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탄 탱고> 포스터

영화 <사탄 탱고> 포스터 ⓒ 루스발드뷔르제


지난 5월 9일, 헝가리 현대 문학의 대가 크러스너호르커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 탱고>가 번역돼 국내에 발간됐다. <사탄 탱고>는 1994년 벨라 타르 감독의 손을 거쳐 영화화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상에 여러 영화가 있지만 어떤 건 정말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장면, 혹은 하품이 절로 나오는 지루함. 그럼에도 푹 빠져드는 영화가 있다. 귀신에 홀린 듯, 최면에 걸린 듯, 스크린 속에 홀려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들. 분명 재미있는 영화는 아닌데 줄곧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이들의 모습을 아주 느릿하게, 약간은 빠른 템포로 보여준다. 영화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 찾아온 이방인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다. 사회주의가 붕괴해갈 무렵의 어느 마을 한켠에선 집단 농장의 수익금을 빼돌리려는 음모가 진행 중이다. 그러던 중 죽은 줄로만 알았던 청년이 살아 돌아와 음모를 막고 수익을 바르게 배분한다. 이제 그들은 기쁨에 겨운 '사탄 탱고' 춤을 춘다.

애석하게도, 그들이 춤을 출 때 마을 안의 어떤 소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제 마을의 기쁨은 슬픔으로 바뀌어 버린다. 누가 소녀를 죽였는가. 탱고는 두 사람이 협업해서 추는 춤인데 온통 불신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지옥 같은 30분의 '사탄 탱고' 장면이 지나가고 나면, 관객은 숨이 막혀 가쁜 숨을 턱턱 내쉬게 된다.

그 외에도 1분에서 30분여까지의 롱테이크가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미동 하나 없을 땐 감시카메라를 보는 듯하기도 하고, 인물이 움직이는 장면에서도 굳이 이렇게까지 보여주어야 하나 싶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게 무슨 장면일까 싶다가도 끝날 무렵엔 감탄을 머금게 된다. 체감상으로 무척 길어 보임에도 시작과 끝에서 인물의 태도와 감정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사탄 탱고> 포스터

영화 <사탄 탱고>의 한 장면 ⓒ 루스발드뷔르제


7시간 18분이라는 러닝타임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긴 시간 동안 등장인물의 고통을 아무런 보호 없이 마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몹시 끔찍하다. 돈의 배분과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이기심과 무지함으로 진행되는 7시간의 질주는 관객들을 미치게 한다.

벨라 타르 특유의 무미건조함과 그윽한 시선이야말로 이 영화가 나락 속을 걷고 있다고 말해준다. 영화가 시작되고 9분 동안 이어지는 롱테이크는 이 마을이 어떤 분위기이고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간접적으로 암시해주는 듯하다. 바람이 거세고, 비가 내려 축축하다. 그런 진흙탕 속에서 소떼가 유유히 어딘가로 향한다. 카메라는 그런 소 떼 옆을 시종일관 지킨다. 흑백영화임을 감안해도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하다. 그런 어둠이 마을 전체를 감싼다.

여느 영화처럼 2시간 내외로 찍어도 무방했을 내용이지만 이 영화가 이토록 길어진 것에는 벨라 타르 본인의 굳은 신념이 담겨 있다. 그는 흔히 영화에서 '죽은 시간'이라고 부르는 시간을 편집하지 않았다. 아마 어떤 시간도 귀중하다는 뜻일 테다. 보는 사람 편하자고 그사이를 임의로 점프해버린다면, 그 사이에 있었던 '사실' 또한 사라져 버리니까.

공동배분을 내세우던 사회주의가 반대로 작용하는 이 마을에는 거센 바람과 고된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만 한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하니 그들은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변해버린다. 그 이기심으로 소녀가 죽었고, 외부와 고립되어 작은 사회 형태를 띠는 이 마을에는 소녀를 죽인 게 누구인지 해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7시간 동안 영화를 봐도 딱히 답은 없다. 결론이 그런 건, 감시 카메라처럼 모든 걸 담아내도 마음만큼은 담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알아도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추측만 해볼 뿐이다. 그들의 농장은 왜 실패했을까? 마을 청년은 밖에서 무엇을 하다 돌아왔을까?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기억에 남는 건 단 한 장면뿐이다. 소녀가 고양이를 괴롭히다 땅에 묻어버리는 장면. 그 후에 무언가 잘못됨을 깨닫고 마을 전체를 두들겨보지만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마을 사람 모두가 술집에 모여 '사탄 탱고' 춤을 추고 있는 탓이다.

결국 이 영화의 7시간은 탱고를 추는 30분 탓에 사라지고 만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7시간이다.

영화 사탄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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