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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희 씨가 번역한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천병희 씨가 번역한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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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는 우리가 성인으로 추켜 세우는 소크라테스를 맹렬히 조롱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러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구름'이라는 희극을 쓰고 무대에 올린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소피스트로 그려진 소크라테스. 관객들은 배를 잡고 웃었으리라. 후일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일어나서 관객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책인 플라톤의 '향연'과 '변론' 등을 읽으면 항상 만나게 되는 작품이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재판에서 아테네 배심원들을 향해, "쉽게 무엇인가를 믿을 나이에 그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비방이 퍼졌다"고 얘기하며, 그 원인으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을 언급한다. '구름'은 픽션이었지만, 현실의 소크라테스는 그 픽션으로 인한 피해를 보았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구름'에서 묘사한 소크라테스를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가 바구니를 타고 돌아다니며,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구름의 존재를 믿는다고 그의 작품에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향연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파네스가 있다. 두 사람을 포함한 향연 참석자들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에로스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다. 보통 아테네 향연에서 막역한 관계의 사람들이 모여 권주가를 하는 것을 고려하면, 두 사람이 얼굴 붉힐 사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향연에 참가한 사람들은 '구름'의 내용을 희극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구름'에 나타난 소크라테스에 대한 묘사가 악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테네는 대중 앞에서 사람들을 풍자하고, 그런 풍자를 보며 웃던 사회였고, 당시 아리스토파네스를 필두로 그리스의 희극 작가들이 이러한 정치풍자극을 발표하였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해설집에서 천병희씨는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패권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휴전하지 않고 지속하고 있는 정권의 책임자와 아테네 전통에 위협이 되는 소피스트를 비난하였다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 돈을 받고 젊은이들에게 웅변술을 가르치는 소피스트들을 위험시했는데, 이들은 필요에 따라서는 옳지 않은 것도 옳은 것을 이기게 해줄 수 있다고 선전하고 다녔다. 그래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들이야말로 아테나이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철저히 파괴하는 위험인물로 보고 되었으며, ~ 점점(아리스토파네스가) 극단으로 흘러 오히려 반 소피스트의 대표자로서 상대진리가 아니라 절대 진리를 추구하던 소크라테스를 비난하였다' (천병희 해설 중에서)


이 설명에 따르면 아리스토파네스는 당시 소피스트의 변론술이 극단적으로 흐르는 것에 대하여 칼날을 겨눴고,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알려져 있던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의 대표주자로 몰아서 풍자한 곡이 '구름'인 것이다. 그러면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으로 묘사될까?

농부 스트렙시아데스는 아들이 전차 경주와 말에 빠져 빚 감당으로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파산할 지경에 빠진다. 아버지는 채권자들을 말로 따돌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소크라테스가 운영하는 사색장에 아들을 보내게 된다. 이후 채권자를 말로 따돌리게 된 아들이 아버지를 치겠다고 위협한다. 그러자 스트렙시아데스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소크라테스의 사색장에 불을 지르고, 그의 제자들을 내쫓는다.

이 희극 공연을 보며 관객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질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주인공이 소크라테스를 처음 만난 장면과 사색장에 불을 지른 장면이 그것이다.  스트렙시아데스가 처음 소크라테스를 부르며, 뭐하고 있냐고 묻자 해먹(광주리)을 타고 등장한 소크라테스는 "나는 대기 위를 거닐며 태양에 관해 명상하고 있느니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트렙시아데스가 "사례는 얼마가 되든 간에 신들에게 맹세코 한다"고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우리 사이에서 신들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일세" 라며, 우리의 신인 구름들과 직접 대화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소크라테스가 당시 아테나이의 신들을 부정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스트렙시아데스가 사색장에 불을 지르면서 "대체 무슨 의도에서 당신들은 신들을 모독하냐고 항변"하고,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은 쫓겨 달아나는 것으로 극이 끝난다.

이 작품이 공연된 것은 BC. 423년.  이 공연을 보았을 1만~1만5천명이 넘는 (대극장에 들어가는 평균 관객수) 아테나이 시민 중에 많은 수가 BC 399년 소크라테스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희극 '구름'속의 소크라테스를 실제의 소크라테스와 크게 구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호소하며,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얘기한다. 

"(제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소문을 퍼뜨린 자들이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 여러분이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보셨을 겁니다. 거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바구니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하늘을 걷고 있다고 말합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

BC. 423년에는 웃고 말았던 내용이 왜 BC. 399년에는 문제가 되었을까? '아테네의 변명'의 저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에서는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치 체제의 이유로 죽게 되면서 예전의 아테네가 누렸던 민주주의의 자유 및 관용의 정신을 누리지 못했다고 얘기한다. 예전에는 문제가 안 되었는데,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자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유죄를 선고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구름'을 상연하던 시절 많은 선도적 사상가는 아테네의 극장에서 호된 비난과 풍자를 당했다. 하지만 아테네는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기 마련이다. 미래에, 새로운 세기에 소크라테스는 고립되었고, 그의 급진적 동료들은 처형당하고 추방되었다. 그의 아테네는 너무도 여러 번 전쟁에서 패했다. 아테네 군중의 함성은 더욱 커졌고, 그 웃음은 공허해졌다.' (아테네의 변명, p 351~352)

우리는 단순하게 소크라테스는 의인이고 그를 비난한 아리스토파네스는 괴짜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구름'을 공연하던 시절에는 소크라테스조차 그 풍자를 보며 함께 웃었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가 억압받고, 전쟁의 피폐 속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해지자 사람들은 돌변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2010)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2010)


태그:#아리스토파네스,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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