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얀 다미아노비치를 떠올린다면 가장 떠오르는 건 '몬테네그로 특급', 'FC서울의 레전드 용병' 이 두 가지 별명일 것이다. FC서울의 레전드 용병이란 타이틀이 팬들에게 가장 익숙할 것이다.

데얀이 FC서울에서 활약하면서 남긴 족적은 K리그 3년연속 득점왕(2011~2013), 최단시간 150골, 2012시즌 K리그 MVP등과 같은 개인기록에 3회 리그 우승(2010, 2012, 2016)과 ACL 준우승(2013)을 이끄는 등 명실상부한 서울의 레전드 용병을 넘어 K리그 최고 용병인 선수였다.

2013년을 끝으로 중국 슈퍼리그(CSL)로 떠나 장수 세인티(현 장쑤 쑤닝)와 베이징 궈안에서 2015년까지 3시즌간 활약한 데얀은 2016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FC서울로 복귀했다. 그가 돌아온 것은 아름다운 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위해서였다. 실제로 데얀은 2016시즌 복귀해 지난 시즌까지 두 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2016년 13골, 지난 시즌 19골)을 기록하는 등 녹슬지 않은 득점력과 발 밑 기술, 동료들을 이용한 연계플레이에서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문제는 30대 중반이 넘은 적잖은 나이 탓에 기동력과 같은 신체적인 능력은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전히 순도 높은 득점 보여주는 데얀

데얀 돌파 9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18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울산 현대와 수원 삼성의 1차전 경기. 수원 데얀의 드리블 돌파를 울산 리차드가 수비하고 있다.

▲ 데얀 돌파 지난 9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18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울산 현대와 수원 삼성의 1차전 경기. 수원 데얀의 드리블 돌파를 울산 리차드가 수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6시즌 중반 중국 CSL 무대로 떠난 최용수 감독의 후임으로 FC서울에 부임한 황선홍 감독은 포항 감독 시절부터 데얀에 대해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서울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드디어 데얀을 품게 되었지만 문제는 전성기에서 내려올 나이에 들어선 데얀의 신체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데얀은 녹슬지 않은 골감각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으나 지난 시즌 중반에는 출전시간 문제로 인해 황선홍 감독과 불편한 관계가 감지되기도 했다.

결국 황선홍 감독의 결정은 데얀과의 이별이었는데 문제는 데얀이 이적한 팀이 다른 팀도 아닌 서울의 최고 라이벌인 수원 삼성이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황선홍 감독과 서울구단은 팬들의 거센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게 서울의 레전드 용병이란 타이틀을 버리고 수원으로 이적한 데얀은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먼저 서정원 감독은 데얀이 합류한 이후부터 데얀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데얀 역시 "3년 이상 함께 일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라고 표현하는 등 서정원 감독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할 정도로 초반부터 좋은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속에서 데얀이 수원에서 맞이한 첫 시즌 현재까지의 기록은 리그 3골을 비롯해 AFC 챔피언스리그(ACL) 6골(플레이오프 타인호아전 포함)이었다. 리그에서 3골은 지난 시즌 5월까지 기록한 8골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지만 리그 3골과 ACL 6골의 순도는 상당히 높은 모습을 보여준다.

리그 3골 중 2골은 결승골이었으며 ACL에서 기록한 6골 가운데 수원을 16강으로 이끌었던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조별리그 최종전 결승골을 비롯해 3골이 결승골일 정도로 데얀이 기록한 득점의 영양가가 상당히 크다. 특히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 기회를 만들며 득점을 터뜨리는 데얀의 스타일과 달리 측면에서 크로스 위주로 공격을 펼쳐 제공권 싸움에서 약한 데얀의 단점이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순도 높은 득점력을 보여준다는 점은 데얀의 가치가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데얀은 경기 외적으로도 젊은 선수들, 특히 젊은 공격수들에게 멘토 역할까지 하고 있다. 김건희를 비롯해 올시즌 조영욱과 함께 1999년생 동갑내기로 데뷔 시즌 초반부터 큰 임팩트를 남기고 있는 전세진까지 아직 미완의 대기지만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이 선수들에게 데얀은 많은 대화를 바탕으로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이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김건희가 이 달 말에 입대하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팀에서 큰 역할 보여주는 선수

슛하는 데얀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1 수원 삼성 대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수원 데얀이 발리슛을 하고 있다.

▲ 슛하는 데얀 지난 4월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1 수원 삼성 대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수원 데얀이 발리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모기업의 지원축소 속에 이전처럼 스타급 선수들을 영입하지 못하게 된 수원은 수원 매탄고 출신의 어린 선수와 드래프트로 선발된 선수들 등 어린 선수들 중심으로 선수단이 형성됐다. 이런 가운데 용병농사는 매번 실패를 거듭했고, 주축선수들의 부상과 군 입대 및 이적으로 인한 이탈이 겹치면서 전력은 과거에 비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선수들이 많이 포진된 팀 전력에 기복이 있기 마련이었다. 어떤 때는 잘 나가다가 경기력이 뚝 떨어지며 부침을 거듭하고 ACL과 같은 국제무대에선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탈락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경우엔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들이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했다. 염기훈을 비롯해 곽희주, 이정수, 조원희와 같은 고참급 선수들이 있었지만 곽희주는 그라운드에서 이들을 잡아주기엔 기량이 많이 떨어진 데다 은퇴가 임박했었고 지난해 수원으로 복귀했던 이정수는 팀의 성적부진 속에 그 책임감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하며 팀을 떠났다. 조원희 역시 기량이 떨어져 이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염기훈이 그 모든 짐을 떠맡아야 했는데 홀로 짊어지기엔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K리그에서 엄청난 족적을 남긴 베테랑 데얀의 존재는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 훈련 때나 경기상황에서 김건희, 전세진과 같은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데얀의 존재속에 최근 이들의 상승세가 빛을 발했다. 그러면서 서정원 감독이 추구하는 로테이션 운영이 효력을 발휘하며 데얀과 염기훈의 컨디션 관리까지 가능해지게 됐다.

데얀의 존재가 더욱 돋보인 건 주중 열린 울산 현대와의 ACL 16강 토너먼트 2차전. 이날 김건희는 2골을 넣으며 팀 승리에 공헌했는데 이날 김건희가 두 번째 골을 넣은 이후 펼친 세레머니 상황에서 데얀은 끝까지 김건희의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기에 대한 조언과 격려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바그닝요의 세 번째 골이 터진 상황에서 교체아웃된 데얀은 서정원 감독과 어깨동무를 하며 격렬하게 세레머니를 펼쳤다. 지난 시즌 황선홍 감독과의 관계에선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데얀의 이러한 경기 내외적으로의 모습은 올시즌을 앞두고 중국 슈퍼리그로 이적한 조나탄의 공백이 수원에서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으로 친정팀에 비수 꽂은 데얀

기뻐하는 데얀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시드니 FC의 경기. 동점골을 넣은 수원 삼성 데얀이 기뻐하고 있다. 2018.4.3

▲ 기뻐하는 데얀 지난 4월 3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H조 5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시드니 FC의 경기. 동점골을 넣은 수원 삼성 데얀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데얀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올시즌을 앞두고 데얀을 내보낸 서울 구단은 아마도 속이 탈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을 마친후 서울 구단은 데얀에게 선수생활 연장 대신 은퇴와 함께 코치직을 제안하며 은퇴를 권유했다. 선수생활을 더 이어가고자 하는 데얀의 의지와 맞지 않으면서 결국 협상이 결렬돼 결국 서로 해피엔딩을 이루지 못한 채 관계는 파국을 맞이했고 서울은 올시즌 그 후유증을 겪고 있다.

데얀의 이탈은 당장 공격진의 약화로 이어져 올시즌 FC서울은 14경기에서 12골에 그치는 빈약한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 데다 대체자로 영입된 에반드로는 시즌 초반 부상으로 고생하다 이제서야 컨디션을 회복하는 가운데 2골을 기록하는 등 데얀이 보여준 활약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리빌딩 측면에서도 데얀만큼 서울이란 팀에 상징성을 잘 이해하는 선수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순조로운 리빌딩이 이뤄질 수 있었다. 하지만 박주영과 고요한, 곽태휘 외에는 서울이란 팀의 상징성을 알 수 있는 선수가 없었고, 결국 서울의 리빌딩은 실패로 귀결됐다.

그렇게 수원으로 이적한 데얀은 올시즌 서울과 맞대결을 펼친 두 번의 대결에서 골을 터뜨리지 못했고,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의 성적보다 팀과 동료들을 생각하는 데얀의 이러한 헌신은 득점과 같은 공격포인트를 통해 눈에 띄게 친정팀 서울에게 비수를 꽂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게 친정팀 서울에게 비수를 꽂고 있다. 이제 데얀은 서울의 레전드에서 '푸른 데얀'으로 자신의 존재를 바꿔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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