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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안전위원회의 조은경 국민위원이 5월 5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아동안전위원회의 조은경 국민위원이 5월 5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 아동안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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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5명, 한 해 9025명. 대검찰청에서 집계한 아동 성폭력 피해 현황(2016)이다. 4월 29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교복을 입은 여성 청소년이 이 숫자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피켓 맨 위에는 "저 좀 지켜주세요"라고 적혀있었다. 1인 시위 소식을 담은 게시글은 페이스북 '아동안전위원회' 페이지에서 좋아요 5700개를 기록했고, SNS 상에서 여러 페이지에 업로드되며 화제가 됐다.

이 여성 청소년이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는 지난달 11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성범죄로부터 아동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국민개정안'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청원은 7만 9천여 명의 서명을 받고 이달 11일 종료됐다. 답변 기준인 20만은 넘지 못했지만, 이들은 수만 명의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기분이라고 말한다. 13일,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아동안전위원회의 이제복 위원장과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했던 조은경 국민위원을 만났다.

 아동안전위원회의 조은경 국민위원과 이제복 위원장.
 아동안전위원회의 조은경 국민위원과 이제복 위원장.
ⓒ 이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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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관심 많지만 법제화 안 되는 게 아쉬웠다"

아동안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족한 신생 시민단체다. 이들은 '국민의 생각으로 아동이 안전한 나라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전문가가 아닌 일반 국민이 직접 관련 법안을 만드는 '국민발안' 형태를 표방하고 있다. 청와대에 청원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회원들이 직접 토론과 법률 자문을 거쳐 만들었다.

"처음부터 '아동 성범죄' 문제를 파고든 건 아니었습니다. 아동 안전을 의제화하는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아동이 안전한 나라의 법을 제안해주세요'라고 올렸어요. 누가 볼까 했는데, 예상 외로 일주일 만에 300개가 넘는 의견이 들어왔더라고요. 그 중 아동 성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고, '지금 아동의 안전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아동인권센터라는 단체에서 일했었는데, 현장에 가보면 녹색 어머니회 분들도 그렇고 학생들도 그렇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아요. 그런데 이게 정책이나 법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아동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상시 기구가 없기 때문이에요. 정치는 유권자를 의식하는데 아동들은 투표권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동들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아요." (이제복)

아동 학대나 성범죄를 보고 분노하는 이들이 조금씩만 행동해도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아동의 권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확인한 이제복씨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국민위원' 모집 공고를 올렸다. 나이도, 학력도, 전공도,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고 썼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로 회의 시간도 학생, 직장인이 올 수 있도록 저녁이나 주말로 잡았다.

그렇게 다양한 직업과 연령을 가진 국민위원 20명이 모였다. 그 중에는 당사자인 학생들도 있었다. <어쩌다 어른> 등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성폭력 전문 강사 손경이 씨가 이들에게 관련 내용을 강의했고, 법무법인 양재가 이들의 법률 자문을 도맡았다. 이들은 현재의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문제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몇 달 간의 치열한 회의 끝에 당장 고쳐야 하는 부분 네 가지를 추렸다.

집행유예, 주취감형, 접근금지... "누구나 공감할 것"

이들이 제안한 개정안 네 가지는 집행유예 방지, 주취감형 폐지, 진술조력인 제도 도입, 접근금지 확대다. 첫 번째는 강간의 형량을 늘려 성범죄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걸 막는 것이다. 현행법에는 아동, 청소년을 강간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실제로 검사가 구형한 형량의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고, 3년 이하의 징역은 집행유예가 가능하기 때문에 검사가 5년을 구형해도 2.5년을 선고받아 감옥에 가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실제 '2016년 13세 미만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 범죄 처벌'(1심 기준) 자료를 살펴보면, 2016년엔 전체의 절반 가량인 48.1%가 집행유예를 받았다(법원행정처 자료). 형량을 5년에서 7년으로 늘리면 절반인 3.5년을 선고받아도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없게 된다.

두 번째는 '조두순 사건'으로 여러 차례 이슈가 됐던 주취감형의 폐지다. 이 사건 이후 아청법에서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을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바뀌었는데, 이들은 아예 '적용하지 아니한다'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조은경 국민위원은 "술을 마시는 것도 자기 선택인데 왜 그 결과는 피해자가 감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동안전위원회의 국민위원들은 토론과 법률자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개정안을 작성해 청와대에 청원했다.
 아동안전위원회의 국민위원들은 토론과 법률자문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개정안을 작성해 청와대에 청원했다.
ⓒ 아동안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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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진술조력인 제도의 도입이다.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가 논리정연한 진술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아동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제복 위원장은 "'정액'이라는 단어를 몰라 피해자가 '아저씨 몸에서 달팽이 점액 같은 게 나왔다'고 했는데 무죄가 선고되거나, 처음에는 무서워서 말을 못하다가 나중에 이야기를 했는데 진술 번복이 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13세 미만 피해자에 대해서 판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에만 신뢰할 수 있는 어른 등이 진술조력인으로 함께 할 수 있는데, 이를 확대해 모든 아동 성폭력 피해자는 진술조력인과 함께 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마지막은 접근금지 범위의 확대다. 현재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100미터 이내에 접근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이는 피해자의 실제 위치가 아니라 집과 학교를 기준으로 한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의 집과 학교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살더라도, 같은 편의점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 막기 위해 접근금지 범위를 500미터로 확대하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법을 바꿔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많이 만드는 게 목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개정안이지만, 하루에도 워낙 많은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오다 보니 서명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안타까운 마음에 국민위원인 여성 청소년이 '1인 시위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4월 26일 처음으로 강남역 앞에 나가 피켓을 들었다. 이후 5월 5일, 조은경 국민위원도 언니를 따라 시위에 나섰다.

"처음에 저도 가고 싶었는데 시험기간이라서... (웃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거 뭐냐고 물어보고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사람들이 간식을 사다 주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많아서 다 못 들고 갈 정도였어요. 제가 이런 거 한다고 해도 친구들이 잘 몰랐는데 이제 막 '아동 성범죄가 그렇게 심각한거냐'고 관심 가지고 선생님도 물어보시고... 당사자가 될 수도 있는 또래 친구들이 많이 관심 가지고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조은경)

 아동안전위원회의 청와대 청원은 이달 11일까지 총 79,200명의 서명을 받았다.
 아동안전위원회의 청와대 청원은 이달 11일까지 총 79,200명의 서명을 받았다.
ⓒ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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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가 화제가 되면서 국민청원 서명 인원도 크게 늘었다. 며칠 전 아동안전위원회의 청와대 청원은 끝났지만, 이들은 청원에 동의한 8만여 명의 든든한 아군을 등에 업고 다음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국회를 통해 개정을 발의하고 여성가족부 법사위를 중심으로 계속 입법의 문을 두드리고자 한다. 아동 성범죄에서 범위를 넓혀 아동학대, 교육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2기 국민위원 활동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잖아요. 아동들의 '미투' 보셨나요? 이들은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약자이기 때문에 '미투'를 외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여성인권도 정말 나아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점점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이 영향력이 아동들에게도 미쳤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아동만' 특별히 권리가 생겨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가장 약자인 '아동들조차도' 안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이런 법을 바꾸는 경험, 이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결실을 맺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복)


사회학과 언론을 공부하는 여성 청년. 페미니즘, 노동, 철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읽고 쓰는 삶을 지향합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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