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반도에는 치욕적인 역사의 흔적을 남겼지만 일본에는 강국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을 모신 곳이 있다. 메이지 유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3,588명 유신 지사의 제사를 지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이후에는 1879년 순국한 자를 기념한다는 뜻의 야스쿠니 신사로 개칭되고 지금까지 무려 250만 명의 제사를 지내는데 문제는 이곳에 침략 전쟁의 전범들도 모시고 있어서 피해국들의 반발을 꾸준하게 사는 곳이기도 하다. TV와 신문 등에서 말로만 듣다가 도쿄를 방문한 김에 이곳을 들러보았다.

신사
▲ 신사 입구 신사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야스쿠니 신사는 제1·2차 세계대전 등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생전의 신분·계급·성별·연령에 상관없이 합동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일본의 경우 대부분의 전통을 만들고 지켰던 사람까지 신으로 숭앙하는 의미가 있기에 이곳 역시 그런 의미가 담긴다. 국가적 보호가 되고 있는 곳이라 한국을 비롯한 중국의 반발이 매번 있어왔지만 여전히 일본 천황 등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
야스쿠니
▲ 신사의 인물 야스쿠니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일본의 천황을 덴노라고 부르는데  BC 660년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직계 자손인 전설적인 덴노 진무[神武]에 의해 창시된 이래로 신도와 신적 가문의 최고 사제로서 신성불가침의 영기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신사
▲ 신사 신사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입구에서부터 신사까지는 쭉 뻗은 도로에 관리가 잘되어 있어서 침략 전쟁의 역사만 아니었다면 한 번은 가볼만한 곳이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를 비롯,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아시아 일대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데 공을 세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도쿄 전범 재판에서 침략 전쟁 수행의 죄로 사형당한 도아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등도 이곳에 합사 되어 있다.

일본의영웅
▲ 벚나무 일본의영웅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직접 가본 야스쿠니 신사는 규모도 상당하지만 공을 들여 이곳을 조성했다는 인상을 받을만했다. 영미권의 언론에서는 '전쟁 신사(war shrine)'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총면적 93,356평방미터로 일본에 있는 신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참배객
▲ 참배객들 참배객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메이지 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사람들의 죽음을 기리던 공간이 조슈 번에 있었는데 그들을 모시던 신토 행사가 도쿄의 중앙으로 옮겨 온 것이다. 조슈 번은 토막 운동의 거점지였는데 당시 막부는 조슈 번이 무기를 거래하는 것을 막았는데 사카모토 료마가 조슈 번과 군량미 부족으로 문제가 있던 사쓰마 번의 명의로 무기를 구입해 조슈 번으로 넘기고 조슈 번의 쌀을 사쓰마 번에 공급하는 거래를 성사시킨다. 이들은 삿초 동맹을 통해 메이지 유신을 이끄는 세력의 중심이 된다.

신사
▲ 신사 신사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다른 곳은 사진을 찍어도 별다른 제재가 없지만 이곳 신사만큼은 사진을 자유롭게 찍지 못한다. 신이 있는 공간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용납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신사는 많이 가보았지만 야스쿠니 신사만큼 규모 있고 분위기가 묵직한 곳은 보지 못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벚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나무마다 한 개씩씩의 팻말이 걸려 있다. 그 팻말의 상당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하여 용맹을 떨쳤던 일본군 부대 이름이 적혀 있다.
소원
▲ 소원빌기 소원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야스쿠니 신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옆에는 소원을 비는 쪽지를 걸 수 있는 매듭 줄이 있는데 그곳에는 한국인들의 소원이 담긴 쪽지도 있었다. 건강하게 해주세요라던가 사랑을 영원히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글도 적혀 있었다. 원래 어디를 가든지 간에 좋아하는 이의 건강을 비는 글을 적은 쪽지를 걸기도 했는데 이번 일본 여행에서 만나는 신사에서는 그래 본 적은 없었다. 외교권을 박탈하고 한일합방을 추진하고 그들을 위해 일하던 관리의 대부분은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에 있는 법이다.

공간
▲ 신사 공간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이곳을 운영하는 예산은 한국돈으로 200억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본 여론 조사에서도 일본 총리대신의 신사 참배를 찬성하는 쪽이 우세하다. 흔히 독일과 많이 비교를 하곤 하는데 독일의 경우 패전한 연합군의 국력이 독일을 넘어선 부분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패전했지만 한국, 중국 등의 연합군이 아니라 당시 미국이라는 새로운 강대국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필요에 의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진기지로 활용이 되면서 전략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한국과 중국 등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투기
▲ 제로센 전투기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가미가제 당시 사용되던 일본의 전투기도 이곳에 있다. 2층에는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사람들의 행적과 그들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을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이 전투기는 2차 세계대전 초기 태평양 상공을 장악하며 미 해군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A6M2 전투기는 가벼운 데다가 긴 항속거리와 당시 훌륭했던 엔진 기술 덕에 미 해군을 궁지에 몰았다. 항속거리는 900km에 달하며 최고 속도 533km는 당시 어느 나라 전투기도 내지 못했던 속도였다.

기관차
▲ 기관차 기관차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일본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물건은 C5631이라는 기관차이다. 1944년 10월 23일 이른바 타이 멘 철도 개통식 때 등장하여 'C56'으로 불리게 된다. 이 기관차는 타이멘철도 개통식 때 축하 테이프를 끊은 중요한 역사적 증거며 정치적 성격이 군 작전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중 하나다.

외부의 압박에서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수는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기란 외부의 도움 없이 거의 불가능하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배운 교훈은 그것이었다.


태그:#야스쿠니신사, #야스쿠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무엇이든지 쓰는 남자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며, 역사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다양한 관점과 균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열심이 사는 사람입니다. 소설 사형수의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