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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어느 골목에 있는 빌라. 어머니와 나의 보금자리였다. 3년 전에 어머니가 소천하신 후 나는 그곳을 떠났다.

여느 빌라처럼 건물주는 5층에 살았다. 주인 외에는 옥상으로 접근 자체가 안 되도록 4층과 5층 사이에 현관문이 있었다.

신용을 중시하셨던 어머니는 평생을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셨다. 마치 폐 끼치지 않기 위해 사는 것처럼.

월세는 단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납부일이 오기도 전에 항상 먼저 입금하셨다. 성실하게 그곳에서 3년을 살았다. 폐 끼치지 않는 세입자로서.

"안녕하세요, 402호죠? 5층인데요." 

건물주에게 우리 모자의 이름은 '402호'였다. 물론 우리에게 건물주의 이름은 '5층'이었다.

402호와 5층은 종종 마주칠 때 인사를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집 계약 때 문서상으로 확인했었겠지만.)

  수많은 이웃들과 마주하며 사는 현대인. 요즘에도 이웃사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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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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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큰 병치레 한번 없었던 어머니가 갑자기 어느 날 입맛이 떨어진다고 하셨다. 점점 살이 빠지셨다. 병원에 가보자고 해도 요지부동.

6개월 후, 결국 병원을 찾았다. 어머니의 병명은 난소암이었다. 6개월의 투병 후, 결국 어머니는 소천하셨다.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있던 모든 연락처에 문자를 보내 부고를 알렸다. '5층 주인집'이라 저장된 연락처도 있었다. 발인 때까지도 5층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답장도 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건물주와는 이름도 모르고 3년을 지냈지만, '이웃사촌'이라는 억지의 끈이라도 잡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402호에는 이제 나 혼자 남았다.

고1이 되던 해에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그 후로 15년을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 보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보고 살았다.

어머니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모든 물건이 그대로 있었지만, 폐허 같이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의 온기 없는 물건을 보는 게 힘들었다. 이사를 결심했다. 어머니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싶었다.

서둘러 이사를 했다. 서울 동쪽에 살던 나는 서울 서쪽으로 거처를 옮겼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의 동네에서 최대한 빨리, 최소한 멀리 벗어나고 싶었다.

402호의 물건을 거의 다 버렸다. 서울 반대편 7평 오피스텔에 들고 가기에 숟가락 한 세트면 충분할 정도로 버리고 또 버렸다.

빌라 주차장 한편에는 내가 버린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폐 끼치지 않으려 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폐가구 수거 업체도 불렀다.

이사를 마치고 5층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와 마지막 추억을 보냈던 곳이라 많이 기억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후 답장이 왔다.

'쓰레기 내놓으신 거 중에 접시 같은 게 봉투 밖으로 나와있어요. 깔끔하게 정리해주세요.'

쓰레기 봉투에 담긴 접시들 중 괜찮은 것을 동네 사람들이 빼가는 바람에 엉망이 된 것이었다. 세입자의 괜한 설움이 밀려왔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송파에서 25년간의 추억을 뒤로하고 떠나는지 5층은 알리 없었다. 이를 악물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마지막은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 5층의 입장도 헤아려보려고 했다.

'죄송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접시가 탐나서 봉투를 찢었나봐요.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마지막으로 떠나려고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5층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402호를 이미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이사를 서두른 탓에 '곧 넣어드릴게요'라는 말만 믿고 기다릴 뿐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집을 확인해보니 형광등 커버 두 개가 없네요. 그거 14만원 제외하고 보증금 넣어드릴게요. 입금이 많이 늦어져서 미안해요.'

5층의 마지막 답장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건데 나는 왜 억울했을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는 왜 웃기지 않았을까?

5층은 건물주로서 분실 물품에 대해 원칙대로 배상 청구를 했다. 보증금 환급 지연에 대해 사과도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품앗이 풍경. 지나가다 차를 세우고 정겨운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품앗이 풍경. 지나가다 차를 세우고 정겨운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 김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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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지난 오늘, 잊혀졌던 그 때의 감정이 살아난다. 6세대 밖에 안 되는 빌라의 한 세입자가 가슴 아픈 일을 겪었었다. 진심이 담긴 위로의 한마디가 그리도 어려웠을까.

이웃사촌의 개념이 사라지는 시대에서, 나는 어떤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당장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내는 연습부터 시작해야겠다.


태그:#이웃사촌, #세입자, #건물주, #말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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