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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손가락들이 자기 자랑을 시작했다. 엄지는 "나는 손가락 중 가장 굵고 첫째가는 손가락이다." 검지는 "나는 무엇을 가리킬 때 쓰는 손가락이고 둘째가는 손가락이다." 중지는 "나는 중간에 있지만 손가락 중에 가장 키가 크다." 약지는 "나는 손가락 중 가장 중요하기에 값비싼 반지를 내게 끼운다." 마지막 새끼손가락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자랑할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울상을 하다가 한마디 했다. "니들이 아무리 잘났어도 나 없으면 불구야, 그거 알아? 애들이 까불기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렇다. 작다고, 볼품없다고, 함부로 무시하다간 큰코 다친다. 작지만, 약하지만, 되레 소중하고 요긴한 건 찾아보면 무척 많다.

스페이스 바가 떨어져 나가 흉했는데 감쪽 같이 수리가 됐다
▲ 노트북 자판 스페이스 바가 떨어져 나가 흉했는데 감쪽 같이 수리가 됐다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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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스페이스 바가 떨어져 나갔다. 스페이스 바가 없어도 사용에 큰 불편은 없기에 한동안 그냥 썼다. 하지만 아무래도 보기 흉해 오늘 모처럼 시간이 난 김에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맡겼다.

센터의 수리 기사는 난감해했다. 얼마 전까진 이처럼 작은 부품 하나 떨어져 나간 건 수리하다 모아둔 부품 중에 맞는 걸로 서비스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본사에서 그걸 못하게 해 요즘엔 작은 부품 하나 떨어져 나간 거라도 그 전체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페이스바 하나만 따로 팔지 않는 데다 구형 노트북이라 같은 부속품을 찾기도 쉽지 않단다.

별 수 없이 자판 전체를 갈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판 전체를 갈이 끼우는 데 비용은 2만 7000원이란다.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새 자판으로 교체해 달라"고 주문했다. 기사는 그래도 혹시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려 했는지 자신의 서랍에서 몇 가지 부품을 꺼내 스페이스 바에 맞춰 보더니 "안 되겠다"란다. 사이즈도 맞지 않을뿐더러 고정시킬 수도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당장 쓰시는 데 큰 불편이 없거든 좀 기다려 보시겠느냐"라고 했다. 자신이 메모해 두었다가 맞는 노트북 부속이 나오면 그걸 챙겨놨다가 끼워드리겠다는 것. 하지만 언제 수리해 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고 부품이 나와도 자신이 연락을 드리진 못한다고. 작은 스페이스 바 하나 때문에 자판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라 미안해서 그런 말을 했으리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노트북 가방을 뒤져 보았다. 스페이스 바 조각이 가방 속에 남아 있는지 손을 넣어 샅샅이 더듬어 보아도 잡히는 게 없었다. 교체하는 방법 밖에 도리 없었다. "새 걸로 교체 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가방을 벌려 안을 살펴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스페이스 바 까만 조각이 하나 보였다. 그걸 꺼내 기사에게 보여줬더니, "다행히 있으시네요. 이거면 됐습니다"라고 말하곤 곧장 수리해줬다. "수리비는 얼마냐"고 하였더니, "이건 서비스입니다. 그냥 가셔도 됩니다"라고 했다.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기사의 친절함에 고마웠고, 자판 부품 한 조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알게 됐다. 별 거 아닌 듯 보이는 작은 부품 하나하나가 서로 연결돼 온전함을 이룬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태그:#노트북, #작은 것, #수리,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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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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