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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박종길씨의 묘.
 고 박종길씨의 묘.
ⓒ 박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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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 먹고 청년들 따라 나갔제... 우리 도련님은 정치도 잘 모르는 보통 사람이였시야."

38년 전 오늘, 노가다 막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뜨던 27살 청년 박종길씨. 저녁 술을 다 뜬 그는 노래를 부르는 청년들을 따라 임동 집에서 시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끝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8일 광주 5·18 민주화운동 38주년을 맞아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은 유가족 문정복씨는 도련님의 묘역 앞에서 그를 회상했다.

"배운 것은 짧았지만 성실하게 노가다하면서 돈을 벌었지... 생전에 고기반찬을 좋아했어."

살아남은 자들의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라고 우리 시부모가 마음에 병이 생겨 일찍 세상을 떠버리셨지"라며 박종길씨의 형수 문정복씨는 그날이 광주와 그의 가족에 남긴 상흔을 회상했다. 유가족들은 그들이 살아있는 지금이 아니라 그다음을 걱정했다.

"이제 나 말고 올 사람이 없어. 결혼도 못 했으니..."

문씨는 친척 중 경찰이 있어 다행히 고인을 사망자 명단에서 빨리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5·18 기념식 공연 중 연단에 선 행방불명자 고 초등학교 1학년 이창현군의 아버지 이귀복 씨처럼 희생자의 시신도 찾을 수 없는 가족도 있다.

광주시에 따르면 5·18 민주화운동 기간 중 행방불명으로 신청된 수는 242명이나 그중 82명만이 5·18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아 시신은 없이 그 이름만 국립 5·18묘지에 잠들어있다. 9월에 출범하는 5·18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행방불명자들의 규모와 소재를 파악할 마지막 기회가 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가족도 다 늙고 병들었다"... 진상규명에 더해 유공자법 개정은?

6월 항쟁은 5월 광주의 연장선에 있었고, 6월 항쟁의 도화선이었던 이한열 열사는 고향인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잠들어있다. 이곳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는 5·18유공자의 묘 137기와 이한열 열사 등 민족민주 열사 등을 포함해 총 491기의 묘가 있다.

"유공자법을 좀 바꿔줬으면 좋겠다. 제발 내 생전에... "
"이제 유가족도 다 늙고 병들었다."

망월동 묘역 주변 광주전남 추모연대(아래 광전추모연대) 천막에서는 유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5·18 구속 부상자회 김공휴 부회장은 지난 2017년 광주 MBC 라디오 프로그램 <시선집중>에서 국가유공자 법에 대해 "일반 국가 유공자는 예우와 지원에 관한 법률로 처리되나 5·18 유공자는 예우만 있고 지원은 빠진 반쪽짜리 법률"이라며 "단체에 국가의 운영비 보조가 전혀 지원되지 않고 있는 부분과 국가 유공자는 연금 지원을 하나 5·18 유공자는 산재법에 의해 56세 이후엔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준(35, 광전추모연대)씨는 유가족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공자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18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지 못해 4.19와 달리 완전한 국가유공자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부분이 문제라고 밝혔다.

더불어 "유가족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국가폭력에 의해 돌아가신 분들이 더 많이 민주화 열사로 인정되어야 국가가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진상규명특별위원회가 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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