소개하마.

<여기가 이젠 내 고향> - 이시영

그 시절 사는 게 모두 어려웠지만 정춘이 형 순천 중앙극장 목소리 고운 장내 아나운서 꼬드겨 밤기차 타고 서울로 서울로 도망치던 때의 콩닥이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청계천이라나, 하여간 썩은 물 흘러가던 시커먼 판자촌 사글셋방에 이불 짐 부리고 담배 한 가치 맛있게 태우고 나서 바람벽 기대어 떨고있는 처자에게 등 돌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지.

"여기가 이젠 내 고향!"


태그:#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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