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고! 이 글에는 영화 <버닝>의 주요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칸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을 탄 영화 <버닝>(감독 이창동)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유통회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을 쓰는 종수(유아인)는 동창생 해미(전종서)를 우연히 만난다. 해미는 그에게 자신에게 못생겼다고 한 말을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종수는 그 질문이 의아하다. 기억에 없다. 해미가 그에게 다가가며 묻는다.

"이제 진실을 얘기해 봐."

둘 사이에 비닐하우스를 불태우는 취미가 있는 벤(스티브 연)이 등장하면서 미스터리는 시작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했다.

 <버닝>

<버닝> ⓒ cgv아트하우스


보이지 않던 보일이 보이는 순간

해미가 아프리카로 여행 간 사이 종수는 그의 고양이 보일을 돌봐준다. 보일을 돌보면서도 그는 보일을 본 적은 없다. 해미가 귀국했을 때, 그의 곁에는 벤이 있다. 그는 두 달 간격으로 주인 몰래 낡은 비닐하우스를 불태우면서 희열을 느낀다는 인물이다. 심장에 손을 얹고 "여기서 베이스가 느껴져요. 뼛속까지 울리는 베이스"라고 말한다. 종수는 해미가 벤의 곁에 있는 것이 두렵다. 두려움은 현실이 된다. 해미가 사라졌다. 벤은 해미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실종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종수는 벤이 태웠다는 비닐하우스를 찾기 위해 헤매지만 어디에도 없다.

종수는 벤을 의심한다. 해미에게 선물한 손목시계를 벤의 서랍에서 발견할 때, 의심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해미와의 연락두절 이후, 벤의 집에서 낯선 고양이를 본다. "보일아." 한 마디에 반응하는 고양이를 보고 의심은 확신이 된다.

자신을 증명하는 것

해미는 어렸을 때 우물에 빠졌던 기억을 종수에게 말한다. 우물에서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종수라는 것. 하지만 그는 해미를 구해준 기억도 우물을 본 적도 없다. 해미의 가족도 해미가 우물에 빠진 적이 없으며 집 근처에 우물은 없었다고 한다. 종수는 왜 해미를 의심하지 않을까. 종수의 의심은 벤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그것은 해미는 자신이 구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그를 잃는 것은 자신을 다시 잃는 것과 같다. 그는 확인하고 싶다. 우물이 있어야 생명을 구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물은 보이지 않는다. 우물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그때, 그가 어렸을 때, 집을 떠났던 엄마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는 빚에 시달리고 있다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의 기억 속에는 우물이 있다. 엄마는 종수를 증명하는 또 다른 존재다.

리틀 헝거에서 그레이트 헝거로 성장

해미는 귤을 까먹는 팬터마임을 하면서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귤이 없다는 것을 잊으면 된다고 말했다. 종수는 해미의 생각으로는 해미와 종수 자신의 세계를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없는 우물을 기억하며 지키려 한다. 대신 있던 것을 없애는 자신만의 팬터마임으로 이야기를 완성한다. 강박처럼 자신을 짓눌러왔던 비닐하우스 주변 기억을 불태워 빛이 보이던 공간, 우물을 지키고자 한다. 필요가 없으면 버려지는 비닐하우스의 세계가 허상이라면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종수는 해미가 구한 길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해미를 구했던 빛의 기억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미를 지켜내려는 절실함이 되살아나자 보이지 않았던 고양이 보일을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리틀 헝거의 태도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뼛속까지 울리는 베이스를 느낀다.

영화 <버닝>은 종수의 소설을 삶 안에서 퇴고해가는 과정을 그린 듯하다. 자기 자신을 못생겼다고 혐오한 청년이 이제 진실을 이야기하며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레이트 헝거로 성장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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