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부탁 영화 포스터

▲ 당신의 부탁 영화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일상은 무겁고 대사는 적은 영화다. 대사를 외우는 배우 입장에선 부담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안아야 할 수도 있다. 관객과 염화미소(말로 통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의 소통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관객 역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그렇지만 부처님 오신 날, IPTV에서 '진짜와 가짜, 부모와 자식, 그리고 관계 맺기'에 대해 한 번쯤 '염화미소'를 지어볼 수 있는 영화다. 배우 임수정이 이 소통법에 도전하고 있다. "힘을 다 빼고, 감정을 연기한 영화", 지난 4월 중순 개봉한 <당신의 부탁> 주연을 맡은 그녀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심정이다.

불교의 상징화인 연꽃과 석가모니의 인연은 이렇다.

"석가모니께서 영산의 법상에 올라, 아무 말씀도 없이 연꽃 하나를 들어 제자들에게 보이자,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고 좌우를 둘러보는데, 가섭존자만이 혼자 미소를 지었다.

이 때의 미소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연꽃이 진흙 속에서도 아름자운 자태의 꽃과, 맑은 향기를 피워내 듯, 속세의 힘겨움은 너희들의 노력에 따라 연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백마디 말보다는 한순간 주고 받는 마음에서 완성되는 소통이다. 석가모니가 탁월한 배우라면, 가섭은 적극적인 관객이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엄마'다. 그리고 여기에는 '진짜 엄마', '가짜 엄마', '진짜 같은 가짜 엄마'가 뒤섞여 있다. 다행히 '가짜 같은 진짜 엄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의 첫 번째 '가짜 엄마'는 2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32살 효진(임수정 분)이다. 죽은 남편의 전처가 낳은 아들(16세) 종욱(윤찬영 분)을 어느날 떠밀리듯 부양하게 된다. 여기에 종욱의 중학교 시절 여자 친구 주미(서신애 분)가 미혼모로 가세하면서, 종욱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또 효진의 절친한 친구인 미란(이상희 분)이 갓 출산을 하고, 주미의 아이를 돈을 주고 입양하려는 한 부부가 등장한다. 효진의 엄마가 팔자 사나운 딸과 매번 다투게 되고, 신내림 때문에 세상을 등진 종욱의 또 다른 엄마 연화(김선영 분)가 얽혀있다. '엄마'라는 대사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영화는 이 복잡하고 다양한 엄마의 군상들을 말로 정리해내지 않는다. 아니 애초부터 말에 대한 불신을 담고 있다. 남편 잃은 효진은 한 카페에서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아마추어 상담사에게 연인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수없이 오고 간 말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혈연 관계를 맺은 엄마는 효진의 엄마, 미혼모, 미란이 된다. 그리고 효진과 입양부부는 혈연 관계가 없는 아이를 키우려는 이들이다. 또 연화도 생모인지, 아닌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지만,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진짜 엄마들은 상대적으로 제법 많은 대사를 소화하지만, 가짜 엄마들의 대사는 제한적이다. 아마 주연보다 조연의 대사가 더 많은 영화가 아닐까한다.

영화의 제목, '당신의 부탁'도 이중적으로 와 닿는다. 우선 첫째는 죽은 남편이 효진에게 하는 내면의 부탁이다. 염치 없지만, 이 아이를 맡아달라는. 다음으로는 가짜 엄마인 효진이 또 다른 가짜 엄마인 연화에게 종욱의 상처를 걱정하며 '아이의 엄마인 척 해달라'는 부탁일 수도 있다. 두 부탁 모두 엄마가 되어달라는 것이다. 현실은 진흙탕처럼 어둡지만, 두 가짜 엄마는 엄마라는 꽃을 피워내려 노력하고 있다.

살면서 줄기차게 마주치는 힘겨운 현실, 우리는 대부분 이것을 말로 풀어낸다. 부모와 자식간에 수없이 오고가는 감정은 말을 통해 처리된다. 말의 잔치상을 차리고, 웃고, 싸우고, 때로 울면서, 소화한 뒤 감정의 하수 처리를 해가지만, 이는 서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 가능하다.

그 현실이 '기구하다'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의 수위를 넘어 선다면, 때로 침묵의 소통법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영화는 전달한다.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은 피어날 수 있고 관객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 내면의 대사를 상상해 보지 않는다면, 다소의 지루함을 감수해야한다. 배우들이 상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조심스럽게 잘 도와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당신의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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