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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5.23 09:05수정 2018.05.23 09:05
오천은 항구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천수만을 품고 있다. 천수만 서쪽은 안면도 권역이고, 동쪽은 홍성 권역으로 궁리와 남당항이 있다. 남당항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보령 오천항이 있다. 궁리포구와 남당항은 새조개·대하·주꾸미 축제로 많은 이들이 찾지만, 오천항은 가을에 주꾸미를 잡는 낚시꾼들이 반짝 몰리고는 이내 조용해지는 항구다.

오천항 건너편은 굴 단지로 유명한 천북이다. 오천항은 낚시꾼들에게는 주꾸미와 갑오징어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가을에 월동하러 먼 바다로 나가기 전, 먹성 좋은 주꾸미를 잡으러온 낚시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낚시꾼이나 식품 MD(상품기획자)에게는 봄 주꾸미보다는 가을 주꾸미가 더 맛있다. 주꾸미는 1년을 산다. 봄에 태어나 가을에 성어가 된다. 부지런히 대하와 치어를 먹은 주꾸미 살맛이 오를대로 올랐을 때가 가을이다. 가을 주꾸미의 부드러운 살맛은 봄 주꾸미와 비교 불가다. 흔히 '가을 낙지, 봄 주꾸미'라고 하는데, 사실 낙지와 주꾸미는 문어과의 사촌지간이다. 가을 낙지가 맛있는 것처럼 주꾸미도 가을 것이 맛있다.

오천항, 볼거리는 '영보정' 먹거리는 '키조개'

다산 정약용이 누각의 뛰어난 경치를 으뜸으로 꼽았던 영보정(永保亭)에서 내려다본 충남 보령의 오천항.

다산 정약용이 누각의 뛰어난 경치를 으뜸으로 꼽았던 영보정(永保亭)에서 내려다본 충남 보령의 오천항. ⓒ 김진영


조선시대 오천항은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충청수영이 있을 만큼 중요한 요충지였다. 충청수영 안에는 이름난 정자가 있다. 고종 때 소실되었다가 지난 2015년에 복원된 영보정(永保亭)이다. 다산 정약용이 '영보정연유기'에 "세상에서 호수, 바위, 정자, 누각의 뛰어난 경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보정을 으뜸으로 꼽는다"라고 쓸 정도로 절경이다.

비단 정약용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보정을 으뜸 정자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영보정에 올라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 정자의 서쪽으로는 천수만과 안면도가 보이고, 동쪽으로는 넒은 들판을 지나 오서산과 백월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산과 바다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영보정이다. 영보정에 앉아 안면도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것 또한 놓치면 아까운 풍경이다.

영보정이 오천항을 대표하는 볼거리라면, 먹거리로는 키조개다. 키조개라고 하면 '장흥 삼합'을 떠올리지만 대표적인 키조개 산지는 여수, 보령, 장흥 세 곳이다. 키조개는 머구리라 부르는 잠수부가 수심 20~30미터에서 하나 하나 뽑아올린다. 키조개의 넓은 부분이 뻘 바닥 위에 솟아있어 캔다기보다는 뽑는 것처럼 보인다.

산란기인 7~8월을 제외하면 오천항 주변에서는 키조개에서 관자를 발라내는 작업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즉석에서 살 수도 있다. 4월 기준으로 1kg에 5만원 가량. 큼지막한 관자가 서른 개 정도 들어 있다.

산란기인 7~8월을 제외하면 오천항 주변에서는 키조개에서 관자를 발라내는 작업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즉석에서 살 수도 있다. 4월 기준으로 1kg에 5만원 가량. 큼지막한 관자가 서른 개 정도 들어 있다. ⓒ 김진영


곡식을 까부르는 키를 닮았다고 해서 키조개라 부르는데, 껍질이 얇아 바닥을 끌어 캐는 다른 조개와 달리 수작업에 의존한다. 키조개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관자다. 관자는 껍질을 여닫는 역할을 한다. 움직임이 많다보니 쫄깃한 식감에 크기마저 다른 조개들보다 커 매력적인 식재료로 인기가 높다.

산란기인 7~8월을 제외하면 항구 주변에서는 키조개에서 관자를 발라내는 작업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즉석에서 살 수도 있다. 4월 기준으로 1kg에 5만원 가량. 큼지막한 관자가 서른 개 정도 들어 있다. 관자 한 개당 1700원 정도다. 카드 계산도 되지만, 현금을 내면 냉동 보관한 키조개 내장을 슬쩍 끼워주기도 한다. "된장국에 넣으면 국물이 시원해진다"고 한마디 보태며 봉지에 넣어 준다.

관자 한 상자를 사서 냉동고에 넣어 두면, 반찬이 애매할 때 빛을 발한다. 미역국에 넣으면 관자에서 나온 뽀얀 국물의 인생 미역국을 만들 수 있다. 참기름에 미역을 볶는 것을 생략하고 끓이면 국물이 시원하고 깔끔한 미역국이 된다. 또 관자를 잘라 매콤하게 볶아 밥에 올리면 맛있는 관자 덮밥이 된다.

이도 저도 귀찮으면 라면에 넣어보라. 라면의 끝판왕을 알현할 수 있다. 단, 면이 얼추 익었을 때 넣는 게 포인트다. 그래야 관자의 부드러운 탄력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관자 손질은 보통 관자 모양대로 자르지만, 사과 껍질 깎듯이 돌려 깎으면 좀 더 보드라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중식의 대가인 서교동 '진진'의 왕육성 사부가 예전에 알려준 비법이다.

시원한 짬뽕의 끝판왕, 오천항의 '서광반점'

주꾸미 철에는 갑오징어와 주꾸미가 함께 들어간다. 짬뽕에 넣을 관자가 안 나올 때는 다른 조개로 대신 한다. 그래도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은 변함이 없다.

주꾸미 철에는 갑오징어와 주꾸미가 함께 들어간다. 짬뽕에 넣을 관자가 안 나올 때는 다른 조개로 대신 한다. 그래도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은 변함이 없다. ⓒ 김진영



오천항 주변에는 키조개 요리를 내는 곳이 여러 곳 있다. 대부분 혼자 간 적이 많아 관자는 여러 번 사도 키조개 음식을 먹은 적은 없다. 일본처럼 '단품 요리도 혼자 주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항상 향하는 곳이 있다.

오천항에 있는 작은 중국집이다. 여기서 관자 요리를 주문할 수 있다. 삼선 짬뽕에 관자가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들어있다. 관자도 관자지만 이 집 짬뽕 맛도 일품이다. 누군가 임의로 정한 전국 5대 짬뽕 집은 아니지만, 그들과 견줘도 손색없는 맛이다. 짬뽕은 불맛나게 잘 볶은 해산물, 혹은 고기와 채소에 닭육수를 부어 끓인다. 불맛과 얼큰한 맛이 맛있는 짬뽕의 기준이 되지만, 오천항의 짬뽕은 불맛이나 진한 닭육수 맛이 없다. 대신 오천항에서 나는 해산물과 채소를 볶아 깔끔하다. 짬뽕 안에 들어있는 해산물을 보면 놀란다.

대부분의 짬뽕에 들어가는, 남아메리카에서 온 대왕오징어가 없다. 사실 대왕오징어는 씹는 맛도 없어 양을 늘리는 역할만 한다. 대신 갑오징어가 들어간다. 그것도 별맛 없는 중국산 갑오징어 치어가 아닌 큼지막한 갑오징어를 잘라 넣는다. 갑오징어 씹는 맛은 오징어계에서 한 '갑'질 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때 그때 나는 조개도 듬뿍 들어있다. 지난 번에 먹었을 때는 피조개가 들어 있었다.

신선한 해산물에서 우러나는 맛이 이 집 짬뽕의 비결이다. 무르지 않게 볶은 채소와 면을 함께 씹는 맛 또한 일품이다. 일반 중국집의 삼선 짬뽕보다도 뛰어난데도 값은 7000원이다. 맛으로나 가성비로나 최고다. 해산물은 그날 그날 나는 것으로 한다. 주꾸미 철에는 갑오징어와 주꾸미가 함께 들어간다. 짬뽕에 넣을 관자가 안 나올 때는 다른 조개로 대신 한다. 그래도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은 변함이 없다. 오천항에 있는 작은 중국집은 서광반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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