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근 YTN 기자

김대근 YTN 기자 ⓒ 이영광


"예전에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방법, 어떻게 하면 채널을 돌리지 않게 좀 더 재밌는 이야기로 끌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그보다 앞서 말씀드렸던, 이슈를 다루는 저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3개월여 동안 YTN 파업 집회 사회를 본 김대근 기자는 파업 전과 파업 후 자신의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구성원들의 '사장 불신임' 투표로 최남수 사장이 물러난 뒤, YTN 구성원들은 제자리 찾기에 돌입했다. 방송사 사장이 구성원들의 불신임 투표로 사임한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3개월여 동안 치열하게 싸운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위원장 박진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파업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최아영 기자와 함께 집회 사회를 보며 조합원들을 독려한 김대근 기자를 지난 16일 만나 파업 뒷이야기와 최 사장 사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김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최남수 사장 사퇴 촉구 파업을 중단한 지 3주 정도 되었고 최 사장이 직원들의 불심임을 받아 사임한 건 열흘 조금 지났잖아요. 그동안 어떻게 보내셨어요?
"일단 남북정상회담 특보를 진행했고, 6월 지방선거 앞두고 있어서 관련된 뉴스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중요하고 신중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만큼 그동안 저희가 파업을 하며 했던 공정 방송과 관련한 고민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파업하며 멘트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이슈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도 여러 각도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파업이 끝나고 돌아와서는 방송이 이전보다 어려워졌어요.

제가 파업 기간에 했던 여러 말 그리고 약속이나 각오를 지키는지 고민하게 돼서,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끄는 방법, 어떻게 하면 채널을 돌리지 않게 좀 더 재밌는 이야기로 끌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그보다 앞서 말씀드렸던, 이슈를 다루는 저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인사에 환호, 뭉클했다"

총파업에 돌입한 YTN 노조 “최남순은 물러가라” YTN 노조 조합원들이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YTN 사옥 로비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노조와의 합의파기, 이명박 전 대통령 칭송 칼럼, 성희롱 발언 등을 이유로 최남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총파업에 돌입한 YTN 노조 “최남수은 물러가라” YTN 노조 조합원들이 2월1일 오전 서울 마포구 YTN 사옥 로비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노조와의 합의파기, 이명박 전 대통령 칭송 칼럼, 성희롱 발언 등을 이유로 최남수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 파업 중단 후 최 사장이 바로 사임한 게 아니라, 일주일 후 불신임 투표 결과가 나온 뒤 물러났잖아요. 그 기간 동안 좀 불안했을 것 같은데요.
"파업 중단 후 바로 다음 날 진행했던 게 남북정상회담 특보였거든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이었고 그 이슈를 다루는 무게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감정이 있었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투표를 하기 전까지 구성원들에게 진심을 담아 호소하는 글을 올리는 등 노력을 기울였죠. 만약 석 달 동안 파업을 했는데도 부적격한 부분이 공론화된, 저희가 문제 있다고 생각한 인물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이 조직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을 것인지, 저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언론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 투표결과 나왔을 땐 기분이 어땠나요.
"결과가 나온 뒤 개표소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할 때 저에게 다시 마이크가 왔어요. 그래서 '여러분 오랜만입니다'라는 인사말을 했는데 구성원들이 환호했어요. 그 순간 굉장히 뭉클한 느낌이 들었어요.

석 달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지냈고 복귀 후 투표 전까지 일주일 동안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 지냈어요. 그 기간 동안 앞으로 기자로서, 언론인으로서 저의 운명과 제가 속한 조직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였겠지만, 개표 결과가 나오고 인사말을 했던 그 순간 짐의 무게를 조금 덜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 그 당시 현장 반응은 어땠어요?
"사내방송으로 개표현장을 중계했어요. 그래서 신임과 불신임 표 나누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며 신임에 몇 표가 가고 불신임에 몇 표가 가는지 한 표 한 표 소리 내 세는 구성원들이 있었죠. 신임에 한 표가 가면 안타까운 반응이 나오고 불신임에 한 표가 가면 환호가 나왔어요. 그래서 사실 정확히 몇 표라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사람들이 감으로 불신임이 나왔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때 환호하는 구성원도 있었고 눈물을 많이들 흘렸어요. 그리고 얼싸안기도 했죠."

- 불신임쪽에 55%가 나왔잖아요? YTN 구조를 모르는 외부 사람들은 '과반 조금 넘었네'나 '생각보다 높지 않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저는 (55%가 나온 게) 아쉽지 않아요. 그건 YTN이라는 저희 조직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여러 종류의 문제를 반영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누가 신임에 투표했고 불신임에 투표했는지는 모르지만, 투표과정에서 구성원들에 대한 다양한 처우 개선 문제가 중요 이슈로 부각됐어요. 최남수씨는 그것을 이용하려 했던 측면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 과정을 통해 실제로 많은 구성원이 처우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해하는 과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만약 부적격 사장의 문제나 공정방송에 대한 공감대를 내부적으로 낮추는 측면이 있었다면 그 또한 문제 아니겠어요? YTN이 앞으로 더 개선해 나가고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서 저는 그 또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 파업 집회 사회를 보셨잖아요. 뉴스 진행과는 또 달랐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사회를 본 적은 없었거든요. 뉴스와 달르긴 했어요. 사람들의 표정과 마음이 제게 전달되는 것 같았고 그 기운을 받아내는 것 같았거든요. 특히 불안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람들 마음의 무게감이 저에게 직접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의 힘, 말의 기운, 언어의 온도' 같은 것의 중요성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파업 기간 노조가 협상 과정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제 표정과 말, 그리고 분위기에 불안감이나 속상함이 표출된 적도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는 거 아니냐'는 질문도 하고 똑같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더 항상 씩씩하고 밝고 사람들도 힘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만약 사회 보지 않고 집회에 참석했다면 어땠을까요?
"사회를 보며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갑작스럽게 집회를 시작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초반엔 준비된 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매일 아침,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했죠. 그러면서 저도 과거에 기자로서 아쉬운 과정이 있었고 반성할 순간이 있었다는 걸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사람들 앞에서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공정방송의 가치를 더 무겁게 느끼게 됐어요."

- 집회 준비는 어떻게 하셨어요?
"저 혼자 한 건 아니고 진행팀이 있었어요. 팀원들과 함께 항상 다음날 집회에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조합원들을 웃게 해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90일 가까이 파업하면서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했죠. 예를 들어 씨앗을 심는다든지 아니면 저와 같이 사회를 본 최아영 조합원과 춤을 춘다든지, 뭐라도 해야 했어요. 파업 기간이 길어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우울해지면 안 됐거든요. 우울해지면 힘들어지고 기력도 떨어질 테니 항상 만나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 최아영 기자와 같이 사회를 보셨는데 호흡은 어땠어요?
"최아영 기자가 두 기수 아래라서 마냥 어린 후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번 과정을 거치면서 회사 상황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걸 바꾸고자 하는 의욕과 열정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앞으로도 YTN을 바꾸고 지켜나가는 데 이런 친구들의 에너지가 원동력이 될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최아영 기자도 집회에 참가해 구호를 외치는 게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나중에 보니 쑥스러워하지 않고 굉장히 씩씩하게 사회를 보더라고요."

"매일 아침 집회 참석한 조합원들... 절박함 느꼈다"

 김대근 YTN 기자

김대근 YTN 기자 ⓒ 이영광


- 조합원들이 다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라 앞에서 사회를 보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도 같은데요.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방송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트집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운 진행을 선보이려고 그 역할을 맡았던 것이 아니라 저희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언론사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을 공유하고 그걸 진솔하게 말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제 역할이었거든요.

집회 기간 동안 매일 조합원들이 나와 발언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공정방송과 YTN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저는 그럴 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이었기에 그냥 진솔하고 솔직하면 됐던 거 같아요. 그게 충분한 조건이었던 거 같아요."

- 집회 현장에 앉아 있는 조합원들을 보며 느끼는 것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저는 앞에서 사회를 보니까, 오늘은 몇 명이 집회에 나왔고 언제쯤 나오는지 한눈에 보였거든요. 정말 신기했던 건 YTN이 지금까지 세 번 파업을 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꾸준히 매일 아침 집회에 나온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고마웠어요. 항상 아침마다 자리를 가득 채웠거든요. 조합원들 모습을 보며 '모두 지금 안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구나. 지금 YTN을 바꿀 계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이런 절박함을 느꼈습니다."

- 이번 파업은 2008년 이후 입사한 조합원이 주축이었던 걸로 아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저도 2008년 이후 입사한 세대예요. 2010년 입사했거든요. 갑갑했던 게 아닐까요? 왜냐면 2008년 이전에 YTN이라는 곳은 국내 유일의 보도전문 채널로서 투박하지만 솔직한 방송, 거침없는 방송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2008년 이후에는 어떤 사안을 다루는 데 있어서 주저함이 많았죠.

저는 2008년 이후 입사한 첫 세대인데 그런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어떤 사안을 발제하고 취재해서 리포트를 만들어 보도하기까지, 여러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어요. 그런 어려움이 없다면 더 신 나고 제가 꿈꿨던 거침없는 기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었어요. 선배들은 해봤지만 저희는 못 하지 않았나는 생각했죠.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이번 과정에 참여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제 YTN은 새 사장을 선임해서 출발해야 하잖아요. 김 기자님이 생각하시는 YTN의 모습은 어떤가요?
"그동안에도 개개인은 열심히 일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YTN이라는 조직이 안일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조직 자체가 활력이 있었으면 좋겠고 보도를 함에 있어서도 주저함이 없는 조직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개개인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성찰하고 반성하고, 저희가 파업 과정에서 했던 말과 행동을 되새기며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려요.
"아직 시청자분들 중엔 '파업을 했고 부적격한 사장이 물러났는데도 YTN은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그게 저도 고민되는 지점이거든요. 하지만 과거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바꿔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건 분명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김대근 YTN 최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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