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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성차별·성폭력 4차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해여성 추모와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미투가 바꿀 세상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성차별·성폭력 4차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해여성 추모와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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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죽임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 모든 희생자들에게 바치겠습니다."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2주기' 추모 집회 무대위에 선 가수 오지은씨는 잠시 울먹이다가 첫 곡 <작은 자유>를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가사 중 이 부분을 강조해서 불렀다.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시민들은, 특히 여성들은 2년 전의 사건을 잊지 않았다. 2016년 5월 17일, 일면식도 없던 한 남성에게 서울 강남역 인근 한 건물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2000여명(주최측 추산)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검은 옷 위에 우비를 입고 집회 장소인 신논현역으로 모였다. 집회가 시작되는 오후 7시에는 강남 일대에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비를 피하지 않았다. 대신 더 크게 구호를 외쳤고, 올라온 연사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여성폭력 중단하라 정의롭게 해결하라
 불법촬영 처벌하라 사법정의 실현하라
 성폭력 성차별 반드시 끝장내자
 미투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이 가져온 변화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2주기 추모와 성폭력 근절 위한 '성차별성폭력 4차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강남역 10번출구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2주기 추모와 성폭력 근절 위한 '성차별성폭력 4차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강남역 10번출구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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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되며 한국 사회의 여성 대상 범죄 및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젠더 폭력'이 이슈화됐고,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숨죽였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여성 대상 폭력과 불법촬영 범죄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증언한다. 이날 발언대에 선 3.8대학생공동행동 예진씨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나는 정말 우연히 살아남았습니다. 여성주의 활동을 하는 동안 혐오와 폭력을 마주합니다. 지하철에서는 갑자기 머리를 맞은 적도 있습니다 커뮤니티에서는 제 얼굴을 평가하고 성희롱을 합니다 (...)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은 여성 혐오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 성별 권력이 바뀌지 않는다면 피해는 반복될 것입니다. (...) 오늘도 폭력 속에서 우연히 살아남아서 이 자리에서 말합니다. 스스로가 죽음을 준비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슬프지만 그 이유로 제 활동을 축소하지 않겠습니다. 이 사회를 끝장내기 위해 앞장서 실천하려고 합니다."

한편 이날 집회 직전 한 커뮤니티에 "페미 집회에서 염산으로 테러할 거다"라는 내용의 협박성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몇몇 집회 참가자들도 '염산테러'를 언급하며 "설마 그러겠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어서 발언한 최원영 간호사는 자신이 재직하는 병원에서 한 의사가 병원 내의 간호사들을 상대로 저지른 불법촬영 범죄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조직 내에서 입막음을 하려고 했으며,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의사는 여전히 수도권지역에서 건강식품 사업까지 병행하며 버젓이 의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몰카를 찍히고 있는지 늘 불안해합니다. (...) 간호사의 대부분은 여성이므로 쉽게 대상화되고 여성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맡은 역할에 비해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동료이기 이전에 성적 대상으로 취급됩니다."

그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한 정치인이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을거냐'고 했는데 그때 우리가 주운 조개들이 당신들의 세계를 부수고 있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쥬리 활동가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뿌리깊은 성차별과 가부장제 하에서 벌어진 범죄이며, 일상적으로 당해온 성폭력의 연속선상에 있다"라며 "여성들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당시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저도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정신질환의 문제도 아니고 화장실이라는 공간의 문제도 아니다. 성차별 구조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폭력은 성별 권력의 문제이며, 쉽게 일어나고 은폐하고 정당회되는 데는 우리 사회를 둘러싼 차별 구조가 작동된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폭력의 근간을 이루는 차별과 혐오를 규제하고 줄여나가자"고 밝혔다.

"미투 운동은 사회 정의를 밝히는 과정"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2주기를 맞은 17일 서울 동작구 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 '여기' 안에 마련된 '기억ZONE: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은 한 여성이 포스트잇 글들을 읽으며 피해여성을 추모하고 있다.
▲ 강남역 2주기, 기억의 발걸음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2주기를 맞은 17일 서울 동작구 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 '여기' 안에 마련된 '기억ZONE: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은 한 여성이 포스트잇 글들을 읽으며 피해여성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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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되어있던 발언이 끝나고 행진이 이어졌다. 비가 더 거세졌지만 참가자들은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을 이어갔다. 2년 전 수십개의 추모 포스트잇이 붙었던 강남역 10번 출구에 참가자들이 또 다시 모였다. 이들은 묵념과 포스트잇 붙이기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다시 무대가 있는 신논현역으로 돌아가서 행사를 이어갔다.

자유발언 후 주최측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운동(미투 시민운동)'의 성명 발표로 행사가 마무리됐다. '미투 시민운동'은 성명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해왔지만, 여성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성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은 끝났다"며 "미투 운동은 사회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2주기 추모' 집회는 서울 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전북, 창원,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이어졌다.


태그:#강남역2주기, #강남역여성살인사건,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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